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서 나타 난 볼드윈의 블루스의 정신과 작품 속에 나타난 구원과 사랑의 블루스의 의미를 분석했다. 이 소설에서 볼드윈이 그리는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탄압과 편견과 더불어 이에 대응하는 흑인 남녀의 구원과 사랑의 가능성을 블루스라는 음악적 장르의 적용을 해석했다. 볼드윈이 묘사한 소설 속 블루스의 의미는 흑인의 삶과 투쟁을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다. 볼드윈은 이 소설 속의 젊은 흑인 청년, 파니 헌트가 한 경찰에 의해 보복적으로 강간의 누명으로 잘못 감금되었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블루스의 정신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볼드윈은 주인공 파니의 역경은 물론 파니를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가족들 간의 사랑을 구원과 사랑의 블루스적 감성으로 그려낸다. 볼드윈이 소설 속에서 그리는 구원과 사랑의 블루스는 흑인의 고통과 좌절의 경험 속에서도 흑인 고유의 자산이자 언어인 블루스의 유산을 통해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과 해방의 원천인 것이다. 이러한 볼드윈의 블루스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이해를 논의하고 분석한다.
“『구운몽』에 나타난 죄(罪)와 욕망, 깨달음의 의미”의 연구목적은 성진과 양 소유의 두 세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성진이 욕망을 깨닫는 의미가 무엇인 지를 찾는 것이다. 이는 『구운몽』의 작품론을 심화하는 작업으로서 문학의 중심 영역을 향한 구심론적 전개의 일환이다. II장에서는 성진의 죄를 밝히고 인간세상으로의 윤회가 불가피한 것임을 논의하였다. III장에서는 성진의 욕망이 양소유의 꿈의 세계로 환원되는 과정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양소유는 욕망의 지속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회한이라는 감정의 전복을 통해 다시 현실로 돌아 오는 것을 논의하고 회한이 삶의 전환을 새롭게 이끄는 계기가 됨을 이야기하였다. IV장에서는 『구운몽』의 앞뒤의 서술이 수미상관임을 살펴 성진이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바라보았다. 꿈을 깬 성진은 자신의 인식의 문제를 깨달아 더 승화된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생태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유전적 죄의 확산과 피조물의 파괴에 관한 성찰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대홍수라는 물의 서사를 기본으로 신의 피조물 장조, 인간의 죄와 자연의 파괴, 새로운 세상의 복원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인간 물질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사회와 자연도 황폐해지고 있는 21세기의 상황에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사랑과 생명 사상의 회복이 미래의 인간사회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노아는 죄의 확장성과 자연의 파괴를 목격하며 인간이 모든 원인의 책임이 있다고 믿으며, 홍수 이후의 세상에서 인류의 멸종을 기획하는 고갈의 신학에 직면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창조주의 뜻을 오인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사랑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새로운 인류의 세상을 위해 후손을 축복함으로써 소생의 신학을 위한 장을 연다. 그가 마지막에 목격하는 하늘의 무지갯빛은 창조주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며, 인간에게 불의 상상력을 제공한다.
본 논문은 종교적 언어가 신을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종교적 체험과 종교적 언어의 관계성에서,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는 신적 체험을 전달 하는데 사용되는 언어가 인간의 조건과 존재론적으로 명확히 구별되는 신을 나타낼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신과 세계의 사이에는 차이 혹은 간격이 있다. 왜냐하면 초월적 존재로서 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이해불가능성은 아마도 인간 언어가 지니고 있는 한계점들을 암시하고 있을 것이다. 즉 인간 언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 그러나 세계가 신을 나타낼 수 있는 중요 한 영역들 중의 하나는 바로 경험의 세계이다. 한 개인은 바로 경험의 역동성을 통해서 신을 만나게 된다. 신에 대한 인간의 체험을 전달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언어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언어는 현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재하는 것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어떻게 종교적 언어가 신을 나타낼 수 있는 가에 대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전통과 공동체의 중요성, 종교적 언어의 본질, 그리고 종교적 언어의 변화적 힘 등이 논의될 것이다.
본 논문은 매튜 아놀드의 초기 시 작품 중의 한 편인 숨겨진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특히 작가가 시적 화자를 통하여 빅토리아 시대 당대인들 이 겪었을 다양한 영적, 종교적 상실감과 이에 대한 극복 및 해방을 어떻게 표현 해 주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고찰을 함에 있어서 아놀드는 상실감과 자아의 위기 및 불안정성이라는 주제를 연관 짓고 있음을 역설한다. 작가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인간 사이의 애정과 긴밀성에 대한 가치가 상실 되고 있으며 이는 내적 고통과 슬픔을 야기하고, 이에 대한 회복이야말로 참다운 영적 해방을 주는 방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아놀드가 이 작품 이후에 쓰여진 시작품과 산문들에서도 다시 심도있게 강조되고 있으며 그의 문화 및 문학의 저변에 흐르는 기본 사상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본 연구는 존 던의 사랑시를 통해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 사이의 전통적인 이원론이 재고되는 방식을 고찰한다. 던의 시가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랑을 다루는 두 가지 범주로 대별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속적 사랑과 종교적 사랑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서로 중첩되는 경향을 보인다. 던이 인생 경로에서의 변화 과정이나 회개 등의 개인사적 경험과 관련하여 성 어거스틴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던의 초기/세속적 시와 후기/종교적 시 사이의 대조는 상대적이며 문제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던의 시에 나타난 이런 경향은 이질적인 생각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결합시키고 통합하는 그의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던의 사랑시를 변증법적 논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면서, 신체와 영혼 사이의 분리를 전제하는 어거스틴 의 ‘부정의 신학’과 던의 형이상학적 시학이 빚는 차이에 대해 논의한다. 던의 변증법적인 사랑의 철학은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경험을 통해 영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논리를 궁극적으로 전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