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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조선중기 덕계의 문언이 생존하였던 당시는 중종 16년에서 선조 7년에 걸친 시대적 상황이었다. 중종초의 정국은 공신중심의 통치체제가 유지되었고, 왕권의 약화라는 훈구세력의 견제를 위한 대응세력의 필요성에서 사림파의 재진출 기회가 열렸다. 중종 9년부터 사림파는 言官에 활발하게 진출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적 기반을 토대로 사림파의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정치를 추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덕계는 정계에 진출하여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덕계는 산음에서 남명으로부터 『중용』, 『대학」, 『심경』, 『근사록』 등을 배웠고, 궁리와 거경에 바탕한 덕계의 학문관에 입각한 교육은 남명으로부터 계승한 학습 자의 개인차를 중시하는 교육과 지득을 강조하는 교육, 그리고 당시 성균관 학유 시절에 행했던 교육으로 구체화되어 냐타났다. 뿐만 아니라, 덕계의 문인들은 다양 한 급문동기에 의해 얼련의 문인집단이 형성된다. 지역적으로는 당시 덕계가 거주 하였던 산청, 한양, 성주지역 등지에서 강학 및 학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산청 및 함양지역에서의 학술회의로 그 절정을 보게 되는데, 이른바 지곡 사, 단속사, 남계서원에서의 학술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강학활동은 대체로 학습자의 개인차와 자득을 강조하는 교육, 유생의 평가방법으로서의 4등급 분반 교육, 그리고 평생교육의 장으로서의 강학활동의 의의를 지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