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세기 중엽에 일본 외무성에서 편찬된 「죽도고증」이 지금의 독도 영유권 관련 이슈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흔히 「죽도고증」이 독도 영유권 관련 자료인양 인식되고 있으나, 이 자료는 어디까지이 고 울릉도 영유권 관련 자료이다. 19세기 중엽 당시 일본 외무성에서 울릉도 영유권에 대해 논의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 에도 시대 이래의 문서들에서 울릉도는 항상 독도와 함께 취급되어 왔다. 「죽 도고증」은 이러한 문서들을 저본으로 편찬된 것이다. 따라서 이 자료는 에도 시대 독도 관련 기록에 대한 내비게이션의 역할도 한다. 「죽도고증」은 또 다른 의미에서 지금의 일본의 독도 영유권 논리와 관계가 있다. 「죽도 고증」에 기술되어 있는 19세기 당시의 외무성에서의 울릉도 영유권 관련 논의에서 독도는 제외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때 기록국장 와타나베 히로모토가 울릉도가 일본 섬일 수도 있다 는 주장을 하였는데 이 주장과 함께 그가 자신의 논리를 펼친 방법 -섬의 명칭 혼란-, 근거 자료-오키의 마쓰시마-가 후에 1950년대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논리와 주장의 토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