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샤머니즘적 접근을 통해서 이청준의 『이어도』에 나타난 희생제의적 양상과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이어도는 고대로부터 인간의 원초적 욕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공포를 극복해주는 수단으로서 활용되어왔던 샤머니즘적 숭배의 대상이며 동시에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도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강한 집착과 신앙적 믿음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제주 사람들이 거친 바다와 싸워서 삶을 지켜내는 과정에서 뿌리 깊이 박힌 샤머니즘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술집 <이어도> 여인은 샤먼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넋을 위로해주는 주술적 행위로서 이어도와 관련된 노래를 비장한 태도로 부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샤머니즘적 요인들은 현실적으로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에게 현실의 삶 또한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따라서 제주 사람들은 비논리적이고 모순된 현실의 삶의 애환을 치유하고 정화시킬 수 있는 토대로서 이어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현실의 결핍을 충족시켜주고, 이상적 세계를 꿈꾸게 해주면서 삶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본 논문에서는 토니 모리슨의 첫 번째 소설 『가장 푸른 눈』과 최근 소설 『신이여 그 아이를 도우소서』에 등장하는 기독교인들을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설명하는 두 가지 실존양식을 바탕으로 분석하여 작가의 신앙관을 추적하였다. 1970년에 발표된 『가장 푸른 눈』에는 세 명의 ‘소유양식’의 신앙인들인 폴린과 제럴딘 위트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피콜라의 정신분열 발생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2015년에 발표된 『신이여 그 아이를 도우소서』에서 부커의 고모 퀸은 ‘존재양식의 신앙인’으로 브라이드가 진정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부커와의 사랑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독교 신앙의 주요 속성을 ‘베푸는 사랑’으로 규정해온 토니 모리슨은 평생 ‘소유양식의 신앙인’들을 질타하고 ‘존재양식의 신앙인’이 되도록 촉구하며 독자들의 정신적인 성숙을 이끌어온 ‘존재양식의 신앙인’이다. 작가는 말년의 작품에서 기독교인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태아를 향한 축복기도를 작품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신앙을 향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구상 시인은 존재인식의 시와 역사의식의 시가 균형을 갖춘 시 세계를 구축한 가톨릭 시인으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본고에서는 인유의 원천으로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구절 등이 구상 시에 인용된 양상들을 살폈다. 구절을 인용한 양상에서는, 구(句)와 절(節)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구의 경우는 성경에서 관습적으로 쓰여 독특한 의미를 지닌 ‘관용어(idiomatic expression)’와 성경의 어구가 시에 자주 쓰여 뜻이 굳어진 ‘개인적 상징’(personal symbol)의 양상을 나누어 살폈다.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을 동시에 구사한 시편들에서 다른 기독교시인과 구별되는 구상 시인의 성경인용상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구상 시인의 성경인용의 시세계는 종교적 각성과 고백, 예언자적 지성의 현실 비판과 경고로 이루어져 있다. 본고의 의의는 그러한 구상 시의 사상적 근거와 그 표현의 출처인 성경을 처음으로 조명하여 그 특징을 밝힌 데 있다.
박두진은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인간의 원죄의식과 타락한 본성, 이를 대속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시로써 노래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한 인물이자 죽음을 이기고 인류를 구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특별히 사도행전 연작에서는 그리스도의 군사된 소명의식으로 시대와 민족을 향한 사도적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어지는 고독과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정신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춘수는 역사가 주는 폭력을 체험한 후 역사의 실체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서 예수를 소재화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가장 무력한 자의 본보기로서 역사의 희생양이었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역사라는 괴물 앞에 예수는 사랑의 화신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었다. 또한 예수는 부활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인류에게 하나의 심리적 진실로 자리한 신화적 인물이기도 했다. 박두진이 자신의 실존의 의미를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으로 시화하였다면 김춘수 시인은 역사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인간 존재의 슬픔과 그의 고통 콤플렉스를 시 쓰기 작업으로써 극복하였다.
『더블린 사람들』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가톨릭교 신부들을 이득을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팔아 아일랜드 국민들을 배반한 유다와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작품의 각 중단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조이스는 가톨릭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맹목적인 순종과 그 권력에 절대 복종하도록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작품에 묘사되고 있는 신부들의 모습은 대체로 무능하며 성직자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거짓된 권위와 물질주의에 집착하는 가톨릭교를 거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복잡한데, 그것은 그가 가톨릭교회를 거부하긴 했지만 그 제도나 형식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예수회재단 가톨릭교회의 제도나 교리 등을 작품창작에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는 가톨릭교회나 신부들이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 변화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시사점을 김수영의 「반시론」 을 통해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포스트-트루스는 사실보다 감정이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 현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2016년 옥스포드 사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신조어이다.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는 역사의 혼란기마다 반복되어 왔다. 그러한 점에서 김수영이 어두운 시대의 비진리를 폭로하고자 했던 「반시론」 은 현재에도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논문에서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는 「반시론」 에 등장하는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에서 비은폐로서의 진리를 가리키는 알레테이아라는 개념을 통해 접근하였다. 이를 통해 김수영의 「반시론」 에 대하여 밝혀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인은 죽음을 향한 존재이고, 둘째, 시인을 예언자적인 반신적 존재이며, 셋째, 반시는 비진리의 폭로를 통해 진리의 효과를 내는 실험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우리는 김수영의 「반시론」 으로부터 포스트-트루스 시대에 어떻게 진리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악의 문제는 선하고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난해한 주제가 되어 왔는데, 이는 둘의 공존이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악을 죄의 결과로 보는 전통적 견해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상처를 입힌다. 화이트헤드와 힉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옹호하면서, 전능성을 희생하는 또 다른 신정론을 제시한다. 화이트헤드는 악을 우주의 창조성의 원천이자 통제 불능의 능력으로 봄으로써, 하나님조차 그 악과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분으로 인식한다. 힉은 악을 하나님의 창조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한 인간의 성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 저자들은 악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실제적인 해결책보다는 악의 문제에 대한 재해석을 제공하는데 그쳤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이에 본 연구자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욥의 고난을 통해 현상 이면의 영적 및 종말적 관점의 이해를 추구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본 논문의 목적은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에 수록된 25편의 작품 중농노들의 이야기를 다룬 여섯 작품을 선별하여 농민들의 삶 속에 형상화된 자유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있다. 투르게네프는 벨린스키의 사망과 프랑스 혁명의 실패가 있었던 1848년을 기점으로 ‘주인과 하인’의 문제에서 삶과 관련된 존재론적 문제로 사유의 폭을 확장하였다. 따라서 자유에 관한 그의 사유도 일정한 변화를 겪게 된다. 우선 투르게네프는 자연과 문명이라는 두 대비적 공간 속에서 존재를 구속하는 문명의 모든 일체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삶을 동경하고 향유하는 것이 참된 자유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투르게네프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자유의 일반개념에서 ‘무엇’이라는 대상성 자체에서 벗어나 존재 내면에서 약동하는 ‘자연’과 교감할 것을 강조한다. 자유에 관한 투르게네프의 생각은 1848년 이후 죽음과 운명의 문제와 결합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그것은 운명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이 아니라, 루케리아처럼 신의 섭리를 주체적으로 깨닫고 자신의 운명을 자기 긍정의 힘으로 사유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듯 본 논문에서는 『사냥꾼의 수기』에 형상화된 자유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살펴보았다.
동양의 운명철학인 명리학은 현대의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재조명할 가치가 있다. 명리학은 자연의 순환과 법칙을 근간으로 인간의 운명을 유비하여 삶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시도하는 철학이다. 과거에는 명리학을 빙자한 근거 없는 점술등이 혹세무민의 도구로 사용되어 사회적인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현대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인문학의 대안으로 여겨질 수 있을 만큼 그 철학적, 사회적, 인문학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문명이 겪고 있는 생태학적인 위기는 명리학이 본질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자연의 균형과 조화라는 철학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사상적인 공통점이 있다. 문명과 과학기술발달 중심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자연의 황폐화와 생태계의 교란은 이미 심각한 정도의 단계를 넘어선지 오래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명리학은 인간이 자연에게 가하는 이러한 위협과 위해의 정도를 스스로 성찰하고 절제하며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내적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자연에 대한 고찰은 매우 인문학적인 차원에서 시도되어 왔다. 이러한 생태문학적인 사상의 맥락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명리학의 철학적인 세계관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십자가의 성요한의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한 개념을 연구한다. 그리스도교 신비사상 역사에서 아빌라의 대데레사 성녀와 함께 십자가의 성요한은 가장 중요한 신비가들 중의 한명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이 그가 제시하는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려고 할 때, 종 종 좌절되거나 당혹스러워 하게 된다. 특히 일치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어두운 밤을 거쳐야 한다. 이 어두운 밤은 성요한의 매우 잘 알려진 개념인데, 심지어 하느님과의 일치가 이 어두운 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이 어두운 밤은 고통과도 연관이 된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가 일종의 고통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성요한에게 있어서 일치에 이르는 길은 이와 같이 다양한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일치의 개념은 어두운 밤 혹은 고통으로 잘못 이해되기도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성요한이 주장하는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방법의 중요한 특징들을 연구한다. 동시에 일치의 개념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성요한이 제시하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물질의 변화가 아니라, 관점 혹은 시각의 변화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세상의 지식과 하느님의 지식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즉 일치는 지식과 시각의 문제인 것이다.
본 논문은 존 던이 『드러나는 일들에 대한 묵상』 III에서 인간의 나약성, 죄, 그리고 한계성의 인식에서 비롯된 내적 분란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또한 이러한 내적 혼돈과 불편함을 전지전능하신 신의 목적과 현시에 대한 명상을 통해 어떻게 저항하고 극복해 가는가를 분석한다. 존 던의 이 작품 여러 곳에서는 영적 불안정성, 인간 삶의 유한함, 인간사의 여러 한계에 대한 생각으로 인하여 비롯된 영적 불안함을 성스러운 신에 대한 통찰을 통해 대면하고 극복해 나가는 영적 순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세 부분을 통하여 던은 구원에 대한 신성한 묵상을 통하여 내적으로 자기 파멸적인 고뇌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