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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199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일본(日本) 내량시(奈良市)에 있는 법륭사(法隆社)는 6세기(世紀)에 백제(百濟)로부터 불교(佛敎)가 전해진 후 가장 불교문화(文化)가 융성할 때 그 주도적(主導的)인 인물(人物)인 성덕태자(聖德太子)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모든 면(面)에서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三國)의 영향을 받아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그 중(中)에서도 태자사후(太子死後) 1300년(年) 이상 기제(忌祭)를 매년(每年) 시작되었던 때 모습 그대로 전승 실현되고 있어서 그 공물(供物)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영향을 미친 점 한편으로는 한반도 고대식문화(古代食文化)를 추정하는데 좋은 자료와 참고가 되리라고 본다. 1. 13배어선(杯御膳), 5배어선(杯御膳) 3중병(重餠) 어불반(御佛飯)과 대산립(大山立)이 양쪽으로 장엄하게 차려진 공물(供物)은 그 시대로서는 진품(珍品)으로 식품의 종류나 조리법이 총동원된 행사였고 전체적인 특징은 고배기(高杯器)에 고배(高排)음식 형식으로 현재 일본(日本)에서는 古代(古代)로부터 전승되어오는 수개(數個)의 절과 신사(神社)외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무속식(巫俗食), 불공(佛供), 각종(各種) 제사(祭祀) 그리고 가정행사인 돐상, 회갑(回甲)상, 혼례식 등에서 남아있고 이조시대(李朝時代)는 궁중상(宮中床)차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배기(高杯器)에서 고배(高排)형식은 고대(古代)로부터의 한반도 식문화의 특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병(餠)에 있어서는 찹쌀보다 멥쌀가루를 많이 사용한 점으로 보아 한반도(韓半島) 기호(嗜好)의 특성과 상통하며 어불반(御佛飯)은 시루떡의 전초적인 과정(過程)으로 본다. 3. 13배어선(杯御膳)의 각종(各種) 산야(山野)열매는 후에 과일로 대치도 되었지만 각색과자(各色菓子), 각색당(各色糖) 등의 제조발달에 따라 적(赤), 황(黃), 녹(綠), 백색(白色)을 기본으로 장식하게 되었다. 4. 색면(索麵)이라는 가늘은 국수는 밀과 함께 국수제조법이 전래되어 귀한 식품으로서 제사에 쓰여졌으리라 본다. 5. 대산립(大山立)에 시양(枾揚)는 과자는 멥쌀가루를 튀긴 것이 특징이나 후에 튀기기 쉽고 맛이 좋은 밀가루로 변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며 모든 과자의 원조로 본다. 할죽(割竹)에 매달은 극락으로의 기원을 뜻하는 봉황새는 멧떡으로 만들었는데 현재까지 전통음식 중의 하나로 전라남도 지방에서 꽃떡위에 꽃이나 열매떡을 매달은 나무가지를 꽂아서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재료 같은 형식으로 본다.
        4,000원
        102.
        1990.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Soybean was originated from the regions of Manchuria where it was processed into Dujang, the fermented soybean souce. It was not until the Han dynasty in China that 'Shi', one type of Dujang, was introduced. 'Shi', which is also known as 'Sanguk'(loose soybean Meju), is made by first boiling and then fermenting the kernel of cooked soybean. It was admitted by the Chinese scholors that the 'Shi' which was used in China was introduced from Manchurian, the neighboring people to China at that time and the concestor of Korean. 'Maljang' is a form of caked-shaped 'Meju' which is made by formenting cooked and mashed soybean. The 'Maljang' of Manchuria was introduced to China, where it was called 'Maldo'. This fact is stated in a book, 'Saminwolyong', written during the 2nd century. 'Maljang' is presently used in Korea, but China has abandoned the use of 'Maljang' since the 6th century. It was introduced to Japan from Korea around the 7th century, and is remained in a few local regions. Although the term 'Jang' is representing all sort of fermented soybean preducts, including 'Shi' and 'Maljang', today, the definition of 'Jang' differs between China and Korea. According to the Chinese definition of 'Jang'. it is fermented soybean mixed with other cereal Koji. 'Jang' was first mentioned in 'Jaeminyo sool' in China and it was lator introduced to Japan However, in Korea, the Chinese type of 'Jang' was not commonly used due to the popularity of 'Maljang'.
        3,000원
        103.
        2020.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국교회사학회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한국교회사학회지」 특집호(55집)에 고대교회사 연구동향 분석과 미래전망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 본고는 전체 420여 편의 전체 논문 중 77편의 고대교회사 논문을 다루었다. 포스트모던적 사조와 신학적 배경으로 크게 4개의 범주(역사관, 주제, 방법론, 저자)로 나누어 논문들의 성향과 내용을 분석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근대적 사고에서 탈피하고 지배담론이나 거대 담론의 해체를 주장하면서 소위 “아래로부터”의 신학을 추구한다고 하겠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주목 받지 못했던 약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역사 연구의 중심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탈가부장적, 탈유럽적, 탈교리적, 탈교파적, 탈제도적 사고가 주가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고로 역사 연구에 다양한 방법론이 시도되고 다양한 접근이 이루고 지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연구도 활발하게 역사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본 학회의 발전과 학문적 공헌을 위해 학제간 학회나 연구 등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역사가 신학, 영성, 상담, 윤리, 예배 등과 어우러 질 때 교회 현장은 물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와 함께 소통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해야하기 때문이다.
        104.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영혼치유적 구제론과 구속론적 구제가 요한 크리소스톰에게서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탐구한다. 영혼치유적 구제는 고대 철학적 치유의 관점에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도움을 통한 영혼의 평화의 회복을 의미한다.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자선은 또한 죄 용서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대립적으로 보이는 이 두 전통들이 모두 크리소스톰의 구제설교에서 등장한다. 학자들은 그의 사상에서 철학과 신학이 분리되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본 논문은 크리소스톰의 마태복음과 요한복음 설교를 면밀히 분석하여 이 두 전통들이 그의 구원론과 구속적 구제와 관련된 성경구절 해석을 바탕으로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이교 철학자들과 연설가들의 이상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독교적 치유론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크리소스톰에게 있어서 영혼의 병과 결과에 대한 철학적인 개념이 기독 교적인 죄와 심판의 틀 속에서 흡수되어 변화되었다. 죄는 마음의 평화를 깨트리는 욕망의 무질서나 잘못된 생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한 그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 아래에 있는 끔찍한 상태이다. 구제는 이러한 영혼의 모든 위기를 해결한다. 즉, 악덕을 제거하고 덕을 증진하여 영혼의 건강을 회복하여 궁극적으로 천국으로 향하게 한다. 크리소스톰은 그리스-로마의 철학적 치유 개념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목양적인 목적에 따라 그것의 목적과 범위와 내용을 변혁하여 기독교적 영혼치유 구제담론을 만들었다.
        105.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고대한어에서 ‘老’부에 속한 한자 대부분이 ‘연로하다’와 관련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의미는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說文解字』 ‘老’부에 속한 한자는 ‘老’·‘耊’·‘𦽡’·‘耆’·‘耇’·‘𦒻’·‘𦒶’·‘壽’·‘考’·‘孝’ 등 10자가 보이는데, 이 중에서 일부 한자는 현대한어에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또 일부 한자는 書面語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사용 예를 살펴보면, ‘老’·‘耊’·‘𦽡’는 모두 나이를 가리키지만, ‘老’는 70세, ‘耊’는 80세, ‘𦽡’는 90세 등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또 ‘耇’·‘𦒻’은 노인의 외부 모습을 통해 나이를 표현하고 있는데, ‘耇’는 얼굴 피부가 얼어있는 배(껍질)처럼 때가 낀 것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𦒻’은 흔히 노인들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검은 반점을 가리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𦒶’는 노인의 불편한 행위를 통해 나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보폭이 작아서 서로 부딪치는 것과 같은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본래 장수의 의미로 사용되던 ‘考’·‘壽’ 중에서, ‘考’는 이후에 의미가 파생되면서 돌아가신 부친, 혹은 시험을 치거나 고찰하는 등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현대한어에서는 ‘老’자의 활용이 매우 많으며, 본래의 의미뿐만 아니라 파생의미 또한 증가하였다. 물론 ‘老’자를 부수로 지닌 한자들 또한 현대한어에서 의미범주의 변화가 일어난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老’와 ‘考’ 등 한자는 의미항목이 증가한 반면, ‘孝’의 의미항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또 ‘壽’․‘耊’·‘𦽡’·‘耆’·‘耇’ 등은 비록 본래 의미 그대로 書面語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𦒻’·‘𦒶’ 등은 현대에 이르러 이미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또 문법기능의 측면에서 보면 품사가 가장 다양하게 사용되는 한자는 ‘老’·‘壽’·‘考’인데, 고대한어에서는 명사, 동사, 형용사의 용법으로 모두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老’자는 현대에 이르러 품사의 활용이 더욱더 다양해졌다. 다시 의미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고대한어에서는‘𦽡’가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老’가 가끔 부정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 것 외에 나머지 한자들은 대부분 중성의미나 긍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老’부 한자에서 ‘연로’에 대한 인식은 노인의 피부, 걸음걸이, 長壽 등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적 현상은 고대 중국의 예교사상인 ‘敬老’의 영향으로 인하여 부정이미지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고자 하는 기피현상으로 볼 수 있었다. 본고는 ‘연로’함을 나타내는 同義 한자에 대한 차별성을 고찰해 봄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노인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와 나이의 표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 정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동의성’으로 인해 쉽게 혼동하기 쉬운 한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봄으로써, 동의 한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사용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106.
        2017.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에서는 동아시아적 자연학의 한 갈래이자 계절의 변화를 천 문기상학적 이론으로 접근시킨 고대 월령론이 성립하고 전개되는 문제 를 살펴보았다. 이때 고대 동아시아적 월령론이 정초되는 사상과 이론 의 기초로서 천문학과 기상학 관점의 논의를 주목하였고, 특히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배태되는 자연물의 관찰경험적 지식이 광범위한 물후론으 로 성립하는 측면을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먼저 그 계절의 변화론을 천문관측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상서 「요전」의 사중성 문제를 살펴보았고, 이를 확대하 여 매월의 별자리 관찰과 물후로 연결시킨 대대례기 「하소정」의 월 령론을 고찰하였다. 이어서 진제국의 통일이념서 역할을 하였던 여씨춘추 「십이기」에 서 비로소 본격적인 1년 12월령 체계가 수립되었고, 이는 전한시기 회남자 「시칙훈」과 예기 「월령편」으로 계승되었는 바, 이 세 종류 문헌에 수록된 구체적인 천문과 물후월령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러는 사이에 월령론은 자연의 계절변화를 설명하는 적합한 이론틀 로 인식되고 확산되었으며, 그 끝에 후한대 성립으로 추정되는 일주서  「시훈해」는 1년 12월 24절기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1년 72후법 을 처음으로 규범화하고 체계적 설명틀로 수립하였다. 이제 자연의 계 절 변화가 매뉴얼화되어 달력이 없더라도 규범화된 각 절기의 물후 곧 절후법을 통해 쉽게 자연의 변화를 인지하고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72후의 절후법에는 1년 태양의 변화에 따라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기상상태와 동식물의 반응양태가 다분히 경험학적으로 반영되었으므 로 이 규범체계의 확산력은 매우 광범위하였다 하겠다. 남북조시대에 들어서 6세기 중반에 반포 사용된 위서 「정광력」은 드디어 72절후법을 역법의 주요 요소로 평가하여 수록하였으며, 다만 일주서와는 다른 계통의 72후 체계를 엮어 제시하였다. 이후로 「역 지」 계통에는 반드시 72후법을 수록하는 것이 항례가 되었다. 수나라 의 <황극력 72후법>이나 당나라 전기의 <인덕력 72후법>은 이를 전승한 주요한 흐름들이며, 당나라 중기 <대연력 72후법>은 기존의 72후 순서나 내용을 다소 개변하였고, 당나라 후기 <선명력 72후법> 은 이 대연력 계통의 72후법을 전승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가 국초부터 당나라 <선명력>을 수용하여 사 용하였으므로, <선명력 72후법>의 이론으로 자연변화를 인식하고 설 명하였을 것이다. 고려말에 도입된 <수시력 72후법>은 기존의 72후 내용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으며, 이 체계가 조선전기에도 습용되어 조 선의 학인들이 자연을 인식하는 주요 규범틀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72후에 기초한 물후월령은 월령론의 천문기상학적 접근 이자 전근대시대 자연의 변화를 해석하는 주요 통로로 기능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우리로서 그 물후월령 을 통해 자연과 동화되고 적응하는 삶을 구가하는 것이며,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우주론적으로 성화시키는 자연학적 기제가 여기에 놓인 것이라 이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고의 논의 는 월령자연학으로 열리는 방향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에 널리 성립하는 각종 세시기 문헌의 세시월령이나 각종 시가 작품으로 전하는 월령체 문학 또는 각종 구비전승으로 전개되는 민속월령 문화는 우리 문화사를 구성하는 주요 영역인 바, 그 문화의 기초가 되는 월령자연학의 역사적 흐름과 이에 대한 천문기상학적 원 리 해명을 시도한 것이 본고의 주요 관심사이자 연구 의의라 이를 수 있다.
        107.
        201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에서는 동아시아적 자연학의 한 갈래이자 계절의 변화를 천 문기상학적 이론으로 접근시킨 고대 월령론이 성립하고 전개되는 문제 를 살펴보았다. 이때 고대 동아시아적 월령론이 정초되는 사상과 이론 의 기초로서 천문학과 기상학 관점의 논의를 주목하였고, 특히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배태되는 자연물의 관찰경험적 지식이 광범위한 물후론으 로 성립하는 측면을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먼저 그 계절의 변화론을 천문관측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상서 「요전」의 사중성 문제를 살펴보았고, 이를 확대하 여 매월의 별자리 관찰과 물후로 연결시킨 대대례기 「하소정」의 월 령론을 고찰하였다. 이어서 진제국의 통일이념서 역할을 하였던 여씨춘추 「십이기」에 서 비로소 본격적인 1년 12월령 체계가 수립되었고, 이는 전한시기회남자 「시칙훈」과 예기 「월령편」으로 계승되었는 바, 이 세 종류 문헌에 수록된 구체적인 천문과 물후월령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러는 사이에 월령론은 자연의 계절변화를 설명하는 적합한 이론틀 로 인식되고 확산되었으며, 그 끝에 후한대 성립으로 추정되는 일주서  「시훈해」는 1년 12월 24절기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1년 72후법 을 처음으로 규범화하고 체계적 설명틀로 수립하였다. 이제 자연의 계 절 변화가 매뉴얼화되어 달력이 없더라도 규범화된 각 절기의 물후 곧 절후법을 통해 쉽게 자연의 변화를 인지하고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72후의 절후법에는 1년 태양의 변화에 따라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기상상태와 동식물의 반응양태가 다분히 경험학적으로 반영되었으므 로 이 규범체계의 확산력은 매우 광범위하였다 하겠다. 남북조시대에 들어서 6세기 중반에 반포 사용된 위서 「정광력」은 드디어 72절후법을 역법의 주요 요소로 평가하여 수록하였으며, 다만 일주서와는 다른 계통의 72후 체계를 엮어 제시하였다. 이후로 「역 지」 계통에는 반드시 72후법을 수록하는 것이 항례가 되었다. 수나라 의 <황극력 72후법>이나 당나라 전기의 <인덕력 72후법>은 이를 전승한 주요한 흐름들이며, 당나라 중기 <대연력 72후법>은 기존의 72후 순서나 내용을 다소 개변하였고, 당나라 후기 <선명력 72후법> 은 이 대연력 계통의 72후법을 전승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가 국초부터 당나라 <선명력>을 수용하여 사 용하였으므로, <선명력 72후법>의 이론으로 자연변화를 인식하고 설 명하였을 것이다. 고려말에 도입된 <수시력 72후법>은 기존의 72후 내용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으며, 이 체계가 조선전기에도 습용되어 조 선의 학인들이 자연을 인식하는 주요 규범틀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72후에 기초한 물후월령은 월령론의 천문기상학적 접근 이자 전근대시대 자연의 변화를 해석하는 주요 통로로 기능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우리로서 그 물후월령을 통해 자연과 동화되고 적응하는 삶을 구가하는 것이며,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우주론적으로 성화시키는 자연학적 기제가 여기에 놓인 것이라 이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고의 논의 는 월령자연학으로 열리는 방향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에 널리 성립하는 각종 세시기 문헌의 세시월령이나 각종 시가 작품으로 전하는 월령체 문학 또는 각종 구비전승으로 전개되는 민속월령 문화는 우리 문화사를 구성하는 주요 영역인 바, 그 문화의 기초가 되는 월령자연학의 역사적 흐름과 이에 대한 천문기상학적 원 리 해명을 시도한 것이 본고의 주요 관심사이자 연구 의의라 이를 수 있다.
        108.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에서는 해외에서 이루어진 한국학의 업적을 오늘날의 관점에 서 비판하고, 한국학의 범위 확대와 질적 수준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연구사적 검토를 통해서 모색하고자 했다. 여기서는 윌리엄 스킬렌드 의 『고대소설』에 수용된 연구사로서의 고소설 담론 및 그의 학문적 성과와 연구사적 의의를 검토하고, 국내외 관련 저작물에 나타난 고대 소설의 파급 효과와 학술적 공헌을 살펴보았다. 고대소설에서는 서론에서 언급한 실증적 방법론이 본론에 와서는 고소설 문헌자료의 분석에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있었 다. 이러한 오류를 범한 주된 이유는 아시아소설에 대한 그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 문헌기록을 배제한 채 이루어진 스킬렌 드의 실증적 문헌연구가 영국소설에 기반한 그의 관념과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윌리엄 스킬렌드가 소개한 근대적 문헌연구방법 은 한국 문헌학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간주된다. 뿐만 아니라 고소설 문헌의 계보를 추적하는 가운데 언급된 국내외 소설담론의 존 재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한 『고대소설』은 원본 자료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중요성을 제시하여 한국 고소설사의 문제점을 환기시킨 점에서 도 크게 기여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중국소설을 번역한 작품 또는 중국소설의 번안 작품의 존재를 다루고, 한국 고소설의 해외 번역 상황 까지 소개했다는 점에서 윌리엄 스킬렌드의 『고대소설』은 한국학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큰 성과로 평가된다.
        109.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스크린 클라이밍은 스크린 스포츠의 하나로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내용이 인공암벽에 투사되며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진행된다. 본 논문에서는 어린이의 발달과정과 스포츠 클라이밍에 대한 동기부여에 초점을 맞추어 고대동굴탐험을 소재로 한 스크린 클라이밍 게임을 구현하였다. 게임의 내용은 프로젝터로 인공암벽에 투사하며,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은 키넥트의 뎁스 정보를 이용해 사용 자의 입력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게임은 어린이 대상 전시 행사에서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앞으로 추가적인 스크린 클라이밍 게임 구현이 이루어져야 한다.
        110.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에서는 단계마을의 역사 변천과 의미를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구명하고자 했다. 먼저 단계마을의 지명은 철광석의 산화철 현상인 ‘붉 은’ 의미가 들어간 ‘적촌’‧‘단읍’‧‘단계’에서 유래했다. 단계의 고대 사회 는 한 가야 소국을 구성하던 단위인 읍락이었으며, 신라에 의해 정복된 이후 赤村縣으로 편제되었다. 통일신라 때 菁州 闕支郡의 영현이 되었 으며, 경덕왕의 한화정책에 의해 丹邑縣으로 개명되었다. 다음으로 940년 단읍현에서 단계현으로 명호 개정은 단계현이 국가 질서 내로 편제되었음을, 토성분정으로 지역 내의 세력 재편이 마무리 되었음을 의미한다. 단계마을은 나말여초의 변화 속에서 단계현의 중 심지가 되었다. 그 치소가 도평[양전]에서 단계마을로 옮겨졌기 때문 이다. 단계현은 1254년의 몽골 침략, 皆品部曲의 山陰縣으로 移屬, 왜 구의 침입으로 위상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단계마을도 그러한 변화로 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끝으로 許邕은 단계마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지명에서 취한 단 계로 호칭되었으며, 토성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단계마을 역사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허옹은 1337년에 처향 단계로 은거하여 스스로 迂軒이라 칭하였으며, 당시 일반적인 男歸女家의 혼인 형태에 서 본다면 귀향이라 할 수 있다. 허옹은 1345년에 다시 벼슬살이에 나섰다가 1348년 무렵에 다시 단계로 낙향하고 그 직후 법물리로 이거 하였으며, 1357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헌 허옹이 단계에 입향함으로써 불러온 단계 사회의 변화는 결코 적지 않았다. 여말선초 우헌 허옹의 아들 허소유와 許繼道, 사위 안동 장씨 張綱, 외손서 상산 김씨 丹邱齋 金後가 단계마을과 법물리에 은거하거나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 이다.
        111.
        2015.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사리공 내에서 출토된 납유리 9점의 납동위원소비를 분석하여 납 원료의 산지를 추정하고, 이를 왕궁리 출토 납유리의 연구결과와 비교하여 상관관계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납유리는 주화학성분 분석결과, PbO가 약 70 wt.%, SiO2가 약 30 wt.% 함유된 전형적인 PbO-SiO2계의 유리였다. 납동위원소비를 이용한 납유리의 원료산지 추정결과, 기존 동북아시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로는 대부분이 한국북부의 방연석 광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반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로는 한국남부의 방연석 광산이 납유리의 주요 원료 산지로 추정할 수 있어 두 분포도의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났다. 또한 동일지역, 동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왕궁리 출토 납유리의 기존 연구데이터와 비교한 결과, 납 원료의 산지가 서로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112.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is article we present the precise positions of XP and the finite verb moving to the functional categories in the Old English (OE) main clauses in association with the label algorithm advocated in Chomsky 2013. With V2 and V3 phenomena in Old English the previous studies did not show any consistent accounts on the moved positions of XP and the finite verb mingled with the status of OE pronouns in the main clauses. In the previous studies some proposed IP-V2 and others did CP-V2 in conjunction with the different status (clitic, weak pronoun or Agr clitic) of the OE Pronouns. In contrast we show a consistent account that XP moves to CP Spec and the finite verb moves to C in the OE V2 contexts including wh-clauses whereas XP moves to IP in the V3 clauses due to the label algorithm where the ϕ-feature of C and T makes two lexical items share prominent features in order to complete the labeling of CP and TP respe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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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孤臺 鄭慶雲의 시문학에 대한 연구이다. 고대는 󰡔孤臺日錄󰡕이라 는 비교적 많은 양의 일기를 남기고 있으나, 정작 그의 시문을 수록한 문집 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남긴 시문으로 전하는 것이 거의 없다. 그에 대한 연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시문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고대일록󰡕과 그의 주변의 인물들, 특히 사우관계에 있 던 사람들의 문집을 살펴보면, 그의 시문학에 대한 정보를 제법 얻을 수 있 다. 우선 󰡔고대일록󰡕을 보면 그가 생활 속에서 시문을 일상화하였던 자취를 엿볼 수 있으며, 일부 시를 볼 수 있고, 특히 많은 문장을 접할 수 있다. 그리 고 시는 그의 스승인 鄭仁弘의 문집에 여러 작품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의 시는 스승의 학덕과 행실을 읊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가운데에 는 벗과 주고 받은 시, 벗을 만나 그 감회를 읊은 시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특 히 스승을 읊은 시는 현실(소인), 스승, 국왕이라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시의 구조에는 그의 시의 지향이 담겨 있다. 고대는 이러한 시들을 통하여 그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을 표출하였다. 산문은 알려진 것으로 感樹齋 朴汝樑에 대한 제문 1편에 지나지 않았으나, 󰡔고대일록󰡕에는 완전한 산문으로 전하는 것만도 11편이 있고, 산문으로 볼 수 있는 글들이 여러 편 남아 있다. 그는 산문을 지음에 후대에 남기려고 하 는 저술의식을 뚜렷이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문 가운데에서는 시에서 보다도 더 강력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특히 절개를 지키는 일에 중점을 두어 의도적으로 글을 지었는데, 바 로 「牡丹側柏說」과 「硯子說」이 그것이다. 모란 측백은 모란과 측백을 의인 화하여 대화체를 통하여 모란의 화려함보다는 측백의 절조가 중시되어야 함 을 이야기하였고, 「연자설」은 벼루에 새겨진 소무의 일을 통하여 절조를 강 조하고 조정에 이런 사람이 등용되어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하였다.
        116.
        2012.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t is argued in this article that the crucial aspects of syntactic change in the history of English are derived from the fact assumption that the LCA is applied to lexical items individually in the [CP-VP] clause structure of Old English, yielding various patterns of AUX, V and O placement. In the meantime the LCA is applied directly to the clause structure [CP-TP-vP-VP] of Modern English, thus deriving the fixed word order. With the assumption that Old English AUX and V are base-generated in the same position of VP under the [CP-VP] structure, one of both should move out of VP in order to asymmetically c-command each other due to the LCA requirements, deriving AUX-V order or V-AUX order in the surface subordinate clauses of Old English. After the introduction of TP and vP in Middle English, however, it is argued that AUX and V are base-generated in TP and vP respectively, showing the structure where TP asymmetically c-commands vP. Thus the word order change in the history of English is shown to be derived from the LCA availability.
        117.
        201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tudy is caused by the argument of Wendy Meyer, who argues that to characterize Chrysostom as a “lover of the poor” is to misunderstand him against the argument of Peter Brown. She insists that it is more accurate to call him not “champion of the poor,” but “champion of the voluntary poverty.” But the author is not to focus on the contrast argument of above two scholars but to investigate their argument from view point of the monk-bishop leadership.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work is to present how the leadership of monk-bishop leadership is forming and figuring out. In fact, “the lover of voluntary poverty” and “the lover of the poor” seems to have the deep gap, which could not overcome. Nevertheless, the new leadership, which evolves above two strange factors, is emerging in the name of monk-bishop leadership in late Antiquity. By focussing on life, work and time of John Chrysostom, this investigation will, portray the transitions of how “the lover of voluntary poverty” and “the lover of the poor” are connecting. John Chrysostom (d.407) lived the monastic life for the several years in the mountain. And he was the presbyter and bishop of Antioch and the Bishop of Constantinople. He is very strong position. in its examination of late-antique poverty. He had an enduring influence on his communities with abundant references to the poor and/or almsgiving to be found in his 823 homilies, 242 letters and fourteen treatises. Particulary, in studying of church and state in late Antiquity, this work has great depts on the study of Peter Brown.
        118.
        201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포페아의 대관식》에 등장하는 포페아와 옥타비아는 둘 다 로마 제국의 5대 황제였던 네로의 부인이었다. 오페라에서 두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실제보 다 추악하게 왜곡되었는데 이것은 이 작품이 완성되고 초연되었던 베니스 공화국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고대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디오 카시우스의 원전을 살펴보고 여기에 기록된 포페아와 옥타비아의 실제 모습과 오페라 속의 모습을 비교 분석하였다.
        119.
        2009.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활발한 발굴에 따른 곡물의 출토가 많아짐에 따라, 벼의 한반도(韓半島) 전래(傳來) 경로(經路)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한반도(韓半島) 최고(最古) 벼인 청원 소로리(小魯里) 벼의 전래경로에 대하여 제4기 자연환경(自然環境), 생태적(生態的), 작물학적(作物學的)면을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소로리(小魯里) 볍씨는, 최대빙하기(最大氷河期)이후 한반도가 중국대륙과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었을 당시 한국조상(韓國祖上) 중 남방계(南方系)의 한 부류가 볍씨를 가지고 중국대륙 남부지역에서 해안을 따라 동북진(東北進)하다가 당시 옛 금강하류(錦江下流)를 거쳐 소로리(小魯里)로 이동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를 "옛 금강-소로리 볏길(Old Geumgang-Sorori Rice Road)"이라 명명한다. 2. 유전적(遺傳的) 변이(變異)가 큰 소로리(小魯里)벼는 빙하기이후 지리적(地理的), 생식적(生殖的) 격리(隔離)가 발생함에 따라 한반도(韓半島)의 자연환경(自然環境)에 적응(適應)(자연선택(自然選擇))하게 되어 변이가 적은 고대(古代)벼(가와지(家瓦地)벼)로 종(種)의 분화(分化)(논벼, 수도(水稻))가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즉 한반도에서 순화단계(馴化段階)인 소로리(小魯里)벼가 재배(栽培)벼로 발전(發展)하였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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