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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우리나라에서 동해(東海)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상당히 오래 전인 고구려 동명왕 건국기사에서 비롯된다. 이때가 B.C. 59년으로 동해라는 명칭은 삼국이 건국되기 이전인 B.C. 5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2,000 여 년간 사용해 온 매우 오래된 바다 명칭이다. 동해를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는가를 말해주는 다른 사례를 찾아보면 고구려의 장수왕이 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5세기에 세운 광개토 대왕비를 들 수 있다. 이 비문 중 제3면에 능을 지키기 위하여 동해 해변가에 사는 주민 3명을 차출한다고 적혀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동해 바다 명칭은 현존하는 금석문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언제, 어떻게, 어떤 금석문에 표기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는 현존하는 금석문은 수천 종인데, 그 중에 동해 명칭이 표기된 금석문은 122종이다. 이 중에도 공개를 꺼리는 금석문이 있으므로 공개 열람이 가능한 비문은 43종이다. 시대별로 살펴 본 동해 명칭 금석문 5세기에 제작된 광개토대 왕릉비가 있다. 8세기에는 4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고, 9세기에도 3종, 10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명칭을 볼 수 있다. 14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이, 16세기에는 2종의 금석문이, 17세기에는 6종의 금석문이 18세기에는 7종의 금석문이 19세기에도 7종의 금석문이 20세기에도 1종의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다. 43종의 금석문을 형태별로 분류하면 사람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왕릉비가 3종, 왕자비가 1종, 장군비가 2종, 문신비가 11종, 승려비가 8종 등으로 도합 25종인데 금석문의 반을 차지한다. 불교에 관한 금석문 중에는 범종기가 1종인데 성덕대왕신종기 기문이 있으며, 불상을 만들면서 적은 금석문인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입상 기문과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입상 기문이 있다. 사원 건축 내력을 적은 백련사 석비, 광법사 사적비, 신흥사 사적비, 숭복사비 등이 있다. 금석문 중에는 성을 건축하고 그 내력을 적은 금석문도 있는데 영변 철옹성의 축성비에서 동해 명칭을 찾을 수 있다. 이외에도 전쟁에서 승전한 사실을 적고 있는 비문도 있는데 임진왜란 때의 승전을 기록한 조조암실기와 삼충사묘정비가 있다. 동해 바다는 우리민족의 숭배 대상으로 고려 시대부터 동해신을 모신 사당을 짓고 국가에서 제사 지냈다. 양양에는 지금도 동해 신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그 곳에 동해 용왕을 모신 동해 용왕 묘비가 있고, 삼척에는 동해 바다를 찬양하는 동해비가 현존한다. 동해는 우리민족과 매우 밀접하고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바다였으므로 많은 금석문에서 동해 바다 명칭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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