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읍성을 중심으로 구축된 방어체제가 한계를 드러내 자 산성의 전략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과 맺은 정축약조로 인해 산성 수축의 대상지가 하삼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따라서 외방산성의 수·개축은 조선 후기 산성 축성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본 연구에서는 하삼도 지역의 산성을 중심으로 문헌기록과 주요 산성의 조사성과를 검토하고 중앙의 산성과 비교하 여 살펴봄으로써 조선 후기 산성 축성법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많은 산성이 외성·중성 등을 포함한 복합적인 구조를 보이며, 대형화 되는 특징이 있다. 성벽은 병자호란 이후 수축된 남한산성의 사례처럼 허튼층쌓기에 쐐 기돌을 이용하여 틈을 보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또한 1711년에 축성된 북한산성은 입지에 따라 성벽의 높이를 달리하고, 마름돌 층지어쌓기, 다듬돌 바른층쌓기법 등이 도 입되는데, 이후 일부 지방의 산성 축성에도 적용되었다. 수성 체계에도 변화가 나타나 화기의 사용에 대응한 방어시설로 총안과 포루가 새롭 게 도입되었다. 총안은 여장 상면에 자연석을 활용하여 축조하였으며, 포루는 치성과 결 합되거나 조망이 유리한 지점의 성벽 안쪽에 설치하였다. 남한산성의 사례와 같이 용도 (甬道)와 같이 길게 이어진 치(雉)에 포루를 결합한 형태도 보인다. 조선 후기 산성의 축성법을 검토한 결과 외방산성은 중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입지, 전략적 가치, 사회적 상황 등에 따라 적절한 축성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추가 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조선 후기 산성의 축성법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