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도리스 레싱의 「낙원에 뜬 신의 눈」에 재현된 전후 공산주의와 연관한 레싱의 글쓰기 정치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레싱의 아카이브에 따르면,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던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흔들리기 시작했음이 드러난다. 1950년대 초 독일 방문과 1952년 소련 방문에 대한 그녀의 소감을 밝힌 자료는 그러한 공산주의에 대한 열성이 스러지기 시작했음이 감지된다. 또한 지인이나 주변의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공산주의 활동과 자신의 글쓰기를 구분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따라서 레싱의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낙원에 뜬 신의 눈」에 구현된 독일 의사들이 보여주는 체제에 대한 종교적 무아지경 상태를 고찰하는 작업은 레싱의 글쓰기 정치학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본 눈문은 「교회 틈과 분열」에 드러난 조지 허버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시에 “벌레”, “장미”, 그리고 “이슬”이라는 시어가 등장하는데, 이 세 시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 17세기 잉글랜드의 역사적 사건과 그의 종교관을 근거로 이 시를 분석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시에 등장하는 “벌레”는 당시 국왕인 찰스 1세와 가톨릭을 비유한다. 둘째로, “장미”는 제임스 1세와 칼뱅주의 교회를 비유한다. 「장미」와 「영국 교회」에 근거하여, 이 칼뱅주의 교회는 행함과 믿음이 조화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회개로 인간의 죄를 정화하게 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이슬”은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의미하는데, 허버트는 칼뱅주의 교회의 앞날이 염려되나, 세계 각국에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으므로 혼자라도 이 복음을 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므로 허버트는 칼뱅주의 국교도로서, 국교회의 개혁이 좌절되어 슬퍼하면서도, 아메리카로 향하는 칼뱅주의 교회의 행보를 기대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마종기 시의 타인에 대한 사랑을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논구하는 것이다. I부에서는 그가 의사로서 인간의 죽음을 응시하는 위치에서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을 진혼시로 보여주었다는 전제를 밝힌다. II부에서는 죽음을 향한 존재에 대한 심려로서의 사랑이 논의된다. 「해부학교실」 등에서 의학도로서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로 인식하고 타인에 대한 마음 씀으로서의 심려의 사랑이 나타난다. III부에서는 존재망각에서 깨어나는 ‘세계내존재’의 사랑이 논의된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등에서는 자신을 세계내존재로, 타인을 공동현존재로 인식함으로써 심려로서의 사랑이 세계로 확산된다. IV부에서는 공동현존재와의 대화로서의 사랑이 논의된다. 「갈대의 피」 등에서는 ‘나’와 타인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공동현존재로서의 인식이 확고해지며 대화적 언어가 나타난다. 「동생을 위한 조가」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동생에 대한 진혼시이며, 마지막으로 「희망의 대하여」 등은 시인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순간에 구원을 믿으며 종교적 사랑을 추구한다.
본 연구는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소재로 한 구라타 햐쿠조의 스님과 그 제자과 선종의 임제종을 소재로 한 다치하라 마사아키의 겨울의 유산, 이 두 작품을 인간 삶의 갈등과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다. 일제 강점기에 혼란된 정체성을 찾는 주인공의 도정을 그린 겨울의 유산에서는 주인공의 갈등이 결국 아웃사이드로서의 존재를 거부하고 주류로 편입하고자 하는 내적 갈망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한 구원보다 삶에 대해 더 깊은 질문을 던져온 주인공에게 작품의 강력한 모티브인 선종은 현실적인 구원의 방식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스님과 그 제자에서는 일본 사회의 전통적 인정과 의리라는 사회규범이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구원은 악을 지닌 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악인정기설로 우리 모두는 본래 이미 구원되어 있다는 믿음과 비승비속(非僧非俗)인 채로 순수하고 성실하게 살아야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종교적 구원과 현실적 구원은 여전한 평행선임을 보면서, 구원이란 우리 모든 인간의 평생 과업임을 상기하게 된다.
본 연구는 권정생의 작품을 신약성서 누가복음과 함께 읽으며 누가복음의 신학적 관점을 통해 권정생의 작품을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권정생의 작품 세계에는 가난한 캐릭터가 매우 많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그 가난한 캐릭터들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역전에 대한 소망을 전한다는 것이다. 전복과 역설로 설명되는 이러한 모티프는 성서에 기초한 그의 기독교 사상에 기인한다. 이러한 특징은 상호텍스트성 개념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신약성서 누가복음이 하이포텍스트가 되고, 권정생 작품 중 강아지똥과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가 하이퍼텍스트에 해당된다.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가 복받는 새로운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 누가복음 이야기는 권정생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강아지똥과 똘배 역시 가난한 존재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 이처럼 누가복음을 통해 권정생 작품을 읽을 때 권정생이 표현하고자 있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본 논문은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애티커스 핀치와 그의 아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애티커스 핀치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첫째, ‘정의’의 문제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인종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애티커스 핀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가치인 사랑과 관용을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둘째, ‘공감에 대한 강조’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애티커스 핀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가치인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죄성과 용서의 문제’이다. 애티커스 핀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모든 사람이 죄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용서와 자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애티커스 핀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가치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정은궐의 홍천기는 하늘의 신비로운 섭리와 인간 삶의 현상을 종교적 관점에서 예술적으로 담아내는 작품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망과 분노의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강렬하게 분출될 때 마가 자리하게 된다. 마는 강력한 욕망이나 분노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을 자신의 먹잇감으로 삼는 파괴적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신에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없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소설에서 천재적 화공인 홍은오는 산수화와 초상화를 통해 여백이 드러내는 미학적 가치를 보여준다. 부친의 재능을 이어받은 홍천기 역시 여백을 중시하는 화풍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어간다. 몸 안에 마가 자리한 하람은 천문에 능한 자로 자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홍천기와 천생연분의 관계를 이룬다. 이들의 삶과 사랑은 여러 신령한 존재와 상호작용한다. 신령함이 부재한 인간과 사회에는 마에 자리를 내어준다. 물신숭배로 채색된 현대인 초상화의 두 눈동자에 신령함이라는 여백의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여백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승화와 영적 도약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