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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한국에 와서 활동했던 수많은 외국 선교사 중 한 명인 로버트 하디 선교사 연구를 통해서 한국교회 선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디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건한 신앙의 유산 을 기반으로 인류에 봉사하고자 기독교인 의사가 되려고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바로 그때 SVM의 영향을 받아 선교적 소명을 깨닫고 선교사 가 되었다. 처음에 그는 독립선교사로 활동했지만,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를 위해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협력했고, 경제적인 어려움 과 가족의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 등을 자립선교와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 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되어 1907년 평양에서 절정을 이룬 원산대부흥의 주역으로 쓰임 받았지만, 그 이후 에 어떠한 부작용도 없이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 신학교육과 문서선교 사역 등에 기여하였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데, 이는 웨슬리 신학의 사변형(성경, 전통, 체험, 이성)에 근거한 균형 잡힌 선교사역을 감당했 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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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2.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한국선교신학회가 「선교신학」 학술지를 통해서 지난 30년 동안 다룬 선교학적 주제들을 고찰한다. 「선교신학」에서 중점적으 로 다룬 주제 중에는 “하나님의 선교,” “선교적 교회,” “이민, 다문화, 디아스포라 선교” 이렇게 세 가지 중심주제들이 있다. 각각의 주제들은 선교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들이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해당 주제들이 갖는 선교적 의미를 간략히 살펴보고, 「선교신학」에 실린 논문들의 저자와 제목을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해당 주제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연구한다. 이를 통해 한국선교신학회가 지난 30년 동안 「선교신학」을 통해서 선교신학 연구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 보고, 앞으로 어느 부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한지 고찰하고자 한다. 보다 발전된 선교신학적 연구를 위해서 연구자는 앞으로 「선교신학」에 선교지역별 연구, 선교역사 연구, 그리고 국내선교단체 및 NGO 단체에 관한 연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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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2.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윌리엄 밴튼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 1856- 1922)은 한국개신교 선교 초기에 활동했던 미국북감리회 선교사였다. 그는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로 불리는 헨리 아펜젤러보다 두 달 먼저 한국으로의 선교파송과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헨리 아펜젤러 (Henry G. Appenzeller, 1858-1902)보다 서울에 먼저 입성하여 초기감리교 선교의 토대를 마련한 선교사였다. 특히 그는 제중원에서 한 달 정도 의사로 활동한 후, 감리교 최초의 선교병원인 시병원을 설립하여 의료선교사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또한, 아현교회, 상동교회, 동대문교회를 설립하는 등 복음전도 선교사와 선교 관리자로 도 활동하였다. 그리고 성서번역과 문서선교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선교의 분야에서 한국개신교 선교를 위해 기여하였다. 하지만 1907년 친일 성향을 지닌 매리멘 해리스(Merriman Colbert Harris, 1846-1921)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감리교를 떠남으로 한동안 감리교 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그의 생애와 의료활동을 중심 으로 그가 남긴 선교의 유산과 교훈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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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1.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884년 로버트 매클레이 감리교선교사가 고종으로부터 의료와 교육 분야의 개신교 선교를 허락받은 이후, 감리교와 장로교의 본격적 인 한국선교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감리교에 비교해 볼 때 장로교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본 논문은 같은 시기에 선교를 시작했음 에도 장로교의 교회성장이 감리교에 비교해 더 많이 이루어진 이유에 관해 고찰하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 언급되던 ‘감리교는 학교와 병원 중심으로, 장로교는 교회중심으로’와 같은 선교방식의 차이와 네비우 스 선교정책 수용 여부의 차이와 같은 내용이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음을 다루고 있다. 대신에 초기 한국선교를 주도했던 감리교의 아펜 젤러와 장로교 언더우드의 차이, 즉 언더우드의 세례에 관한 열정적인 입장과 그의 선교사 동원 활동을 통한 미국 남장로교와 캐나다장로교를 포함한 장로교 선교사의 증가가 결국 장로교회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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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1.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개신교 선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도된 ‘아빙돈 『단권 성경주석』’ 번역사업은 감리교와 장로교의 일부 외국 선교사와 다수의 한국인 목회자들이 함께 참여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고,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감리교의 류형기 목사였다. 그러나 장로교 총회에서는 『단권 성경주석』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이를 금서(禁書)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장로교 번역자들에게 자신들의 글을 이후에 재판(再版)이 될 때 『단권 성경주 석』에서 빼도록 강요하였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단권 성경주석』 이 매우 많이 판매되었다는 점에서 당시에 한국교회에 미치는 파장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본격적인 신학 논쟁 야기와 교회 분열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1930 년대 있었던 한국개신교 선교 시작 시점에 관한 논란과 50주년 기념사업 으로 진행된 『단권 성경주석』이 초래한 여러 가지 논쟁 과정과 결과를 선교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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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9.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1990년부터 베트남에서 활동해온 장요나 선교사의 선교사역을 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특히 장요나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교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와 장요나 선교사는 해당 국가가 복음전파를 금지 하고 있는 법을 어기고 복음을 전했다는 점에서, 본국에서 교단을 초월한 협력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천주교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반면에 언더우드와 달리 장요나 선교사는 베트남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을 의사로 사칭하며 선교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족과 자신의 질병을 돌보지 않고 선교사역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국가인 베트남에서 오랫동안 지속해온 장요나 선교사의 선교사역은 교회, 병원, 학교설립 등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과 그가 추구하는 베트남을 포함한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와 같은 인도차이나반도 선교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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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9.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최초의 한인 선교사가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다루는 연구이다. 흔히 감리교의 홍승하와 장로교의 이기풍을 최초의 한인 선교사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그들이 왜 최초의 선교사인가에 관한 연구는 아직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감리교에서는 1997년 이전까지 국외에 있는 교포들만을 대상으로 사역을 해도 선교사로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1903년 하와이에 파송된 감리교의 홍승하는 최초의 한인 선교사가 맞다. 반면 장로교에서는 1907년에 파송을 받아 1908년에 제주도에 도착한 이기풍을 한동안 해외 선교사로 간주 하다가 1915년 이후부터는 그를 더는 선교사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로교는 외국인을 위해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만 선교사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는 국외지역이 아니므로 이기풍을 해외 선교사로 간주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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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8.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부흥과 교회성장은 분명 다른 개념이지만,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부흥과 교회성장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회가 부흥했는가?’라고 질문을 할 때,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은 대부분 교회의 숫자적 성장 여부이다. 이러한 경향은 1903년부터 1907년까지 지속된 초기 한국 대부흥의 시기에 있었던 교회성장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부흥과 교회성장 간의 차이와 관계를 부흥의 의미, 목적, 결과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만일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면, 그 부흥의 결과는 교회성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부흥 없이도 교회성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성장과 부흥은 다르다. 그러므로 부흥과 교회성장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서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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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7.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슬람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들 중 하나이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복음전도 전략이 필요하 다. 그 중에 관계전도, 사회 활동, 영적 접근, 킹덤 비즈니스는 매우 효과적인 전도 방법들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이슬람교도들의 영적, 사회적, 신체적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변화 혹은 회심은 매우 긴 시간을 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교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 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일 한국 기독교인들이 한국에 온 이슬람교도들에 게 복음을 전한다면, 이것은 곧 세계선교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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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7.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한국 기독교와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영향력을 미친 토속종교 중 하나인 무교를 비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독교와 무교는 신과 신적인 존재들을 인정하고, 복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복의 개념, 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관계의 지속성이라 는 세 가지 측면에서 기독교는 무교와 다르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복은 영적인 복과 세상적인 복 둘 다른 강조한다는 점에서 세상적인 복만을 강조하는 무교의 복과 다르다. 또한 하나님, 신적 존재들, 이웃과의 관계를 기독교에서는 강조하는 반면에, 무교에서는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중요하 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무교에서는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신적인 존재와의 관계도 끊어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종교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 기독교인들에 기독교와 무교와의 차이점에 관한 연구는 진정한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관한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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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16.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로마서에 나타난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에 관한 사도바울의 선교적 이해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바울 서신 중 하나인 로마서는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논쟁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예를 들어 로마서 1장부터 8장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됨을 강조한다. 그러나 9장부 터 11장에서는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에 관해서 예수 그리스도 혹은 믿음에 관한 내용을 더 이상 다루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많은 학자들은 바울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 신비스러운 방법이란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의 숫자가 어떤 기준에 도달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과 같은 방식이 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구원을 항상 연결시켰다. 한 사람의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모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계획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방 인의 사도가 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반드시 전도 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로마서 9-11장을 유대인들과 이방인 들 모두에게 설교 할 수 있는가?” 하는 선교적 질문들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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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16.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mainly investigates the life and thoughts of the three Korean theologians (i.e., SungBum Yun, TongShik Ryu, and SunHwan Pyun), who tried to make Korean and/or contextual theology. SungBum Yun (1916-1980), who regarded “Revelation” as the main content of the Gospel, offered the Confucian concept of “Sung” ( , sincerity) 誠 as the replacement for the Western theological notion of revelation for the Far East Asians who live in the Confucian cultural context. The main contextual theological concern of TongShik Ryu (1922-the present) has changed or developed from religions in Korea (1960s), Shamanism (1970s) to PungRyu (풍류, 1980-90s), and then Ryu is more recently interested in YeSul(예술, Art or Beauty) theology. The Korean theology of SunHwan Pyun (1928-1995) is generally called “ToChakHwa (토착화),” which means “contextualization” or “Religious Pluralism” in Korea. Pyun paid attention to the religious pluralistic context in Korea, and he asserted that Korean Christianity should overcome three aspects (i.e., the Western prejudice toward other religions, Ecclesiocentricism, and the exclusive absoluteness of Christology) of Western Christianity. The three figures might be Koreanized theologians in that they dealt with the Koreans’ cultural and spiritual mind through various ways such as Korean traditional religions. However, it is hard to say that they were authentic contextual theologians, because they ignored the Hanful (suffering or oppressed) social situation as well as the need and tradition of most Korean churches. Thus, an authentic Korean and/or contextual theology must meet the demands of people’s cultural, traditional, spiritual and religious mind; socio-politically and economically variable situation; and Korean churches; under the guidance of Triune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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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올해 2015년은 헨리 게어할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의 한국선교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에서 그의 활동은 당시 다른 선교사들과 비교해 볼 때(예를 들어 언더우드의 31년 사역, 1885-1916) 비록 17년(1885-1902)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이루어졌지만, 아펜젤러는 한국감리교회의 주춧돌을 놓았을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발전과 한국 근대화를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이 글에서 필자는 아펜젤러의 삶과 사역을 주로 다루었는데, 그의생애는 두 개의 특성으로, 그리고 그의 사역은 총 일곱 개의 특성들로설명하였다. 우선 아펜젤러는 중생을 경험한 후 감리교인이 되었고,그의 아버지는 아펜젤러가 장로교 목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감리교선교사가 되었다. 한편, 아펜젤러는 초기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선교 초기 미국과 한국 정부의 조언을 수용했던 착한 사람이었다.아펜젤러는 쌀(rice) 혹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진정한 기독교인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사역했다. 물론 여전히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교회를 세운 초기 설립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교육의 발전을 위해 공헌했던교육가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선교사들을 포함 대부분의 외국인들을 이끌었던 유능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중요한 점은 아펜젤러가 계몽운동가와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근대화,민주화, 그리고 독립을 위해 기여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아펜젤러는 영적인 회심을 경험했던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리고 당시 외국인들, 한국인들과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있었던 착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수용과 저항의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즉 그는 한국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만한 준비가 될 때까지 미국과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미국이 일본과 같은 강대국들의 한국 점령을 암묵적으로 허락하거나 고종이 근대민주국가로의 변화에 대해 거부했을 때는 미국과 한국정부에 당당히 저항하였다. 그러므로 아펜젤러의 한국선교 130주년을 기념할 때, 한국의 모든 개신교회들은 반드시 그의 열정적인 영성,따뜻한 사회성, 냉철한 분별력에 관해 반드시 재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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