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ing for the identity of Korean Calligraphy is quite important but not easy work also hard to define what it is in a sentence. However, it is needed to find out what is identity of it. The reason why it is hard to find out is that Korean have basic identity but the identity of Calligraphy has been different by centuries. It can be largely divided into three reasons. Firstly, the period from three Kingdoms to the beginning of Goryeo, Secondly, the period between the end of Goryeo and the middle of Joseon, this is the time when the doctrines of Chu-tzu was dominated to the society. Thirdly, the end of Josen is the period when scholars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were appeared. In this periods, Buddhism was flourished but Buddhist insisted the intercommunication of three religions named Confucianism, Buddhism and Immortal Taoism. The ancient tasteful ideas was called Geupbaek(皀帛) scholar in Koguryo, Hwarang(花郞) scholar in Shilla and Taoist in Goryeo that could be unique. This intercommunication of three religions was expressed as scholar or Taoist by the people named Choi Chiwon, Lim Chun, Lee Gyubo and etc. They could have different the period of their lifetime or ages, but have the similarity of the selection of words through their articles. Thus, it could be known that the identity of calligrapy was considered by the articles about calligraphy or poems of these three people mentioned formerly. From this research, the identity of calligraphy from late Shilla to early Goryeo was influenced by the intercommunication of three religions based on tasteful ideas followed by Hwarang sprit and the scholar thought. And, it is summarized that the identity of calligraphy is Taoist ideology because this scholar thought could be concluded to Taoist ideology through the directivity of great writing and conduct.
서예의 경우 남아있는 자료로 한국서예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한다면 두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주로 비학 혹은 금석문 서예에 보이는 부정형성, 무작위성을 들 수 있다. 이런 점은 한국미 특질로 말해지는 자연미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 는데, 이런 분석이 帖學의 측면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 은 여전히 한계다. 다른 하나는 왕희지 추존에 담긴 유가 중화 미학 틀에서 논의되는 한국서예정체성에 대한 규명이다. 한국 서예역사에서 왕희지 추존 현상은 강하게 나타났지만, 한국최 대의 서예가로 평가받는 金生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이처럼 한 작가를 평가할 때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 해가 가능하다. 이에 왕희지 중심주의와 중화미학의 틀에서 한 국서예정체성을 규명할 때는 한국서예가들이 중국서예가들과 어떤 차별상을 보였는가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통해 ‘古雅한 예술 측면으로서의 한국서예미의 특질과 정체성’을 밝힐 필요 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왕희지 서예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밝힐 필요가 있다. 그 ‘다른 점’에 한국인의 심성과 미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偏’에 담긴 서예를 예술에서의 기교의 공졸 혹은 美의 우열이란 점을 기준으로 하 여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천진스러움과 天機를 담아낸 서체, 즉 자신의 감성을 어떤 서체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했는 가 하는 점을 심도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제 서예에서의 문화사대주의인 왕희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오늘날 ‘우리들의 눈’으로 과거 한국의 위대한 서예가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통해 한국서예정체성을 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