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박생광이 1977년 이후 새롭게 제시한 다양한 소재 중 민족 수난의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을 분석하고 그 속에 담긴 조형성, 색채, 기법 등을 통해 한국화의 현대화 과정 을 살펴보는 데 있다.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 채색화는 일제 강점기 때 유입되어 성행한 일본 화풍의 잔재로 인식되어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으 로 일부 작가들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세계로의 개방화가 시작되면서 민족 정체성을 찾으려는 국학 운동이 시작되었고 미술계도 이에 발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화의 채색 분야도 일본 화풍의 아류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민족 전통의 색채와 기법을 연구하 면서,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이를 계기로 일 군의 청년작가들은 과감히 장르의 한계를 넘는 독창적인 채색 화로의 변모를 꾀하였다. 1977년 이후 박생광은 이전에 사용하던 일본 화풍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미감이 서린 채색 화풍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이 시기에 보여준 그의 화풍은 전통 민화와 민속물, 무속과 무 속화, 불교와 불화, 수난의 역사적인 사건 등을 소재로 독창적 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의 구성 방법을 살펴보면 서구의 투시법과 원근법을 무 시하고 전통 민화나 불화, 무속화의 평면 조형법과 색 면 추상 법을 작품에 과감히 수용하여 새로운 화면을 창출하였다. 색채 를 살펴보면 서구의 색채 미에 경도되어 잊혀져 가던 전통 오 방색을 연구하여 작품에 과감히 사용하였다. 또한, 단청이나 불 화, 무속화에 나타나는 보색의 강렬한 대비 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1977년 이후 박생광의 독창적인 화풍에서 중 요한 요소가 되었다. 기법적으로는 일본의 몽롱체가 유행하던 미술계의 사조를 벗어나 조선 궁중 진채 화풍을 복원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다양한 기법을 선보였다. 이 시기 박생광이 시도한 한민족의 전통적인 예술성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들은 한국 회화사에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생광은 1982년부터 이와 같은 도전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조선 말기부터 시작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으로 인해 우리 민 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전봉준>, 〈명성황후>가 있다. 이 작품들은 기존 의 기록물로 제작한 역사화 개념에서 벗어나 작가의 주체적 역 사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당시의 사회적 화두 였던 일제 청산과 민족성 회복에 큰 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전문 인력들에 대한 현황을 분석하여, 향후 건립될 국립자연사박물관 에서 근무할 전문 인력들을 어떻게 양성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지난 20여 년간 여러 학술단체와 전 문가 그룹의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그 중에서도 한국지구과학회는 자연사박물관과 과학관에 관한 여러 논문 발표를 통해 활발한 논의와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향후 건립될 국립자연사 박물관은 숙련된 전문인력들을 필요로 하며, 한국지구과학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맞춤형 전문과정을 설치하여 다양한 분 야에 맞추어 양성해야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기능이 극대화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1987년부터 2009년까지 국내외 자연사박물관에 대한 방문 조사와 학술적 연구를 통하여 자연사와 자연사박물관의 기원과 변천 과정을 정리하였으며, 국내 자연사 관련 박물관의 질적 양적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 하였다. 한국의 자연사박물관 수는 세계 100위권 밖에 머물러 있고 학문적 연구 능력과 표본 관리 능력 및 출판 능력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연구원의 수가 너무 적고 연구 기반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며, 전시-교육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하여 연구 결과물과 학술지를 발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최적화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국립자연사박물관 설립 전에 연구-표본 관리-출판-전시-교육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