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케르는 정치적인 삶을 뜻하는 ‘비오스’(bios)가 박탈된 “단순한 자연 생명”(zoe)으로 면책 살인이 가능하나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 없는 “생명”을 지 칭한다. 아감벤에 따르면, 호모 사케르를 배제된 존재로 포함하면서 주권의 실 제적인 효력은 발생하는데, 주권 권력은 벌거벗은 생명을 생산해 내는 지점에서 기원하고 호모 사케르라는 “예외”는 “비 식별역”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본 논 문은 이러한 아감벤의 기본 논지를 중심으로, 버나드 말라무드의 장편 소설 수 선공에서 몰락해 가는 러시아 절대 왕권이 야콥을 ‘벌거벗은 삶,’ 즉 호모 사 케르로 생산하는 과정과 그가 결국 어떤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 하는지를 고찰 한다. 수선공에서 권력은 그 자체로 본래적 힘이 있는 실체라기보다 호모 사 케르와 같은 예외를 생산해냄으로써 권력을 생산, 유지한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야콥이 자신의 논리적 사고체계가 송두리째 해체되는 고통을 경험하 며 부조리한 현실을 비 식별역의 차원에서 사유한 후 도달한 지점이 바로 자혜 와 체휼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주권권력의 ‘나’를 향한 야욕이 불의의 원인인 반면, 야콥의 ‘타인’을 향한 자혜가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시작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