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계층사회 연구의 쟁점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과연 청동기시대 계층사 회가 불평등사회인가 아니면 평등사회인가의 문제이다. 두 번째는 과연 지석묘가 청동기시대 지배자 의 권력을 표상하는 상징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청동기시대 계층사 회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특히, 개인화한 수장사회의 특징으로 알려진 유력개인 대형 단독묘, 귀속지위, 전문 공인, 경제적 재화의 분배 네트워크가 청동기시대에서 확인되는지를 살 펴보았다. 청동기시대 분묘는 군집할 뿐 독립적인 배치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단독묘로 인정되지 않 았지만 지석묘, 특히 대형급 묘역지석묘는 대부분 분묘로 조성된 점, 대형 묘역이 1인을 위하여 조성 된 점으로 볼 때 단독묘로 볼 수 있다고 파악하였다. 귀속지위는 유아 인골이 출토된 분묘와 연접으로 축조된 묘역지석묘가 유력개인 뿐 아니라 유력집단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청동기시대에 도 귀속지위가 출현한 것으로 제시하였다. 전문 공인과 경제적 재화의 분배 네트워크는 옥·석기·적 색마연토기의 생산과 교역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전문 공인과 경제적 재화의 분배 네트워크 역시 청 동기시대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전문 공인은 반 전업형의 형태로 파악되었고, 경제적 재화의 분배 네트 워크는 분배가 아닌 교역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파악하였다. 검토 결과 청동기시대 계층사회는 정 치·사회적 측면은 개인화한 수장사회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경제적인 측면은 개인화한 수 장사회로 나아가지 못한 과도기적 양상이라고 생각된다. 지석묘의 공동체적 의미는 비일상적 행위의 반복적 시행에 따른 결과로 보았다. 대형급 묘역지석묘는 수장의 단독묘로서 계층성을 상징하는 분명 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하지만 지석묘의 축조와 의례가 반복적으로 시행되면서 지석묘는‘특별한 것’이 되어 분묘뿐 아니라 묘표석, 제단, 공공 기념물 등 다양한 의미로 확장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 에 지석묘에서 확인되는 공동체적 의미는 분묘로서 수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과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지석묘가 분묘로서 수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인식되었고 그것이 발전하여 다 양한 의미를 갖는 다중적인 개념을 형성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