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은 인종 경계선의 문제가 비단 짐 크로우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는 문제임을 역설한다. 뿐만 아니라, 인종 경계의 사회적 구별이 엄격했던 짐 크로우 시대에 비해, 혼혈 및 혼종을 통해 인종 경계선이 흐려져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전히 인식론적으로 인종 경계선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에 오히려 그 문제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져가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진 이주와 이산의 문제가 한 데 얽히면서, 인종 경계선의 문제가 민족성, 국가 정체성 등의 문제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로스는 21세기의 문턱에서 『휴먼 스테인』을 통해 바로 이러한 인종 경계선의 복잡한 제 양상을 다루고 있다. 『휴먼 스테인』에서 패싱과 할례는 서로 긴밀하게 결부되면서 소설의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패싱과 할례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인종, 민족성, 국가 정체성의 문제 등 다양한 요소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왔다 는 점에서 『휴먼 스테인』의 주제의식과 긴밀하게 부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에서는 로스가 『휴먼 스테인』에서 뉴밀레니엄의 ‘구별짓기’의 문제를 패싱과 할례라는 기제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계 미국작가 이창래는 미국사회의 변방에 위치한 인물들에게 관심을 보여 왔다. 『투항자』에서 백인여성 실비는 미국사회의 바깥 또는 가장자리에서 살아온 소수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이 소설이 독자들을 인도하는 종교적 담론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투항자』에서 말하는 종교는 특정한 제도권 종교가 아니라 ‘자비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실비는 전쟁의 상황에서 부모님과 첫 사랑을 잃은 후, 평생을 ‘자비의 도구’로 살아온 부모님의 신념을 따라 자비의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실비에게 자비의 실천은 투항의 대상에게 자신을 성적으 로 내어주는 욕망으로 나타난다. 한국 전쟁 후 새희망고아원에서 선교사의 아내로 온 실비와 미국인 참전군인 헥터, 전쟁고아 준이 만나고, 세 사람의 전쟁 서사와 서로를 향한 욕망이 교차된다. 실비는 고아원에서 준이 일으킨 화재 사고로 죽지만, 죽음을 통해서 ‘자비야말로 유일하게 참된 구원’이라는 금언을 실현 한다. 살아남은 준과 헥터는 실비의 책, 『솔페리노의 회상』을 좇아 이탈리아 솔페리노로 순례의 길을 떠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실비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삶의 일부로서 죽음을 대면하게 된다. 『투항자』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요청하는 정동은 자비이며, 자비는 죽음에의 투항을 넘어 타인과 삶에로 투항하게 하는 힘이다.
연구자는 아름다움(칼로카가티아)이 어둠 속에서 드러날 수 있음을 카이 닐센의 『해의 동쪽과 달의 서쪽』을 통해 심미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 스어인 칼로카가티아는 인간 행위의 이상향인, 아름답고 선한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는 심미적 해석을 위해 세 가지 중요한 요소로 분석하였다: 표층미학, 심 층미학, 승화미학(재구성). 칼로카가티아는 카이 닐센의 작품에서 인간의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게 이끈다. 그래서 그림에서 묘사된 요소들(색, 장소와 시간, 영적)을 분석하고자 한 것이고 이 점을 심미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칼로카가티아가 어떻게 심미적 해석을 하는데 사용 되는지, 또한 어둠의 개념을 인식하여 통합적으로 어떤 제안을 제공하는지를 보여준다.
본 연구는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이 정치적이고 유교적 입장에서만 작품 해석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도교적 성향을 지적하는 연구는 미진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본고는 신광한이 살았던 16세기를 고찰하고 그의 도교적 성격의 시에 나타난 사유를 통해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의 도가적 상상력과 구조, 인물 형상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였다. 전체적인 구조는 입몽과 화원국의 잔치에 초대받은 몽중 및 각몽으로 나뉜다. 화원국에 초대된 안빙은 작중의 시비에 전혀 참여하지 않으며 인물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화원국은 그가 목도한 현실적인 투쟁과 시비판단의 세계이다. 안빙은 부조리한 세계에서 최소한의 언어 사용으로 시비와 거리를 두는 도가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각몽 부분은 안빙의 도가적 깨달음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모란으로 상징되는 권력은 언젠가는 죽음으로 마감된다는 작자의 시각을 보여주며 현세에 대한 비판이다. ‘장막을 내리고 정원을 엿보지 않았다’고 하는 마지막 장면은 자기를 비워 세상을 대하는 고요함과 무위의 자세이다. 그는 세상의 모순이 가져 온 정체성의 상실을 안빙이라는 보상 기제를 통해 도가적 사유와 지향으로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관상은 인간의 욕망과 죄성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어둔 밤 속에서 인간 영혼의 상처와 연약함을 치유하고 변화시킴 을 말한다. 이 논문은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자인 도날드 위니캇의 심리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요한의 정화적 관상에 나타나는 치유적이며 인격을 변화시키는 요소들을 탐구하여, 요한의 작품 속의 정화적 관상의 길에서 기억의 정화와 침잠 이 영혼을 치유하고 인격을 통합시킴을 주장한다. 요한의 저술에서 기억의 정화는 과거의 의식적 · 무의식적 기억으로부터 발생하는 인지적 · 정서적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돕고, 관상기도를 통해 영혼에 더 큰 평화와 고요함과 쉼의 정서적 안정감을 공급해 준다. 기억의 정화의 결과로 고요함과 평정심을 얻는 것은 영혼에게 정서적 안전성만이 아니라 곤경과 고통의 시기에 혹독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심리적 탄력성을 제공한다.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영혼의 하나님에 대한 집중과 무의식적 정화를 통해 침잠은 기억과 지성과 의지의 인격을 치유하고 통합시킨다.
디지털 기술혁명의 시대는 인간 삶의 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고등교육 분야에서도 혁신교육은 필수가 되었고, 21세기 인문·교양은 디지털 문해력 향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 학문은 문학과 종교라는 학제 간 연구에 주목함으로써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기독교 학문의 방법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언어보다 이미지에 더욱 관심을 두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디지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언어에 대한 꼼꼼한 읽기, 즉 ‘디지털 문해력’이 필요한 것이다. 조나단 모스토우의 <대행자>는 디지털 기술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과 결과에 대한 종교·철학적 의미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두 주인공인 캔터 박사와 그리어는 디지털 기술혁명의 시대가 이끄는 탈인간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캔터 박사는 대행자의 창시자이지만 기술 문명에 의해 자기 아들을 잃게 되고, 그리어는 대행자에 중독된 아내와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인류문명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존재와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성찰을 통해서 탈인간화를 예방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허버트는 『성전』(The Temple)의 앞부분에 「봉헌」을 배치시킴으로써 그의 모든 시상과 삶의 원천으로서 우주만물의 창조자인 신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절대적 관계를 제시한다. 『성전』은 정체성의 공간적 구조를 만들며 「봉헌」과 함께 그것의 앞부분에 위치한 「교회현관」은 살아있는 보이는 성전인 개개인이 ‘교회’ 의 더 깊은 영적 신비로 입성하도록 준비시킨다. 그들은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죄와 대면하면서 사회전반에 역동적인 긴장을 만들고 유지하고 때때로 해결한다. 본 논문은 「봉헌」을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제단」 , 「희생」 , 「요단강 (I)」 과 함께 연구한다. 「교회현관」 [살수용기] 은 「상인방」과 함께 연구한다. 이로써 ‘교회’로 진입하기 전에 거치는 준비단계인 이 시들이 갖는 의의를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