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사상적 내용은 일불승(一佛乘)한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정신을 바탕으로 청문(聽聞)과 수지(受持)가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 서는 일찍이 신라와 고려의 통일 과정에서 사상적 밑받침이 되었다고 할 수 있 다. 또 통일신라시대 비록 정토불교가 성행하였고, 고려시대에 선불교가 유행하 였지만, 대중들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지속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경전은 『법화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내면에 문화적 DNA로 새겨져 있는 법화사상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는 적겠지만, 조선 유교사회에 들어서 는 『법화경』과 법화사상에 대해 주목하는 일은 아직은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조선사회가 20세기와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화사상 나아가 한국불교가 걸어 나가야 하는 방향과도 직결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조선초기 불교의례의 존립에 대해 『법화경』과 법화사상의 맥락 에서 소화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법화경』이 지니고 있는 대승불교의 논리, 즉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혁신적인 사유에 매료되어 있다. 또한 『법화경』은 인간은 누구나 내면적인 가치를 존중받아야 하며 인격적인 차원에서 평등하다 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례의 차원에서 조선초기에도 여전히 불교경전 은 그러한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태조와 태종대는 물론이고 세종과 문 종대에도 여전히 불교의 힘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선왕과 선후의 극락왕생을 빌 고 있는 모습은 이 땅에 불교가 들어왔을 때의 모습을 닮아있다고 할 것이다. 조선초기 『법화경』과 법화사상이 이전 시대에서부터 전승되었다는 점과 새 로운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법화사상의 면모를 살펴보았 다. 이때 조선 초기 불교의례라는 문화요소에 법화경이 어떻게 사용되고, 왕실 과 사대부 및 일반 대중들에게 무엇을 의미하게 되었는지를 효용과 가치의 측 면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