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연세대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는 『여유당집(與猶堂集)』을 대상으로 서지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사항을 검토하여 본 것이다.
연세대본 『여유당집』은 1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의 시문(詩文)을 싣고 있는데 이 책 안에 다산의 형인 정약전(丁若銓)의 시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연세대본 여유당집은 형태적인 특징이 다산 자신이 만년(晩年)에 정리하였다고 하는 가장(家藏) 고본(藁本)의 체재와는 다르며 다산과 제자들 사이에서 생산된 친필본(親筆本) 계통에도 속하지 않는다. 필사기와 수록 작품의 내용을 보아 편집하고 필사한 년도는 1812년으로 보인다. 이 책의 구성은 <여유당집(與猶堂集)>, <여유당시집(與猶堂詩集)>, ‘의(議)’ 작품, 관문서(官文書)의 순으로 실려 있다. <여유당집>에는 중형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9편과 「잡설(雜說)」 1편으로 되어 있고 「잡설」에 대한 정약전의 글이 부록으로 들어가 있다. <여유당시집>에는 다산의 작품과 함께 정약전의 시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의’ 작품들도 정약전의 「송정사의(松政私議)」와 함께 다산의 ‘의’ 3편이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관문서 3편은 모두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하던 흑산도(黑山島)와 관련된 문서들이다. 본문 내용을 『여유당전서』와 대조하여 보면 연세대본 『여유당집』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의 어구들이 축약되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되어 있고, 문자 상의 차이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여유당전서』에 나오는 어구들이 이 연세대본에는 생략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다산 저술의 전승과정에 또 다른 이본(異本)이 존재하여 『여유당전서』의 편찬 과정에 수용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연세대본 『여유당집』은 정약용과 정약전의 유배 시기에 이 두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인물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정약전의 시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점 외에도, 정약용의 작품이 후대에 간행된 『여유당전서』와 본문 내용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다산의 생애나 작품의 연구, 다산 저술의 전승과정을 규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