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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2012.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to overview and review the infiltration of Japanese Buddhism and it's influences on the construction and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Japanese Buddhist temple from the opening of ports to Independence Day of Korea. Infiltration of Japanese Buddhism had been sustained during 70 years from the foundation of Higashi Hongan-ji Temple(東本願寺) in Pusan, by Shinshu Otani School(真宗大谷派) which was one of Japanese Buddhism, to Independence Day of Korea. This study is to be promoted on the following subjects ; 1) the circumstance around the infiltration of Japanese Buddhism 2) Buddhism policy of Japanese Governor and infiltration on Korean Buddhism 3) increasing trend, distribution and construction of Japanese Buddhist temples near downtown areas 4) for the conclusion, case research on Bondang, Gori, and open space and analysis on the architecture style of Japanese Buddhist temples Accordingly, Korean Buddhism had been subordinated to Japanese Buddhism, and the management system and memorial service of Korean Buddhism had to be affected by Japanese Buddhism. This study is considered meaningful for the elementary research to examine the aspects of Japanese style on Korean Buddhist architecture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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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2011.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려후기의 불교계는 귀족 중심의 불교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 중심의 불교운동 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교단의 변화 분위기에 따라 불교에 귀의하여 信行 했던 승려들의 출신성분도 다양해져 이전까지 주를 이루었던 귀족 출신 승려보다 는 오히려 민간 출신의 승려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때 등장하여 불교계를 이 끌어 갔던 승려들은 대부분 당시에 불교계를 풍미하던 禪宗에 속해 있으면서 불 교를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승려들로써는 慧諶 (1178-1234), 天因(1205-1248), 一然(1206-1289), 冲止(1226-1293), 景閑 (1299-1374), 普愚(1301-1382), 惠勤(1320-1376) 등을 예거할 수 있는데, 이들 은 대부분 일반 사대부가문 출신으로 그중에는 儒業에 관심을 가져 儒經을 공부 한 뒤에 과거에 합격했던 경력의 소유자가 있기도 하다. 冲止는 19세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다가 29세에 祝髮入山하여 승려의 길로 들어선 인물 이다. 그가 일찍이 유학을 공부하고 문학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승려가 된 뒤에도 속세 문인들의 문학적 聲價에 못지않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어 고려후기 불교문 학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갔다. 그가 승려로서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부단하게 세상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불교가 단순히 내세를 기원하는 비현실적인 종교 가 아니라 부당한 현실의 질곡에서 신음하는 대중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그 들과 함께 하는 현실적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교관을 가지고 있던 충지는 세속을 초탈하여 물욕을 버리고 마음을 문학에 의탁하여 詩 와 더불어 노닌다는 禪的詩觀을 보일 수 있었다고 하겠다. 충지는 운문과 산문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지만 그의 시를 통하여 그의 문학세계는 물론이고, 아 울러 고려후기 불교문학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충지가 남긴 한시를 분석해 보 면 승려로서 불교의 교리를 읊은 것보다는 세태인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방 하거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노래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그의 시 에서 나타나는 현실에 대한 관심과 대중들에 대한 애정은 고려후기 불교문학이 일반 대중들을 교화하고 절망에 빠진 그들을 구제하는 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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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201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학생들 사이에서」에 나타나 있는 불교적인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예이츠가 불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가 수용한 불교의 개념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가 어느 정도까지 수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론부분에서 예이츠가 불교에 접하게 된 계기 및 과정을 고찰하여 예이츠의 작품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가 아님을 논증한다. 시인이 불교에 대하여 알지 못하거나 불교를 접한 바가 없다 하더라도 시인의 작품을 불교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인이 불교에 접하고 불교를 알고 있었다면 그의 작품에 그 영향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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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2009.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려시대는 정치적으로 실용적인 유교에 깊이 연대되어 있었지만 나라의 근간 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불교에 의지하였다. 이는 당대를 주도하고 대변하던 계층이 불교를 所依處로 삼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시대 지식인의 사유와 행동에 불교가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고려후기에는 고려전기와 마찬가지로 불교가 크게 성행했고, 특히 무인난으로 인하여 많은 문인 지식인들이 현실을 떠나 山野로 도피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불교와의 인연을 가 지게 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고려후기에 불교계를 주도하던 高僧․大德들 가운 데 鄕吏層․讀書人層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들과 교유하던 문인지 식인들이 불교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 고승들은 일찍부터 儒․佛에 관심을 가지고 精進하여 科試에도 합격할 정도로 文人的素養을 충분 히 갖추고 있었으므로 同時代의 문인들과 잦은 문학적 교류를 가졌다. 따라서 당 시의 문인들도 불안하고 경직된 시대를 만나 불교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고, 詩文에 능한 승려들을 통하여 불교의 높은 정신적 경개에 이르고자 하였다. 당시 의 문인지식인인 이들 사대부들은 유교를 공부하여 현실 정치에 참여했지만 危難 의 시대에 정신적으로 기댈 곳은 불교의 탈속적 세계 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학적 교류는 승려들의 작품 형식으로 정착된 山人體를 서로 답습하게 되므로써 더욱 견고성을 가지게 되었다. 승려들과 문학적 교류를 통하여 불교사상을 문학적 이데 올로기로 삼은 사대부들이 많았지만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李奎報와 李穡 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詩文에 나타난 불교 취향은 고려후기 문학 사상의 중 요한 부분이 되기 마련이었다. 이들의 불교관련 시문에서는 불교의 이상향인 淨土 를 추구하면서 탈속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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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에서는 한유 시와 불교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한유는 "불도를 배척한다"고 스스로 자임했지만, 그의 행위는 도리어 불교와 깊고 애매하게 유착되어, 자신의 "선언"과 "행동"이 서로 위배되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원도〉를 찬술하고 불골 맞는 일을 간언하는 등 결연히 불도를 반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승려와 밀접하게 왕래하고 시를 수창하며 정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모순적 태도는 후세에 비평을 받았다. 현존하는 한유의 시 사백여수 중 불교와 관련된 시는 겨우 약 20여 수 뿐이지만, 그 영향은 대단하다. 당나라 때 불교는 정치사상면에서 국가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사회를 침식시키는 큰 병폐였다. 당시에 형성된 방대한 무위도식계급 및 그들의 소비경비는 심히 통절한 것이었다. 그는 시에서 이런 불교의 해악을 지적하고 불교를 적극 반대했다. 한유가 불교를 배척한 것은 불교가 백성들의 생산생활에 막대한 파괴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시에다 불교의 허망과 거짓을 풍자하였으며, 혹세우민을 폭로하였다. 시승과 진지하게 교류한 시들은 후세사람들이 한유가 변심하여 불가에 귀의했다고 여겨 질책을 받았다. 한유와 승려의 교류는 경제적 능력 때문이거나, 시문의 재능이 출중한데 불교에 입문한 것이 통탄스러웠기 때문이거나, 심지어는 그들을 유가의 문하로 끌어들여 벼슬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무본스님을 환속시킨 것은 한유의 일대공로였다. 韓愈는 불교비판에 힘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문학창작방법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 이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는 불교경전을 익숙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시에다 화용했고, 그가 시도한 "이문위시" 역시 직접 불경과 불경번역과정에서 얻은 것이며, 시 속의 몇몇 조구방법들도 역시 불경게송의 조구방법을 모방했다. 이로 본다면 한유는 비록 불교를 배척했다지만 그는 여전히 불교경전을 열람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온갖 전적을 박람했으니, 불경도 당연한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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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2007.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6,400원
        69.
        2007.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 the paper, "The Anti-self in Yeats's Per Amica Silentia Lunae" published on Dec. 2004, I studied the theory of Yeats's anti-self in the occultic meditation. In "Ego Dominus Tuss," Ille finally found his anti-self. In "Anima Hominis," Yeats said that the saint like Christ and Buddha, and the poets like Dante and Keats attained the anti-self. The anti-self is the opposite of daily self and the egoless self. After leaving the Golden Dawn in 1917 Yeats explored a wide range of meditative traditions such as Zen Buddhism, Upanishads, Tibetan Mysticism and Chinese Taoism. Throughout his poetic career, Yeats defined poetry, and indeed all art, as a form of meditation, as an experience which can reveal the unified "Self," defined by the Upanishads, and unlock its creative energy stored in the "deep of the mind." In "Discoveries," Yeats said that the more he tried to make his art deliberately beautiful, the more he follow the opposite of himself. In this paper I argue that Yeats's anti-self is similar to the "Self" of Upanishads and the Buddhahood of Zen Buddhism. In "The Double Vision of Michael Robartes" the girl dancing between a Sphinx and a Buddha in the fifteenth night is the anti-self of Yeats. In a moment the girl, the Sphinx, the Buddha and the poet himself had overthrown time in contemplation. They remain motionless in the contemplation of their real nature, Buddhahood. Full moon is the light of Samadhi and Turiya which is the forth state corresponding to the whole sacred word "AUM," pure personality, the "Self" of Upanishads. Only when Yeats becomes the anti-self he can be a totally subjective mind, overcome the illusion of duality, and find a "revelation of realty." It is a deliverance that leads simply to seeing things the way they really are, in their most naked reality. The process of spiritual realization is cognitive, for knowledge unites the knower and the known together, reverting to the language of "A Dialogue of Soul and Self," intellect no longer knows/ Is from Ought, or Knower from the Known. "The Self is Brahman": the individual soul is seen to be the universal spirit. When each man realize that his original nature is the eternal spirit, no matter how ordinary he is, he will enter Buddhahood. Like Bodhisattvas who, on the verge of their own enlightenment, vow to hold themselves from that final bliss until all sentient beings are released from the phenomenal world Yeats would like to be an Avalokitesvara in this rag-and-bone shop.
        6,700원
        70.
        2007.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is conservation works trend since 1900. Objects for study are National Treasures and Treasures in Buddhism, in wooden architecture. And researched about the factor of conservation works, roof and tile, painting and dissolution conservation works cycle by dissolution, timber change ratio. The factor of conservation works is the most, roof and tile. Conservation works cycle by dissolution is 12.8 years. Painting cycle is 16.3 years. There are two concepts of conservation works, that is restoration and preservation. There are many restoration before 1960's. To 1960's the preservation to be many to 1970's many Restoration. And since the end of 1970's is Preservation. These reasons are conservation works history of object, the rule for Heritage protection, people on works, and study of architecture. history.
        5,200원
        72.
        200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이규보의 불교관련시를 통하여 유자로서의 입지에 충실했던 이규보가 무신집권의 시대와 불교문화의 시대에 관료지식인으로서 정치 사회적 현실과 갈등하고 적응하면서 형성된 불교인식은 무엇이며, 그것이 그의 시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이규보의 불교관련시는 불교적 서정의 형상화에 있어서나 공사상으로 대표되는 불교적 사유를 시화하는 데 있어 상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의 詠物詩에 보이는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의 경향이 볼교관련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불교인식은 주로 젊어서의 법화경과 노년의 능염경을 비롯한 경전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규보는 空恩想을 비롯한 불교적 사유를 시화하는 데 있어서도 탁윌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파악 된다. 山夕詠井中月에서 보이는 것처럼 달[月]과 달빛이라는 평범한 불교적 소재를 시화하는데 있어 그 상투성을 벗어나 작품 안에 불교적 사유를 시로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 주었다.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실상과 허상과의 관계에 주목하여 불교의 기본 교리인 空思想을 생경하지 않게 문학적으로 시화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단순한 이해의 정도를 넘어서 있음을 시사하는 예라 할 것이다. 본고는 이규보의 불교관련시가 그의 불교 교리 이해에 상응할만한 불교 인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佛敎詩로서 요구되는 종교성이 결여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가 노년에 보여 준 불교에 대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불교라는 주제는 그의 시에 있어 주된 흐름이라 할 수 없고, 그것은 儒者로서의 입장이 불교에 대한 종교적 신앙으로 대체될 수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고를 통하여 기대되는 것은 이규보의 불교 인식과 불교시에 보이는 국면들이 이규보의 개인적인 성향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불교에 대한 일반적 정서 또는 불교 문학적 성취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이 점이 밝혀진다면 본고의 논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 이규보의 佛敎關聯詩를 통한 불교시 일반의 특질을 구명한다고 하는 문제에 한 결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8,900원
        75.
        200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t is well-known that Yeats had a very deep interest in the Oriental Thoughts throughout his life. In this paper, the focus is laid on his interest in Buddhism. Many of his friends and teachers, such as George Russel, Edward Dowden, Madame Blavatsky, Shri Purohit and Mohini Chatterjee introduced Buddhism to him and their friendship were lifelong. This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ragic Joy” in his poem “Lapis Lazuli” and Buddhism. In a letter to Dorothy Wellesley, Yeats confessed that as the east has its solution, the westerners must raise the heroic cry. His confession implies his object is oriental solution or the solution in the viewpoint of the union of oriental thoughts and occidental thoughts. The main theme of the poem, “Lapis Lazuli” is tragic joy. The characters created by artists aren’t afraid of death and play their roles to the end. Accomplishing their roles, they feel joy, though they know their roles are not reality and reality itself is empty. This attitude isn’t different from that of Buddhism. Buddhism sees that the Reality itself is empty. Though artists realize nothing can last forever, they create artifacts and feel joy in repeated creation. It is certain that Yeats believes that the source of all the existing things is the mind. All the things in the world are reflection of the mind and emptiness itself. To realize this truth is tragic but to create again is a joy.
        5,400원
        76.
        199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5,700원
        77.
        1989.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How did the Korean religious culture which was consisted of three different religions- Shamanism, Buddhism, Confucianism- be combined and transformed? The author focused the mixture and transformation of the procedure of sacrificial rite and the arrangement of sacrificial food in each religion. In this thesis, the author studied first, the conception in sacrificial rite, second, the procedure of sacrificial rite, third, the items of sacrificial rite food according to each period. In consequence of the research each religion had lost its uniqueness and became mixed to each other and settled down in Korean culture.
        5,400원
        78.
        2020.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불교 사찰이나 대순진리회(Daesoon Jinrihoe) 도장에 가면 벽면에 소가 있는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소 그림을 ‘심우도(尋 牛圖 Simwoodo)’라고 한다. 수도과정을 동자가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형식의 심우도 그림은 티벳이나 도교(道敎)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며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사용하여 불교의 그림으로 인식 되어 왔다. 대순진리회의 심우도에서도 수도인이 입도(入道)를 하고 수도과정을 거쳐 도통(道通 Dotong)에 이르는 과정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에서 ‘차용’기법은 현대미술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미술사나 광고 미디어 등에서 과거에 이미 등장한 형상과 다른 형상을 합성시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기법을 말한다. 즉 과거나 기존에 존재했던 작품이나 이미지를 빌려와 합성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서양에서는 마네(E. Manet), 피카소(P. Picasso), 뒤샹(M. Duchamp)을 거쳐 레빈(S.Levin)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과거 미술사의 유명한 작품들을 차용하고 새롭게 만들어 원작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확장시켰다. 본 연구에서는 불교 사찰이나 대순진리회에서 사용하는 ‘심우도’를 현대미술의 ‘차용’ 개념으로 접근하여 불교 사찰의 심우도와 대순진리회의 심우도가 같아 보이지만 차이가 있으며 서로 차용의 독창성이 있음을 논하고자 한다. 그 결과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심우도가 오래전부터 소를 상징으로 하여 전해져 오는 목상도(Moksangdo), 목우도(Mokwoodo), 십우도(Sibwoodo), 팔우도(Palwoodo) 등 유명 ‘심우도’의 개념을 차용하고 새롭게 각색함으로써 불교와 대순진리회의 새로운 ‘심우도’로 표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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