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경남지역 통일신라시대 토성 중 시굴 및 발굴조사와 발표자가 지표조사상에서 확인된 성곽을 중심으로 이 시기 토성의 특징과 축조주체 및 목적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까지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통일신라시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 경남지역은 이전 시기와 달리 왜구의 방어를 중점을 둔 축성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양상은 조선시대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통일신라시대 토성의 특징 중 가장 두르러지는 것은 해안가에 집중적인 축성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안정적인 해로의 통제와 대 왜구 방어에 중점을 둔 축성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리고 토성의 규모는 길이900∼2,000m 사이의 토성들이 바닷가와 내륙 등 다양한 위치에 축조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길이 약 900∼2,000m 사이의 토성들이 주로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남지역 통일신라시대 토성들은 모두 내․외벽 기저부에 기단석렬을 배치한 뒤 성벽을 쌓았다. 기단석렬은 평행한 것과 사직선을 이루는 것으로 나누어지지만 시기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는 못한다. 또한 영정주 간격 역시 정형성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주목되는 점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영정주를 중심으로 좌․우의 판축토가 동일한 것과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판축토가 달라지는 양 끝부분을 한 구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토성벽의 내․외부 퇴적토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기와편들은 성벽의 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가정하에 4가지 정도의 가능성을 검토해 본 결과 와적여장 및 성벽 상부 덮을 때 사용하는 개와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토성의 축조주체는 신라사회의 변화 궤를 같이하므로 축조주체 역시 변하였을 것이다. 즉 삼국통일 후에서 9C 전반에서 중반 정도까지는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강하였다고 생각된다. 그 이후 호족들의 세력이 커지는 9C 후반에서 10C 초반에는 새로운 토성을 축성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기존의 토성을 최대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토성들은 고려시대 초 조운제가 운영되면서 최대한 활용되었으며, 토성이 축조되어 있지 않은 지역은 새로운 축성을 통하여 안정적으로 해로를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