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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남계서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원은 지역의 고등 교육기관, 출판사 및 도서관이라는 직접적으로 교육과 관련된 역할 외에, 수많은 부작용 을 불러일으킨 향촌 유림의 지역운영 혹은 지배 기관으로 작용하였고, 중앙 정계와 연결고리를 형성하며 학파와 정파 활동의 지역 거점 역할까 지 수행하였다. 특히 학파와 정파 활동의 지역 거점 역할이라는 측면에 서 남계서원의 경우, 건립과정이나 건립초기에는 남명학파나 북인정권 의 영향아래에 있었지만, 인조반정이후에는 남인계 서원으로, 戊申亂과 갑술환국이후에는 다시 노론계 서원으로 그 성격이 변화했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자면 남계서원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켜갔는지, 그리고 왜 남계서원이 그렇게 변화해 갈 수밖에 없었는지는 남계서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이 글은 남계서원의 성격변화와 그 과정을 살펴보고, 남계 서원에 주향되고 있는 정여창의 위상은 그와 같은 서원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논의는 먼저 서원을 세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창건 당시 남계서원의 성격을 살펴본 후, 이것을 이어 후대로 내려가면서 남인계 서원과 노론계 서원으로 그 성격이 변해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고, 마지막 결론에서 김굉필과의 비교에서 정여창의 위상을 살펴보고 있다. 김굉필의 경우 그의 진외증손인 정구에 의해 천곡서원과 도동서원 등에서 정이와 주희를 직계승한 인물로 추존되는 모습과 함께, 고향인 현풍과 성주ᆞ고령 등의 낙동강 중류 지역에서 상당한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에 정여창은 남명학파의 몰락 이후, 뚜렷한 계승자의 부재와 함께 정파와 학파적 기반마저 상실함으로써 더 이상의 위상제 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남명학파의 몰락은 남명학의 전승뿐만 아니 라, 남계서원의 성격변화와 정여창의 위상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