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茶山丁若鏞(1762∼1836)은 利用厚生을 위해 외국 의 선진문화를 수용하자고 했다. 다산은 『技藝論』에서, 利用厚生을 위해 淸나라 의 百工技藝와 新式妙制, 즉 첨단 과학기술문명을 도입하자고 했다. 또한 일본의 ① 國防의 견고함, ② 우수한 造船技術, ③ 館倭의 房櫳(격자창)의 長點을 배우 자고 했다. 다산은 申維翰이, 通信使일행으로 가서 일본의 “器物의 정교함과 여 러 가지 調鍊하는 법”을 관찰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跋海槎見聞錄) 다산은 贈序에서, 使臣은 이용후생에 필요한 백공기예를 수입해오는 것이 제2의 책무라 고 했다. 다산은 ① 李基讓과 같이 剝綿攪車를 구입해와 이용후생에 기여한 사신(贈序), ➁ 申緯처럼 개인취미를 위해 怪石을 구입해오는 사신(題載石圖)으로 분류하고, 前者를 높이 평가했다. 淸나라에서 박면교거를 수입해온 李基讓의 공 로는, 목화 씨앗을 수입해와 이용후생에 크게 기여한 文益漸의 공적과 비견할 만 하다고 극찬했다. 다산의 외국 선진문화 수용론은 바로 이용후생을 위한 것으로,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에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