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2

        1.
        2017.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성화상 논쟁에 대하여 역사(historiography)와 사상(philosophy and methodology)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동시에 다룬 연구이다. 이러한 점 에서 성화상 논쟁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차별되는 독특성을 띠고 있다. 본 연구는 ‘이미지 이데올로기(image ideology)’ 측면에서 8세기 비잔틴 시대의 성화상 논쟁의 발단 원인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성화상 논쟁에 관한 연구는 논쟁 발단의 외면적 요인을 중점적으로 다룬 반면, 본 논문은 그 내면적 요인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이미지 이데올로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여 해석의 툴(tool)로 사용하였다. ‘이미지 이데올로기’는 이 미지의 속성으로서의 이데올로기(ideology as an attribute of image)와 ‘이 미지의 이미지’의 속성으로서의 이데올로기(ideology as an attribute of image of image)를 동시에 지닌 해석체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미지가 본 래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이미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성화상 논쟁의 발단 원인을 조명해 본 결 과, 8세기 비잔틴 시대의 성화상 논쟁은 성화상 파괴를 주도하였던 황제 레오 3세(Leo Ⅲ, 717-41 재위)와 성화상 숭배를 옹호하였던 교황 그레고 리우스 2세(Gregorius Ⅱ, 715-31 재위)간의 이미지 이데올로기 충돌로 인해 발생한 사건임이 드러났다. 레오 3세는 ‘황제-교황주의’를, 그레고리우스 2세 는 ‘교황-황제주의’ 라는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성화상(icon)이라는 이미지를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8세기 비잔틴 시대의 성화상 논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이 미지 담론은 오늘날에 이르러 단순히 신학적 담론에 머물지 않고 정치, 경 제, 사회, 문화, 예술, 사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데올로기와 연결되어 거 대담론이 되고 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가 이미지의 속성이라는 본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 황에서 본 논문이 이론적으로는 성화상 논쟁 연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하고, 정책적으로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이미지 이데올로기에 대 한 경각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2.
        201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subject of this thesis is the history of the iconoclastic controversy that originated in the 8th century Byzantine church. Christian art flowered in the time of the Emperor Justinian and in the 8th century the iconoclastic controversy arose. The full-dress iconoclastic controversy started at the beginning of the 8th century, was dealt with by successive General Councils until the matter was solved when the 7th Nicene council of 787 approved the veneration of images. These became idolatry, threw church and society into chaos so that the Pope and the emporer and their supporters over the course of two centuries developed their own Christologies. At that time images were at the heart of the people(Minjung)’s faith. There is always a tendency for religious feelings to be transformed by images.This writer in concentrating on the 8th century controversy has reviewed its historical background, occasion and results and has attempted to deal with the question of images in relation to present day church worship. Idolatry through worship of symbols finds fulfillment in Eucharistic theology for that visualizes the presence of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