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텍스트는 경전(經典)이다. 경전은 종교적 텍스트로서 종교의례의 시작과 끝이며, 경전의 해석은 곧 종교인의 삶을 규정한다. 경전을 통해 개별종파는 외부와의 경계를 설정하고, 내부적 일체감과 자기증식을 도모한다. 언제나 경전을 되새기며, 개별종교의 담론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확장되어왔다. 한편 종교적인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데올로기는 경전을 통해 확대, 재생산 되어온 이념이다. 개별존재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에 반응한다. 감동, 동의, 두려움, 회피 그리고 거부는 종교적 텍스트에 대응하는 개별존재의 선택이다. 한편 종교적인 것은 경건한 것,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고, 인간이 살아가는 세속세계는 불경한 것, 금기시해야할 것, 타부(taboo)의 영역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인간론의 관점에서 속세의 욕망에 집착하는 존재나, 종교적 경건에 몰입하는 존재, 이 양자 모두는 결국, 자아의 충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 유사한 존재다. 언제나 자신의 세계에 집작하는 존재는 결국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현승은 한국의 기독교 시인 가운데 성경인용 빈도가 가장 높은 시인이다. 시인 스스로 성경, 특히 신약의 예수의 언행은 자신의 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하고 있다. 본고는 김현승 시에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성경인용 양상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특징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첫째, 인유의 측면에서 어구와 문장, 사건과 일화의 인용을, 둘째 비유의 측면에서 성경의 비유 수용 및 시에서의 비유적 표현을, 셋째 성경의 내용이 시인의 관용적 어구나 개인상징으로 쓰인 경우로 나누었다. 시에서 비유로 활용되거나 관용적인 어구 및 개인상징으로 굳어진 경우는 성경의 내용을 자신의 시에 중요한 시적 심상으로 수용한 경우로, 기독교 시인의 성경수용이 매우 심화된 사례를 보여준다. 김현승 시인은 성서를 폭넓고 심도 있게 수용하여 다른 기독교시인의 성서수용을 비교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 연구는『이것이 인간인가』를 소수자 문학의 가장 우수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읽으며, 우리 시대 소수자 문학의 가능성을 시사 받고자 한다.『이것이 인간인가』는 종교적 모티프가 풍부한 텍스트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특정 모티프 보다는 인간의 존재, 신의 존재가 광범위하게 모독되는 종교적 상황을 더 주목했다. 이 논문에서 소수자 문학은 인간의 부재, 신의 부재, 나아가 문학 부재의 극한상황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문학의 이름이다. 따라서 소수자 문학은 기존의 주류 문학에 대한 단순한 반동을 넘어 질적으로 새로운 문학이다. 이 시론은 레비가 단순히 소수자-‘이기’의 한 객체가 아니라, 소수자-‘되기’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레비의 문제작은 단지 홀로코스트의 증언을 넘어 종교적 깊이에까지 닻을 내리고 있는 인간 존재의 심연에 대한 뛰어난 통찰과 물음으로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소수자 문학의 가치는 결국,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의 물음을 활성화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정연희가 기독교를 수용한 70년대 중반 이후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기독교 윤리가 구조화되는 방식을 해명하였다. 외형적으로 이전의 사회비판 소설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지만 인식과 구조, 미학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이들 작품에서 종교적 윤리성이 구성되는 방식과 내용, 윤리적 실천 양태를 작품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정연희 기독교 소설은 그동안의 폐쇄적, 특권적 내면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공감을 회복하면서 사회적 윤리성을 구성하게 된다. 이후 신의 시선을 내면화한 자아가 그 시선으로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고 비판하는데 신에 속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분노, 질타하면서 질타의 초점을 인간의 욕망에 맞추고 있다. 이는 욕망을 문명적 창의의 긍정적 에너지로 추앙했던 이전 소설들과 극적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정연희 기독교 소설의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분노, 불안, 공포가 고압적으로 노출되면서 사회비판 소설의 서사적 객관성을 넘어서는데 이는 현재의 부정성을 통해 미래의 종말을 계시하려는 묵시록적 서사를 취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창작을 통해 멸망의 징후를 예고하려는 종교적 실천의 결과인 것으로, 부정성을 부정함으로써 최후의 멸망을 부정하려는, 역설적 긍정을 내재한 미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많은 학문적인 경전 연구들은 경전의 내용과 의미를 중심으로 하는 의미론적 차원에만 초점을 맞추어온 반면, 경전 자체의 성스러운 지위를 강조하는 성상적 차원이나 의례를 통해 신자에게 의미 있는 결과를 유발하는 경전의 수행적 차원은 간과해왔다. 그러나 경전을 읽고 쓸 능력이 없는 신자들이 다수였던 근대이전 종교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작 많은 종교인들의 삶에 경전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전 본문에만 집중하는 연구만 수행한다면,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가 지적한 대로 경전이 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 이 논문은 종교인들이 경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식, 나아가 경전을 이용하는 방식들을 밝힘으로써 경전의 성상적 차원과 수행적 차원을 설명한다. 많은 불교인들은 읽거나 쓰지 않고도 단지 불경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경전의 성스러운 지위를 인식했으며,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을 읽는 의례를 통해 읽은 내용과 관련 없는 종교적인 체험을 했다. 경전의 성상적 차원과 수행적 차원은 종교인들이 경전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밝힘으로써 분명히 드러난다.
본 연구는 한국 신종교인 대순진리회의 경전에 나타난 문학적 요소를 살펴보고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상징적 종교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다. 기록에 의하면 증산은 여타의 신종교 개창자들보다 더 많은 기행이적을 보이고 있다. 그는 그 스스로를 상제라고 자처하며 자신의 종교 행위는 천지공사라고 천명하였다. 그래서 그의 종교 이력을 기록한 경전에서는 많은 은유와 상징의 문학적 표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웅 신화적 내용, 역사적 인물에 대한 소개, 한시와 고사, 속담 및 유교 경전의 인용 등이 그것이다. 증산은 신화적 표현 양식을 빌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민중들에게는 새롭게 도래할 종교적 이상세계에 누구나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공하여 현재의 질곡을 의미 있게 전환한다. 물론『전경』에 나타난 문학적 요소들이 증산 자신의 올곧은 직접적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자료 수집자나 제공자 그리고 편집자의 각색된 기억인지는 단정 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한 문학적 요소가 신앙독자들에게 신앙을 심화하고 종교 적 진의를 파악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면 그대로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전경』은 다양한 문학적 요소를 그 안에 함유하여 신앙독자들과 증산을 만나게 하고 그의 종교적 이상을 체감하게 하는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사다리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신화적 상징과 신학적 담론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동일한 사건이 신화, 종교, 교리의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수용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사다리를 신화적 상징과 신학적 담론이라는 두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일화가 신화적 상징과 신학적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도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시각에서 야곱의 사다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포함한 다양한 신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상징체계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자신의 종교경전으로 간주하는 유대인이 나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보면, 야곱의 사다리는 야훼 하나님과 신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보다 구체적이며 제한된 신학적 담론 안에서 논의될 수 있다. 야곱의 사다리는 다시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학적 담론 안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될 뿐 만 아니라, 동일한 기독교 안에서도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각기 다른 신학적 담론을 형성한다. 본 논문은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신화의 영역은 주로 엘리아데의 “우주의 축”의 개념에 따라,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의 영역은 각기 성전, 교황, 만인제사장의 신학적 담론 안에서 “야곱의 사다리”를 분석한다.
로렌스 문학에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 종교성과 성의 공존이다. 그러한 양상은 애매하고, 불확정적이며, 회피적인 양가성이 나타난다. 성과 종교성의 공존성과 양가성에 주목하고 이것을 라깡의 정신분석학의 ‘주이상스’ 와 연결하여 여행기 산속의 십자가 , 단편소설 말을 타고 떠난 여인 의 성격 과 의미를 고찰한다. 전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젊은 성자의 ‘피와 살’의 해체로 인한 생명의 열정과 에로틱한 관능이 투사된다. 후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과 종교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백인 여주인공이 산속에 있는 인디언족의 오지 마을로 찾아가서 그들의 신과 종교에 귀의하고 태양신에게 몸이 제물로 봉헌되는 인신공희가 재현된다. 두 작품은 인신제물을 모티프로 하며, 성적 관능성과 성스러운 종교성이 투사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작중인물들은 양가적 감정, 즉 고통, 두려움, 공포와 이에 상반되는 성스러움, 성적 관능, 황홀감이 혼융되어서 주이상스의 전형적인 주체로서 몸을 보여준다.
영국의 의회혁명 기간 중에 분리주의자의 한 갈래로 나온 퀘이커리즘은 사제나 종교적 의식을 거부하고 여성의 발언을 허용했던 급진적 종파였다. 퀘이커들이 신봉한 내면의 빛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겼기에, 교회에서 여성의 발언 역시 내면의 빛에 기초한 예언으로 간주되었다. 이 논문은 퀘이커리즘의 초창기에 쓰여진 여성들의 소책자를 중심으로 여성의 발언권에 대한 옹호를 살펴보고자 한다. 소책자들은 퀘이커리즘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교리의 정당함을 알리는 동시에 여성들의 발언권에 대한 옹호를 펴고 있다. 소책자는 공통적으로 여성의 발언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을 예언자의 위치에 놓으며, 성경의 구절을 들어 교회의 관습으로 내려온 여성에 대한 침묵의 강요를 반박한다. 발언권에서 남녀의 차별을 없애는 데 주력한 나머지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고유한 목소리를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문제점은 지적할 수 있으나, 퀘이커 여성들의 소책자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문학에서 여성 작가의 활동이 시작되던 17세기의 상황과 궤를 같이 하여 다루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