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시대 귀신과 요괴는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떻게 변모해 갔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하였다. 이에 필기와 야담집, 그리고 몽유록과 소설 등에서 관련 기록을 살펴보았다. 귀신․요괴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서사 적 이야기가 많이 수록된 조선초기 필기서인 용재총화 였는데 여기에서는 초자 연적 현상에 대한 설화적 경이를 주로 담고 있었다. 이후 임병 양란을 거치면서 문학작품에는 귀신과 요괴의 형상이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강도 몽유록 의 그로테스크한 귀신의 형상과 어우야담 에 실린 풍부한 요괴담이 그것 이다. 이들 작품은 참혹한 귀신과 요괴의 모습을 통해 부패하고 부정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귀신의 형상은 18세기로 오면서 약화되었다. 그렇다고 이 시 기에 귀신담 자체가 약화된 것은 아니었으니 천예록 의 경우는 작품의 반 이상 이 귀신담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후기 강고해진 유교이념에 의해 귀신담은 주로 조상의 제사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요괴나 그로테스크한 귀신의 모 습은 필기․야담집에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대신 19세기 이후 고전소설에는 원 귀형 여귀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뒤이어 1900년대 이후 완성된 여귀의 원형이 된다. 19세기 원귀형 여귀들은 이전 설화 속 여귀의 계승이며 조선후기 가부장적 이념 하에 여성에게 가해진 폭압을 의미한다. 1900년대 초중반에 가면 외국 영화의 영향과 60년대 이후 폭발적 인기를 끌었 던 전설따라 삼천리 의 영향으로 한국 공포 영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다. 반복적으로 영화화 되었던 장화홍련전 의 경우 초기에는 고전소설의 내용과 동일하게 가정비극적 성격을 지녔다면 후기로 갈수록 공포영화적 기법이 확대되 어 괴기스런 원귀의 모습을 보인다. 바로 그것이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여귀의 형상이다.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여귀의 모습은 근대 시각 문화가 발달한 1960년대 이후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