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타난 여성들의 노래를 통하 여,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착취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음을 진단하는데 있 다. 또한 이를 종교학, 여성학, 생태학적 비평을 융합하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전에 연구되었던 수많은 엘리엇의 선행 연구들은 다양하고 풍성하였다. 하지만 그의 종교성과 음악적 요소는 부분적으 로 연구되었고, 특히 여성들의 성적타락과 부도덕에 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반면, 그들의 노래에 재현된 고통과 갈망에 대한 연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생태비평적 관점에서도 여성들의 영성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엘리엇이 노래와 내러티브에 효율적으로 반향시킨 여성들의 종 교적 영성을 에코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는 황무지를 새롭게 재 해석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효율적으로 그려낸 신의 죽음/영성의 부재에 대한 각성, 황폐화된 자연환경, 여성의 억압적 사회구조를 인식하여, 조화롭고 평등한 사회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이를 위하여 치유의 영적 에코페미니즘을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들은 남성들과 평등한 존재로서 대접받고 인식되기 보 다는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천대받아 왔다. 이러한 사상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혹은 재산의 일부로 간주하며 여성의 역할을 제 한한 기독교의 모태인 유대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것은 신화, 문학, 과학 등의 영역에도 스며들었다. 누가복음은 독특한 문학적 방식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누가 복음에서는 먼저 당시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약자인 많은 여성들을 전면에 등장시키고 있으며,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설 명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곳곳에서 남성과 여성을 나란하게 짝을 이루어 등장시키므로 여성들을 남성과 동등하게 하나님 의 은혜의 수혜자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임을 부각시키고 있 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남성과 동등하게 때로는 남성보 다 더 중요한 모습으로 부각시키는 누가복음의 독특한 문학적 구조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양성평등과 인권과 여성문제와 관련하여 당시에 왜곡된 여성 의 위치와 역할을 혁신적으로 개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에 제작 개봉된 안드레이 즈바긴체프의 영화 <리바이어던>은 현대 자 연주의 환경에 처한 개인이 사회와 국가의 막강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가를 질 문한 작품이다.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의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술에 의 존하며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는 어촌마을 사람들의 일상부터 정치, 법, 종교 간의 결탁에 이르기까지 모순에 찬 러시아, 나아가 현대사회의 억압적 현 실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제목 “리바이어던”은 욥기 41장에 나오는 엄청난 괴력의 바다괴물을 의미함과 동시에 1651년 영국 런던에서 출간된 홉스의 책 제목과 동일하다. 이 작품은 욥과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동시적으로 의미의 이 중주를 울리면서 진행된다. 욥기의 “리바이어던”은 신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강 력한 힘을 발휘하는 바다괴물로서 어떤 인간도 그의 힘을 넘을 수 없다. 홉스는 이런 지상 최고의 힘을 비유하는 괴물을 국가라는 거대한 창조물에 비유하였다. 이 작품에서 제목 <리바이어던>은 부패하고 사악한 러시아의 권력집단, 나아가 모순으로 가득 찬 국가의 권력을 의미하면서, 욥기와의 관련성은 신과 인간간의 형이상학적 질문뿐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인간고통의 이야기로 향하게 한다. 본 논문은 작품 <리바이어던>을 영상과 함께 시나리오로 읽고, 리바이어던의 상징성에 대해 욥과 홉스에 관한 현대적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호모 사케르는 정치적인 삶을 뜻하는 ‘비오스’(bios)가 박탈된 “단순한 자연 생명”(zoe)으로 면책 살인이 가능하나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 없는 “생명”을 지 칭한다. 아감벤에 따르면, 호모 사케르를 배제된 존재로 포함하면서 주권의 실 제적인 효력은 발생하는데, 주권 권력은 벌거벗은 생명을 생산해 내는 지점에서 기원하고 호모 사케르라는 “예외”는 “비 식별역”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본 논 문은 이러한 아감벤의 기본 논지를 중심으로, 버나드 말라무드의 장편 소설 수 선공에서 몰락해 가는 러시아 절대 왕권이 야콥을 ‘벌거벗은 삶,’ 즉 호모 사 케르로 생산하는 과정과 그가 결국 어떤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 하는지를 고찰 한다. 수선공에서 권력은 그 자체로 본래적 힘이 있는 실체라기보다 호모 사 케르와 같은 예외를 생산해냄으로써 권력을 생산, 유지한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야콥이 자신의 논리적 사고체계가 송두리째 해체되는 고통을 경험하 며 부조리한 현실을 비 식별역의 차원에서 사유한 후 도달한 지점이 바로 자혜 와 체휼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주권권력의 ‘나’를 향한 야욕이 불의의 원인인 반면, 야콥의 ‘타인’을 향한 자혜가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시작임을 알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은 세속적 성찬의식을 통해 영적 은총을 전달하는 가톨릭 창 조 신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본 글은 ‘안티 성사’의 힘과 파괴력에 다소 유약한 탐욕스러운 골룸과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원,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사랑, 용기, 희생을 택한 사도로서의 프로도를 통해 ‘안티 성사’로서 절대반지의 가톨 릭적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그러한 신화적 구조를 드러내는 사건의 경우 운명 의 산에서 반지를 마지막 용암에 떨어뜨리는 에피소드에는 악의 화신인 사우론 의 반지를 탐냈던 골룸이 반지와 함께 제물로 바쳐지며, 허약한 왕 데네소르는 인간에 대한 회의와 지옥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 전투 에피소드에는 마법사 간달프, 로한의 왕 세오덴, 인간의 마지막 희망인 아라곤과 파라미르 등 은 불신과 악으로서 반지의 ‘안티 성사’의 힘을 경험하고 새롭게 태어난 인간성 을 보여준다.
이 글의 목적은 융의 관점을 통해서 샬롯 브론테의 소설 빌레트 안에 등장 하는 주인공 루시 스노우의 심정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루시가 어떻게 신의 대 극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개성화 과정을 겪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처음에 루시는 당대 청교도의 교리하에서 가부장적인 신의 모습과 절대선으로 서의 신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시의 무의식에서는 끊임없이 이에 대한 불만이 일어나는데 루시는 빌레트로 향하면서 이를 적극 받아들이려고 한다. 빌레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루 시는 내면의 아니무스를 만나 이를 의식화하기도 하고, 연금술적인 환상을 통해 서 신의 대극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루시는 신의 다양한 얼 굴을 발견하면서 진정한 자기를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현대 한국에서 주요한 문단 등단 방법 중의 하나는 신춘문예이다. 신춘문예 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가운데 한 편을 뽑고 심사평을 발표하는데 심사평 은 ‘올해 투고시의 경향’이나 ‘시에 대한 단상’ 그리고 ‘낙선이유’와 ‘당선이유’ 등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본고의 연구대상 시기인 2000년 이후 약 60여명의 심사자, 약 100명가량의 당선자, 수천 명의 낙선자가 있었다. 시간차 가 있음에도 당선된 시와 심사평에서 발견되는 낙선자나 심사자 그리고 당선자 의 특징은 이들을 단수로 지칭해도 될 만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매해 수 천 명의 시인들이 투고하고 있으므로 신춘문예는 지극히 당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2000년 이후의 신춘문예 심사평과 당 선작을 통해 신춘문예의 종교현상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당선자 낙선자 심사자 는 문학청년들의 강렬한 문학 숭배현상,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서의 ‘통과의례’ 라는 의례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아가 당선된 시들에게서는 ‘신화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신화화의 과정이란 ‘무서운 아버지,’ ‘소외된 아들들,’ ‘아버지의 쇠퇴,’ ‘아버지 죽이기,’ ‘죄의식과 아버지의 토템화,’ ‘주기 적인 의례로 기억하기,’ ‘또 다른 아버지가 되기’의 신화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이 논문은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과 도덕적 위기 앞에서 실제적인 해답을 찾 아보고자 출발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정체성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이태석의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자서전적 서사는 ‘나는 누 구인가’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연대기적인 서술은 없으나 이 태석이라는 작가가 책 속의 화자와 동일인이 되어 전개된다. 이태석은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자서전적 서사에서 남수단에서의 자신의 텔로스를 발견한 일들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그는 남수단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깊숙히 들여다보는 성찰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남수단의 현실 상황 을 열거하거나 설명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의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자서전적 글쓰기의 특징으로 드러나는 이태석의 삶을 크게 두 가지로 바라보았다. 그는 남수단의 일을 서술함으로써 실천적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공감 능력을 통해 남수단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었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한 이들이 그와 같이 실천적 지 혜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그의 삶이 공동체 회복의 가치를 이 루는 데 유의미하다고 논의하였다.
이 연구는 이청준의 글쓰기 과정을 리쾨르의 해석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청준의 글쓰기 과정과 기독교의 구원과정의 상동구조를 해명하고 있다. 이청준은 정신적 이상을 다룬 소설들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테마를 추구한 작가이다. 그의 글쓰기는 심리적 외상에 대한 공포의 제거 과정으로 정신 속에 자리 잡은 혼돈의 상태에서 원초의 질서에 복구하고자 하는 지향이 나타난다. 이청준 은 소문의 벽 에 나타난 글쓰기 과정을 통해 존재의 증명이나 구원을 통한 회복과 치유가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이 통제 불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여 자아를 재창조하고 개조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청준 문학에서 소문의 벽은 정신 적 외상의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때, 그의 병리적 증후에 대한 의미를 규명하는 중요한 연구가 될 것이다. 또한 이청준의 글쓰기는 과정에 천착하며 치 유를 향해 간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구원과정과 닮아 있다. 이청준의 구원론은 신에 대한 일방적 복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의지를 지닌 인간의 역할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