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9세기 후반 이후 영남 우도지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한 蘆沙學 派 문인들의 학문적 연원이 되는 蘆沙 奇正鎭(1798∼1879)의 학문 활동을 韓 末 畿湖學界의 동향과 관련하여 고찰한 것이다. 門戶 分立에 따른 학파 분화, 그리고 이에 따른 다양한 학문적 입장의 대두 속에서 기정진의 主理的 학문 경 향이 가지는 위상을 검토하였으며, 특히 20세기 초반 기호학계의 논란이 되었 던 理 중심의 이기론과 호락논쟁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았다. 기정진은 호남을 중심으로 꾸준히 강학활동을 펼치면서 그 학문적 영향력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호학계의 학문 연원이 되는 栗谷 성리설에 대한 비 판적 입장을 제시하며 자신의 학설을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당시 기호학계의 최대 논란 대상이었던 호락논쟁에 대해 인성물성동이를 중심으로 비판적 지양 의 입장을 취하였다. 리를 중심으로 한 그의 성리설은 실천적 위정척사로 현실 화되었으며, 이러한 그의 학문관은 그의 문인에게 계승되어 호남과 영남 우도 지역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그의 학문 활동을 영 남 우도의 학계 지형에 유의하여 전반적으로 검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