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는 조선전기부터 제작된 것으로 기록에 나타나지만, 현존하는 의궤 중 가 장 오래된 것이 선조대 후반에 제작된 것들이다. 따라서 광해군대에 제작된 의 궤는 현존 의궤 중에는 상당히 시기가 오래된 것으로 분류된다. 광해군대에 제 작된 주요 의궤는, 1) 선조의 국장, 부묘, 묘호 개상, 존호와 관련 의궤, 2) 명나 라 사신을 영접한 의궤, 3) 생모인 공성왕후의 추숭에 관계된 의궤, 4) 화약무기 를 제작한 과정인 화기도감의궤, 5) 천문관측기구를 보관하는 흠경각과 보루 각 건축 의궤, 6) 제기 제작에 관한 의궤, 7) 삼강행실도를 새로 펴낸 과정을 정리한 동국신속삼강행실찬집청의궤 등이다. 이 중 화기도감의궤와 흠경 각영건의궤, 보루각영건의궤, 영접도감도청의궤는 광해군대에만 특별히 제작된 의궤들로서,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룬 광해군 정권의 성격 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광해군 재위 16년간 27종의 의궤가 편찬되었 다. 그런데 그 중에 6종이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외교와 관련되는 의궤라는 점이 우선 주목이 된다. 광해군은 국방이나 외교, 과학에서만은 탁월한 군주임 에는 분명하였다. 명과 청의 세력교체라는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 탕으로 실리외교를 수행한 것이나 화기제작을 통해 국방 강화에 주력함으로써, ‘예견된 전쟁’을 슬기롭게 막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과학 중시의 사고가 그 바탕 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의 시대에 제작된 영접도감의궤과 화기도감의궤, 흠경각영건의궤 등은 그 능력을 축소판처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광해군 정 권의 주역인 북인인 점을 고려하면, 북인의 학문적 원류가 되었던 남명학파나 화담학파의 博學, 실천 중시의 사상적 흐름이 광해군대의 국방, 외교, 과학적 분 위기와도 일정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