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media influencers are becoming increasingly important to the advertising world. As individuals who use their extensive following to endorse products, create trends and ultimately drive purchase intentions, influencers are often seen as role models, especially as pertains to body image. As such, we conduct experimental research to examine how influencer size (0 vs. 14) affects attractiveness perceptions, perfectionist expectations, and purchase intentions. Drawing on self-determination theory we find that perfectionism toward others is the underlying mechanism for the effects of motivation and size. Societal and managerial implications are discussed.
이 논문은 먼저 2권의 주요 저서를 다루는데 한권은 R.F. 포스터의 예 이츠 전기이고 다른 한권은 데이비드 피어스의 우수한 저술로 학술적이고 미학적으로 아름답지만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책들의 목적이 무엇인가? 예이츠는 정말로 인생을 아니면 예술을 완성하고자한 것인가? 우리에게 지금 예이츠의 인생과/혹은 작 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자, 전기작가, 시인이 많다. 그중 가장 탁월 한 학자로서 리처드 엘만은 예이츠와 그의 작품 두 가지 다 들여다 볼 수 있을 뿐 아 니라 그이 작품을 느낄 수도 있는 전기작가이다. 사학자로서 R.F. 포스터의 시선은 예 이츠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는 지를 보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T.R. 헨의 방법은 시인 예이츠와 시를 멀리가지 않고 직접 다룬다. 다른 전기작가들과 학자들의 작품도 위의 저자들만큼 중요하다. 이 논문은 필요에 따라 자신의 글에 맞게 예이츠의 시를 편집하는 학자들도 다루는 데, 그들 중 일부는, 그러나, 자신의 목적에 맞춰서 예이츠 의 시들을 휘거나 자르기를 한다. 물론 그들은 이것이 예이츠와 그의 시에 얼마나 독 이 되는 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나는 이것을 지적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그 러나, 이러한 전기나 저술을 판단하기보다는 예이츠의 작품의 진면목을 되찾아주고 싶 은 것이다. 현대시인으로서의 예이츠를 오해하거나 현대시인으로의 예이츠를 “마지막 낭만주의자”(예이츠 자신이 만든 말)라고 칭하면서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Transhumanism is a social trend that characterizes a growing number of people who are confident that technologies of human enhancement will enable them to transcend physical and mental weakness, frailty and imperfection. Life extension, intelligence increase, disease resistance, rejuvenation and genetic fortification ... these and other boons lie only slightly in the future, according to transhumanists. There is an inverse relation between technical and philosophical sophistication among leading transhumanist. For example, Nick Bostrom professes nearly blind faith in European Enlightenment rationality and the salvific power of science and technology. For all its technical savvy, transhumanism's uncritical embrace of Enlightenment philosophy renders it a doctrinaire trend in popular cultural, not a philosophical one. Sufism emerged early in the history of Islam as a blend of East Asian spirituality, orthodox Islam and Greek philosophy. Despite its emergence within a revelation-based religious culture, Sufism's deliberative refinement of philosophical anthropology over the course of 13 centuries lends a selfreflexive character to its approach to human transformation. I will argue that while it shares certain transcendental ideals that are traditionally found in Sufism, transhumanism understands and pursues these ideals without significant self-critical evaluation. Transhumanists tend to reduce erstwhile religious ideals to upgradeable, more or less plausible technological products. By contrast, the Sufi perspective offers a non-literal, nontechnological ideals of human perfection. Based on this contrast, I contend that while transhumanists are moved by the same transcendental urges, they act on these in ways that are at best futile, and at worse, ultimately self-defeating.
This paper discusses perfectionist writers W. B. Yeats and James Joyce. To compare how they worked slowly and creatively toward completing a work, I take two works by Yeats and Joyce, two of their best works. Yeats tends to work on his poems and plays continuously, even after they have been published. This paper looks at the rewriting of “Leda and the Swan” in several different stages, in order to see how the poem gather intensity and art, as an exemplification of what he did as a literary artist. Yeats’s attitude toward art and his literary style can be compared to the traits of art, and his literary style can be compared to that of the young artist depicted in A Portrait. In fact the young artist Stephen can be seen as Joyce the artist, and the paper discusses Stephen who grows linguistically and artistically competent. Yeats and Joyce are not merely Romantic writers; they were determined to develop new art and bring it to the highest perfection. And indeed they have achieved it in their works respectively.
본 소고는 그레고리오스가 완전의 개념을 플라톤주의의 이해인 정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 론을 기초로 한 구원론적 삶의 과정(soteriological life as epektasis)이라고 해석함으로서 기독교화 했다는 것을 검증한다. 그레고리오스 이전까지 완 전이란 단어는 주로 신에게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완전이란 개념에 대한 고전적 이해는 플라톤주의에서 선 그자체로 볼 수 있는데, 플라톤주의는 선 그자체로서 완전을 신에게 적용하며 신은 변화될 수 없기에 완전도 변 화될 수 없는 정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이와 같은 고전적 개념이 4세기 후 반에 들어서면서 고전적 이해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되고, 이 개념 의 고전이해에 변형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변화는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Gregory of Nyssa)가 완전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과 함께 자신의 인간 이 해에 완전개념을 적용하면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속적인 변 화로서 완전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인간 스스로가 충족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야 지속적인 덕을 추구하는 완전한 삶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와 같이 완전을 성서와 기독론을 중심으로 이해하며 기독교화 했다. 그레고리오스의 완전에 대한 인류학적 그리고 기독론적 접근은 완전 개념에 대한 고전적 이해에 변형을 가져왔고, 이런 변형은 그의 새로운 영 성신학 형성과 후대 영성신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레고리오스는 완전 을 단지 철학적으로만 이해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개념으로 특히 기독 론과 구원론적 입장에서 재해석했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그리스 도 안에서 지속적인 성장과정이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가능한 구 원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완전에 대한 이해는 고전문화의 변형과 기 독교화된 개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