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칼 라너가 주장한 근본적 인간 경험의 개념이 인간 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초월적 경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음을 연구하고자 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시각이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특별히 인간이 주체적으로 의미를 형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신적 계시 보다는 사고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내면적 자아가 어떤 측면에서 의미의 원천이 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라너의 사고의 중요성은 근본적 인간 경험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심화 시켰다는 것과 초월의 개념을 초월의 유신론적 이해를 넘어서, 더 확장 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첫번째로 근본적 인간 경험이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한다는 것과 동시에 신에 대한 경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두번째로 인간은 질문이라는 역동성과 존재에 대한 선험적 인식을 통해서 초월 할 수 있다는 것을 도출할 것이다. 세번째로 에르네스트 블로흐와 발터 벤야민에서 드러나는 무신론적 초월의 개념이 초월의 유신론적 이해와 매우 연관이 깊다는 것을 연구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자연주의적 결정론적 특징이 오거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미스 줄리』와 버나드 쇼의 『상심의 집』의 중심 인물들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비교, 고찰한다. 사회적 환경에서의 심리적 갈등의 결과로 자연주의적 결정론을 강조하는 스트린드베리의 희곡은 비극적 파멸을 통한 개인의 고통과 욕망의 결과를 보여준다. 스트린드베리는 『미스 줄리』에서 생존을 위한 남녀의 무자비한 성적 투쟁을 중심으로 인간 본성의 도덕적 타락과 죄를 묘사한다. 반면, 쇼의 『상심의 집』은 주인공 개인의 욕망이나 환상에 의한 파괴보다는 사회다윈주의적 관점에서 희망적인 절망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쇼는 『상심의 집』을 통해 인류를 절망에 빠뜨린 환상이 야기한 전쟁에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자연주의적 시각을 보여준다. 스트린드베리와 쇼의 극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교차된 욕망과 사랑은 결정론적 운명이라는 종교적, 사회적 딜레마를 상징한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불과 글』에서 ‘영성의 글쓰기’가 가능한 잠재성을 모색한다. 그는 불을 상실하고 신비가 없는 서사만이 존재하는 현대 문학을 비판한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의 극단과 고도의 디지털 기술혁명이라는 두 가지 환경에 압도당해 왔다. 따라서 작가가 불의 상상력을 보존하여 작품을 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나 아감벤은 이러한 환경이야말로 오히려 불이 되살아나는 소생의 문학 창조를 모색할 수 있는 잠재성의 영역임을 포착한다. 그는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 신을 관조함에 있다고 밝히면서, 예술작품 창조를 통한 불과 글의 궁극적 통합을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영성의 글쓰기’는 인간의 영적 성장과 재생을 담보하는 예술 행위이다. 『불과 글』은 현대인에게 불에 대한 기억을 소생시키고, ‘문학과 종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