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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春睡堂 鄭秀民은 一蠹 鄭汝昌의 증손으로 개평마을 종택에서 태어났다. 정여 창은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했고, 연산군의 스승이 되었으나 무오사화에 연루되 어 배소에서 사망하고, 갑자사화로 剖棺斬屍되었다. 물론 정여창이 중종반정으 로 복관되었지만 정여창의 증손이란 점은 정수민의 삶을 지배하는 커다란 그림 자였고, 그는 스스로 이 그림자를 덮어쓰기로 한 듯하다. 따라서 그는 出仕를 포기하면서 󰡔文獻公實記󰡕를 편찬하는 등 증조인 정여창의 後事를 도맡았다. 그 러나 정수민은 단지 정여창의 증손이거나 정여창의 後事를 정리한 인물로만 치 부하기에는 업적이 너무 크다. 그 업적의 첫 번째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희 생되어 관련 자료가 민멸된 정여창의 사적을 정리한 󰡔문헌공실기󰡕를 편찬한 일 이다. 이는 집안의 일을 넘어 사라질 수 있는 역사의 인물 사적을 정리한 의미 있는 역사적 일이다. 두 번째는 함양 군지인 󰡔天嶺誌󰡕를 편찬하여 인문지리학 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춘수당집󰡕을 남겨 후학들에게 문인으로서 한 인간의 문학세계와 삶의 면모, 교유 및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곧, 정수민은 󰡔춘추좌전󰡕에서 말한 三不朽, 立德․立功․立言을 이룬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출사를 포기하고 평생 덕행을 닦았으니 입덕이요, 집안을 넘어 역사의 한 분인 문헌공 정여창의 실기를 정리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작 성하였으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 풍속을 기록하여 지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 였으니 이는 입공이다. 또한 시와 산문을 포함한 문학 작품을 남겼으니 입언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