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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내암집󰡕 간행의 준비 단계에서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필사본과 기타 고문서들에 주목하여, 선조 시기 정인홍의 정치적 동향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 으로 한다. 오늘날 정인홍은 주로 광해군 시기의 權臣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정 치적 생애의 대부분은 선조의 재위 기간에 해당한다. 정인홍은 문과에 응시하 지 않고 유일로서 발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조시기에 종6품에서 종2품에 이르는 당시까지 문과 출신자가 아닌 경우로는 전례가 없었던 현달한 관직에 두루 임명되었다. 선조 시기에는 그를 뒷받침해 줄 뚜렷한 정치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카리스마의 원천은 무엇보다도 국왕의 신임에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신임의 배경은 강직하고 학식이 깊은 인물로서의 그의 명성이었 으며, 임란 시기의 의병활동이 보여준 애국심이었다. 그가 한사코 관직을 사퇴하고서 ‘山野의 신하’로 남고자 했던 것은, 무엇보다 도 당쟁 시대인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나아가 포부를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국왕의 신임에 의거하여 사직소나 사은소 등의 형 태로 주어진 정치적 상황에 대한 발언은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산림 정치의 원형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군주가 인물의 선악을 옳게 판단하여 군자 의 당을 자신의 측근으로 삼고 그들에게 핵심적인 권력을 맡겨서 소인의 당이 조정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당쟁 시대에 처한 정인홍의 일관된 정치적 주장이었다. 그가 선조시기에 이미 많은 정적들을 만든 것도 이러한 비 타협적인 정치노선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