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문학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서가 풍부한 문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세계를 비초월적인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고 있는 책으로 하나님은 인간 세계에 자신을 계시하기 위해 인간의 언어와 소통 방법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성서에서 하나님은 실제적인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상황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 인간의 언어와 표현방법을 통해 자신의 뜻과 섭리를 전달한다. 그래서 성서에는 문학에서 볼 수 있는 소통 방법과 표현법들이 수없이 나타난다. 즉, 다양한 상징 들과 직유, 은유, 평행법 등을 비롯한 다양한 수사법들과 내러티브, 서정시, 서사시, 비극, 풍자, 우화, 축혼가, 비가, 찬가, 웅변, 계시문학, 지혜문학, 서간문 등 다양한 문학 양식들이 사용된다. 따라서 성서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접근으로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문학적인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성서가 가진 풍부한 문학성을 감동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성서가 제공하는 경험의 세계에 생동감 있게 참여하게 함으로써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해석방법이라는 점에서 어떤 다른 접근보다 유용하고 가치를 가진다.
본 논문은 빅토리아 시대의 찬송가 작가 프랜시스 리들리 하버갈의 『산악 처녀들』을 탐색한다. 이 작품은 12쪽짜리 칸타타로『표면 아래』(1874)에서 처음 소개되었으며, 하버갈의 사후인 1881년에『스위스 편지와 알프스 시』에 다시 한 번 게재되었다. 이 글은 알프스 산맥 등반 경험을 글로 쓰곤 했던 하버갈의 삶을 고려할 때『산악 처녀들』은 기독교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적인 담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알프스(영국 문화와는 거리가 먼)는 여성이 능동적 활동, 신체 능력, 자율, 연대, 영웅주의를 즐길 수 있는 분리주의 여성 세계를 떠올릴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이 상상의 세계에서 타락에 대한 기존의 유대- 기독교적 메타내러티브는 수정된다. 또한 더 이상 여성의 과오가 재앙이나 남성 구원자의 출현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고, 신실한 여성들이 그들 스스로의 구원자가 되어 서로를 구원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필립 케이 딕의 과학소설『안드로이드들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와『유빅』에서 나타난 SF적 상상력과 종교적 비전을 고찰하는데 있다. 딕은『안드로이드』와『유빅』에서 우리의 세계가 고도의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로 인해 인간의 탐욕과 불안으로 가득 찬 엔트로피적 세계임을 비판하면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머서주의’와 ‘유빅’이라는 종교적 비전을 제시한다. 딕은 작품에서 ‘머서주의’를 통해 인간 본성의 선과 악을 인정하고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정이입을 기반으로 하는 머서주의는 선과 악의 극단적인 대립을 강조하는 전통적 종교의 경직된 사고를 해체하고 자신과 타자의 경험 공유를 통해 자기 구원을 선언할 수 있음 을 재현한다. 또한 로고스로 확인되는 유빅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딕은 신성은 거룩한 교회나 성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주변과 일상의 삶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종교의 의미가 단순히 믿음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와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궁극적인 신념임을 제시한다.
예언자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다양한 상징과 맥락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둘째,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일상적 차원을 초월한 문자 혹은 기호로서 기능한다. 시인이면서도 예언자적 특성과 문학적 상징을 사용했던 작가들의 목록은 매우 길다.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워즈워드, P. B. 셸리 등과 같은 낭만주의 시인뿐만 아니라 밀턴이나 예이츠, 엘리엇과 같은 시인은 단순한 문학적 표상을 넘어 시대와 문화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상징과 기호로 해독되어야 하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았다. 엘 리엇은 매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시인으로 평가되는 만큼, 그의 대표작인『네 사중주』는 여러 관점에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메시지의 형식과 의미가 생산되고 수용되며 해석되는 방식이 예언자들의 점사언어를 해석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밝히며, 어떻게 예언적 점사언어가 예술로서의 시적 상상력을 고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시학적으로, 언어적으로, 그리고 기호학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를 위해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되던 갑골문의 갑자(甲子)력 체계를 근간으로 한 명리학의 해석체계와 발터 벤야민의 언어기호에 대한 일반적 이론을 근거로 하여, 예언적 기호로서의 언어가 어떻게 문학적, 시학적 가치를 갖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코맥 매카시의『더 로드』에서 종교적인 문제는 가장 논의가 치열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서는 비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중심적이고 중요한 주제 이기는 하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선명하지는 않다. 실제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에 대한 믿음이 실존하는가하는 문제는 작품 전체에 걸쳐 모호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더 로드』라는 작품에서 묘사되는 세상은 황량할 뿐 만 아니라 생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논한다는 것은 회의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작품에서 남자와 그 남자의 아들은 비록 종말을 맞 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는 만약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결코 말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들은 믿음을 잃지 않은 극 소수의 생존자로서 언제나 선한 사람들로 남고자 하는데 이는 서로간의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삶의 의의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그 근저엔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매카시는『더 로드』라는 작품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종교적인 가치체계를 회복함으로써 혼란한 세계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준을 찾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래의 암울한 모습을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의 사명과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논문은 자연의 질서 회복이 인간을 지속 가능토록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필자가 새로이 발견한 다양한 문학적 가치와 종교적 모티프를 지닌 생태 문학 작품들을 조명해 보았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지니고 인간 대 비인간의 심리적이고 실재적인 장벽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눈을 지닐 필요가 있다. 융은 인간의 원형적 ‘자기’의 모습을 ‘식물 모티프’로 설명하였다. 에덴동산의 신화와 어머니 대지의 이미지는 ‘자기’ 실현의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연의 이미저리와 연관된 필자의 분석은 심각한 상황과 병치하고 있는 시기에 낭만적이거나 반동적인 것은 아니다, 이 연구는 생태 문학을 재발견하고 그것의 실제적인 비전을 재해석함으로써 우리 지구의 파괴를 극복하고자 하는 필자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생태 문학의 교훈은 우리들의 생존 의지와 임박한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북돋울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이성교 시의 기독교적 형상화와 구원의식을 구명했다. 이성교는 1956년 등단 후 주로 고향을 소재로 한 향토적, 전통적 서정시를 선보였다. 그러나 제4시집 이후 그는 강원도의 일상적․전통적 소재에 신앙적 감흥과 성서적 사건을 연결한다. 그는 일상의 ‘눈(雪)’을 기독교적 ‘거듭남’으로, ‘까치소리’를 ‘영 성의 소리’로, ‘봄’을 부활을 현시하는 ‘영적 회복’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예수의 형상으로 시화된다. 예수의 형상화는 ‘어머니<임<그 사람’으로 변조된다. 어머니는 실제적(a real) 어머니(이성교의 어머니)에서 실재적 ‘임(당신)’ 으로 형상화되며, ‘임’에서 ‘그 사람’으로 예수의 형상화가 다시 확장되어 자기 희생적 삶과 구도자적 삶을 객관화하여 노래하게 된다. 이성교는 강원도를 시적 배경으로 삼아 실제 지리적 공간을 이상화된 지정학적 구원의 공간으로 노래한다. 그는 풍요의 유년 공간 월천(삼척)을 이상 실현의 공간 강릉(영동지역)으로 확대하며, 강릉 일대는 인심이 가득한 본향으로서의 구원 공간 강원도로 다시 한 번 확장된다.
기독교에서 부활은 인간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중요한 사건이다. 인간은 자신의 죄 값을 치룬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갱생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에 입성한다. 부활은 인간의 이성적 힘이 아닌 신의 은총에 의지할 때 찾아오는 생기이다. 죄와 절망으로 말라버린 심장이 봄처럼 푸르게 소생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날개에 접붙여 영적 죽음에서 구원의 빛으로 갱생의 천상으로 비상하는 것이다. 부활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으로서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다. 본 연구는 그동안 부활에 대해 일반적이고 단편적으로 다룬 기존의 연구에서 벗어나 더욱 세부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기독교에서 부활이 갖는 의의를 더욱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헬레나 마리아 버라몬테스가 그녀의 소설『예수상의 발아래』에서 천국의 신화를 해체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캘리포니아는 미국 대중매체 및 문화를 통해서 “제2의 에덴동산,” 즉, 지상의 “천국”으로 묘사되어 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착취당하는 멕시코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을 지운다는 점이다. 따라서, 버라몬테스가 이 소설에서 이 신화를 해체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 연구는 버라몬테스가 멕시코계 이주 노동자들의 역경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신화를 해체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한, 이 연구는 버라몬테스가 에스트렐라를 통해서 이 세상의 새로운 천국을 건설하는 잠재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증명한다. 새롭게 구상된 천국에서 버라몬테스는 에스트렐라를 그리스도와 같은 인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권이 멕시코인 및 그 외 유색 이주 노동자들에게 확장되며, 착취 및 인종차별이 없는 범세계적인 천국이다.
이 연구는 위선의 실재와 그것이 우리의 ‘좋은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갖는 연관성을 알아보고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다룬다: ‘위선 이란 무엇인가?,’ ‘위선과 연관된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위선 의 해결책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이룰 수 있는가?.’ 첫째로 최근 대중 문화 속 슈퍼히어로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사회적 현상의 맥락에서 덕과 위선의 언어가 우리의 현재 사회에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알아본다. 둘째로, 플래너리 오코너의 두 작품을 통해 ‘위선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으므로 누구나가 은총을 필요로 한다’는 개념이 어떻게 내러티브에 드러나는지 살펴본다. 셋째로 위선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자아로부터의 분리와 자기 이해의 부족을 제시하고, 문학 작품에서 자주 표현되는 것처럼 특히 지성인들과 종교인들이 그러한 특징에 취약한 원인을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위선의 해결책으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제안하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어 타인들과의 관계가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곧, 진정한 자아는 그 존재의 갈림이 전적으로 타인에게 맡겨질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많은 남성 작가들은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여주인공 크리세이드를 소환해 그 시대의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적용함으로써 그들만의 크리세이드를 창조해 왔다. 본 논문은 15세기 스코틀랜드 작가 로버트 헨리슨이『크리세이드의 유언』에서 오랜 기간 배신의 아이콘으로 여겨진 크리세이드를 어떻게 다루고 처벌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헨리슨은 크리세이드가 신성모독의 대가로 저주와 고통을 동시에 받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가 처벌받음으로써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헨리슨은 중세시대 성병으로 간주하였던 나병을 통해 그녀가 배신의 대가를 치르게 했고, 정숙하지 않은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대중에게 교훈을 주고자 했다. 그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는 일그러지고, 신분 하락과 사회적 고립으로 외로움에 시달린다. 마지막까지 질병의 고통 속에서 처참하게 벌을 받고 죽는다. 헨리슨은『크리세이드의 유언』을 경고 삼아 배신한 여성들에게 도덕적 교훈과 중세의 종교적 훈계를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고자 크리세이드를 다시 한번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