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장애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본문인 요한복음 9장에 나 오는 치유 받은 시각장애인의 영성과 그 영향에 대해 고찰한다. 오늘날 우리 사 회는 장애로 인한 고통에 대해 예민함을 상실하였다. 세계 인구의 약 10%가 장 애를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장애문제를 연구하고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께서 한 시각장애인을 고친 사 건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죄-장애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킨다. 그 시각장애 인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의 과정을 통해 신앙이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영성은 인간 자신에 대한 더 넓은 개념을 갖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유대인 의 전통에 의하면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비정상이며 더 이상 능력이 없는 사람 들로 정의되었다. 요한복음 9장의 이야기는 장애는 세상을 섬기는 하나님의 선 물이라는 이해의 토대가 되고 있다. 장애인은 무엇인가가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능력이 다른 존재임을 보여준다.
손창섭 소설은 장애인물이 특징적으로 많이 등장하며 그러한 점에서 그의 소 설은 ‘병리적,’ ‘병적,’ ‘장애소설’로 지칭되었다. 기존의 논의들은 장애를 반사 회, 비도덕, 불건강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작가 개인의 전기나 전후라는 사 회적 알레고리로 해명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를 통해 말하고자 의미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분석되지 않았는데 이 글은 장애 인물의 시각에서 손창섭 소설을 살 펴보았다. 손창섭 소설은 ‘같은 인간’의 시각에서 주류 사회의 가치를 추종하는 인물을 불건강한 인물로 배치함으로써 ‘건강’과 ‘건전’의 신화를 전복한다. 미결 정의 시각에서 양자의 경계를 무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근대의 속물성을 공 격하고 있다. 또한 언어와 시선이 구성하는 폭력성을 간파하며 하위 배치된 영 역에 대한 공감과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제도권 언어가 자기중심적 이기성과 폭력성에 물들어 있음을 비판하며 불구/신체를 가진 장애 인물들의 신음과 목소 리를 적극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손창섭 소설은 장애를 통해 중심 권력과 지배 담론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주변화 된 존재에 대한 공감을 촉구하 는 타자의 윤리를 담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화』는 윤의병 신부가 쓴 한국최초의 천주교 소설이다. 1939년부터 1950 년 경향잡지에 연재되었으며 병인박해를 배경으로 한 군난소설이다. 본고에 서는 『은화』의 창작배경과 특징을 고찰하였으며 통합적 생태론의 입장에서 생 태 이야기로서 『은화』의 의의를 규명하였다. 『은화』는 성직자에 의해 집필되 고 성직자의 적극적인 기획으로 발표될 수 있었다. 한국 천주교의 경우 성직자 가 천주교 문학의 주역이었으며, 군난소설 『은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군난소설 『은화』의 등장은 소설에 대한 교회의 시각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한 국의 천주교 소설 『은화』는 생태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은화』는 종교와 정치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신앙의 주체인 인간을 ‘꽃’으로 비유하여 환난 중에도 꽃처럼 피어나는 신앙인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지구생태 위기 시대인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함으로써 생 존할 수 있는 지혜와 더불어 ‘이주’라는 방식으로 형상화한 서사를 통해 삶의 터 전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실천을 종교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은 지금까지 포스트모던 담론으로서 G. W. F. 헤겔, I. 칸트 등 이성중심주의에 서 이성의 한계와 진리의 현존성의 부재, 즉 진리의 불 가해성에만 관심을 두면서 말의 유희에 고착된 비정치적이고 현실 사회에 유용 하지 않은 현학적인 사변적 학문으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데리다의 연구를 깊 게 진행한 학자들은 데리다의 해체론 이론이 얼마나 현실 사회에 직접적 관계 를 가지고 유효한 이론적 특을 제공하는지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데리다의 『불한당들』은 9․11 사건 이후 이라크를 재침공한 미국의 정치적 역사를 언급 하면서, 미국의 패권주의 형태를 불한당으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과거 에 아프가니스탄을 대상으로 러시아와의 간접적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즉 미국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길러낸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전사들이 어떻게 수 십 년 이후 미국을 직접 공격하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자가면역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데리다는 패권주의의 정치적 행태가 자기를 보호하는 정책의 일환이 거꾸로 자기를 공격하는 결과적 구조를 가짐을 폭로하면서, 정치적 차원이나 개 인적 차원의모든 자기는 진정으로 타자를 품어주는 레비나스적 윤리의 차원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데위히(Hadewijch of Antwerp)는 중세 그리스도교의 여성 신비가이며 베 긴이고, 신비문학가로서 13세기 전반에서 중후반 무렵에 현대의 벨기에의 안트 베르펜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다양한 문학 장르를 통하여 자신과 신적 연인 민느(Minne)의 신비적인 사랑의 길을 저술하면서 궁정풍 사 랑의 구도 및 관용적 어법을 사용하였다. 본 연구는 하데위히의 작품 안에 궁정 풍 사랑의 특성과 상응하는 내용들을 조사하여 그의 작품 안에 궁정풍 사랑의 요소들이 풍부히 담겨 있음을 제시한다. 이를 위하여 그의 작품 중에서 『편지』 와 『비전』 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하데위히는 궁정풍 사랑을 해석의 틀로 삼 아 신비 작품을 저술함으로써 독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신비적인 길을 쉽게 이해 하도록 도움을 주었고, 그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신적 연인으로 확장하 여 사고하도록 의식의 지평을 열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자료를 토대로 볼 때 과연 하데위히의 작품들은 종교적 궁정풍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 다.
글은 칼 G. 융의 꿈과 환상을 소재로 한 ‘신화적 수필,’ 『레드북』에 나타 난 무의식의 생태 영성에 관한 종교적 성찰에 관한 것이다. 이 글에서 강조하는 무의식의 생태 영성은 인간의 분절적인 자아인식을 의식과 무의식의 신비적 융 합을 통해 대극 합일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융은 자신의 모든 학 술적·문학적 업적은 그가 직접 경험한 ‘무의식의 실현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융 은 1957년에 자신이 과거 16년 동안(1914- 1930) 집필해 왔던 『레드북』을 처음 으로 밝힌다. 융은 『레드북』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신적 원형의 이 미지들을 대면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해 가는 ‘자기’실현의 개성화 과정을 경험한다. 『레드북』은 융이 사망 한 후 약 5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공개된다. 이 글은 『레드북』에 나타난 무의식의 주요 원형인 ‘엘 리야’, ‘살로메’, ‘검은 뱀,’ 그리고 ‘필레몬’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융이 추구했던 무의식의 생태 영성의 종교적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레드북』은 탄생과 소멸, 빛과 어둠, 의식과 무의식, 개인과 초개인, 인간과 신성과 같은 대극들이 종합되 는 차원에서 구현되는 융합의 신비를 추구한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 B. Yeats)가 자신의 시와 작품에서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말하려고 한다. 그의 시 『행복한 목동의 노래』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그 시에 나오는 “말”이나 “위로자”와 같은 단어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깊이 관련 되어 있다. 예이츠는 현 시대의 사람들은 진리에 더 이상 관심이 없고 하찮은 진리를 숭배하는 “회색진리”에 관심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예이츠는 “말씀 만이 참으로 선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성경은 말씀은 하나님이시며 하나 님의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예이츠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령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한다면,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 릴 것이라고 믿는다. 예이츠는 이 시에서 “말”이란 단어를 일곱 번이나 사용하 여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이츠는 회색진리로 물든 이 세상이 참된 “진리”로 물든 세상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이츠는 상징적인 언어들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자신의 시에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예이츠가 이 시에서 사용한 말이란 단어는 바로 하 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있다. 예이츠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위로자”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조지 엘리엇은 종교적 기반 없는 세속적 도덕관을 작품 속에서 구현한 작가 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에 반대해 본 논문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대니얼 디 론더에 나타난 유대 신비주의(카발라)의 양상을 분석하면서 엘리엇을 낭만주 의의 영향을 받은 종교적 작가로서 탐구한다. 유대 신비주의 사상은 인간의 자연적 삶 자체가 초자연적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 논문은 대 니얼, 궨돌린, 그랜코트, 마이러, 모디카이라는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 작 품에서 유대 신비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우선 대니얼은 유대 신비주의에서 원형적 인간인 아담 카드몬을 상징함으로써 세계 구원을 위한 메시아적 사명을 가진 인물이다. 이에 반해 그랜코트는 악의 상징이자 화 신이다. 모디카이, 마이러, 대니얼의 연합은 이스라엘의 연합을 상징하고, 대니 얼을 통한 궨돌린의 변화는 이스라엘이 세계의 도덕적 견인차가 됨을 말해준다. 결국, 엘리엇은 이 작품에서 이기적인 자기 추구에 빠져 있는 당대의 현실 앞에서, 공동체와 전통을 매개로 한 도덕의 갱신이라는 목표를 유대 신비주의 비전 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진보적 운동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시기 시인 들은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시들을 적지 않게 창작하였는데, 이에 는 성경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교회력이 다수 등장한다. 1885년 아펜젤러와 언 더우드목사가 한국 선교를 위하여 제물포에 상륙한 후 약 100년밖에 되지 않았 음에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성경적인가. 본고는 당 시 사회비판 시에 나타난 기독교, 특히 신관과 내세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시들은 신성보다는 인간화된 예수로 묘사되며, 나아가 예수는 민중을 상 징한다. 인간예수의 강조는 십자가형이란 극한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간 자 이기 때문에 이 땅의 비극적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바탕 으로 하고 있다. 지식인 시인들은 사회의 모순이 신의 침묵에 원인이 있다고 보 았고, 신은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종교를 거부하게 되고, 민중이 예수 더 나아가 투사 자신이 예수가 된다. 이러한 기독교를 소재 로 한 1980년대의 사회비판 시가 갖는 의의는 기독교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해 방문학을 지향했다는 데 있다.
이 논문은 생태적 자아 개념에 비추어 루이자 메이 올코트의 『병원 스케치』 에 드러나는 생태적 삶의 양식을 고찰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 연구는 생태적 자 아의 특징으로 관계를 중시하는 자아,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재구성하 며 변화하는 자아, 그리고 타인과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아를 상정한다. 엠마누 엘 레비나스는 우리의 자아가 고정불변의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타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과제에 응답해가며 성숙해가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본다. 레비나스의 자아에 대한 관점은 생태적 공동체로 이끄는 태도를 만들어낸 다. 올코트의 『병원 스케치』 에 등장하는 트립 간호사는 남성처럼 전쟁에 참여 하고자 간호사를 지망하지만 환자들과의 소통과정에서 성구분을 넘어 타인의 아픔에 응답하며 자신을 헌신하는 변화를 보인다. 환자들 역시 병원 공동체를 위해 관계에 집중하고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며 타인의 호소에 따르고자 한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간호사와 부상병의 상호작용은 서로의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관계망 속에서 부단히 타인에 집중하는 생태적 관계, 나아가 생태적 공동 체를 만들어 낸다.
바울 신학은 영과 육체를 나누는 이원론의 관점을 지니고 있다. 예이츠 역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는 이원론의 사상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의 이원론에 관한 관점은 예이츠의 사상과 다르다. 바울은 영과 육체에 대해서 배 타적 이원론의 입장인데 반해, 예이츠는 상보보완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 고 있다. 바울의 이원론은 인간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제고함으로서 종교적 목적 을 이루는 긍정적이고도 필수적인 요소를 지닌다. 그러나 그의 이원론은 보다 더 극단화되거나 배타적으로 이원론화 되어 더욱 엄격한 금욕주의를 산출한다. 결국 인간의 생명의 본성을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예이츠는 종교 안에 갇힌 배타적 이원론으로부터 파생된 억압적인 금욕의 한계성을 간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호 보완적인 이원론에 대한 관점을 바탕으로 종교로부터 파생된 배타적 이원론의 한계성을 극복한다. 결과적으로 예이츠는 정신과 육체 에 대한 이분법적 이원론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T. S. 엘리엇은 『네 사중주』에서 시를 창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능가운데 하나인 기억의 힘을 사용해서 작품을 썼으며, 기억은 정점(靜點)을 관상(觀想)하 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는 베르그송의 순수기억에 영향을 받 았지만 베르그송의 철학을 절대가 없기에 허약한 신비주의라고 폄하 했다. 이런 점에서 『네 사중주』는 단테나 아우수스티누스의 기억의 전통을 따르며, 서양 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관점에서 정점은 이해된다. 이런 기억은 일종의 축복이 며 어둠의 길인 욕망을 제어하여 부정의 길에 거쳐서 정점에 이르게 하여 하나 님을 체험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암시된다. 욕망을 제어하여 멸각에 이르는 부정 의 길은 정점에 도달하는 길이나 인간의 욕망은 제어할 수 없기에 인간이 정점 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 사중주』에서 기억은 신성한 기억과 정점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는 암시를 준다. 신성한 기억과 정점은 기독교에서 하나님 을 만나는 정신적이고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4차원의 종교적인 세계이기에 모순 인 역설로 설명된다. 리틀기딩 교회의 신성한 역사 앞에서 신성한 기억의 축복 을 받은 엘리엇은 과거의 집착과 욕망이 사라지고, 기억의 힘은 사랑으로 승화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로운 축복의 순간인 정점의 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