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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170

        102.
        2010.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19세기라는 역사적 격변기에 활동했던 문인인 橘山李裕元(1814~ 1888)의 『사찬』과『사영』에 관해 살펴보았다. 기존 이유원에 대한 논의는 『林下筆記』 소재 樂府와 같은 것들에만 집중되어, 그의 역사적 인식에 관해서는 거의 논의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이유원의 다른 저작인『嘉梧藁略』이나 『橘山文稿』와 같은 다른 작품에 관한 연구는 미진 한 실정이다. 본고에서 언급한 『사찬』과『사영』은 귤산의 저작인 『가오고략』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이는 귤산의 문집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역사관 을 연구하는 데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귤산은 『사찬』에서 15개국에 대해서 시를 쓰고 있고, 『사영』에서는 자신이 다 쓰지 못했던 『사찬』의 餘史를 42명의 인물들을 통해서 보완하여 더욱 자세히 기록 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역사적 작품들을 통해 그가 부국강병을 위해 조선의 현실 을 사실적으로 인식하고 쓴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당대의 다른 문인들과 비교를 해보거나, 전후 시기 문인들과 비교해 볼 때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사찬』과『사영』만을 가지고 귤산의 역사관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겠지만, 본고를 통해 그가 지니고 있던 역사관의 일부나마 살펴 볼 수 있고, 이것이 곧 귤산 뿐 아니라 당대 문인들의 역사관을 이해하고 파악하 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6,000원
        103.
        2010.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宣祖∼光海君연간에 활동했던 서얼 문인 李再榮(?∼1623)의 삶과 문학 활동을 해명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詩話集『秇苑詩話』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성격을 밝힘으로써 당대 문학사 의 실상에 다가설 하나의 입지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재영은 뛰어난 文章能力에도 불구하고 신분적 한계로 인해 사대부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다만 漢吏學官의 職을 수행하면서 문장 능력을 인정받았고, 또 발휘할 기회를 가지면서 점차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許筠과 절친한 사이였다. 광해군 집권 이후에는 당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던 李爾瞻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 무렵 廢母論議에 동조하고 이를 확산시키 위한 여론 형성에 노력하는가 하면, 이이첨 아들들의 과거 답안을 代述하기도 한 다. 이러한 행적은 당시 士類의 지탄으로 이어졌고, 癸亥反正이 일어나면서 체포 되어 죽음을 당한다. 사대부 사회의 진입에 실패하면서, 그는 자신의 문학 능력을 비정상적인 방향에서 펼쳤다. 李達문집의 편찬을 담당했으며, 『前五子詩』의 대상 인물로 당대에 으뜸가는 시인으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의 문 장 능력은 不正과 謀議의 道具로 전락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許蘭雪軒문집에 있는 『白玉樓上樑文』의 위작에 관여한 일이다. 이재영의 『예원시화』는 그의 문학 견해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다만 20개의 항목이라는 적은 분량에다 대부분의 자료가 『詩人玉屑』의 범위 내에 있 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詩體로부터 시작하여 실제 작품의 예시 를 통해 종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시의 본질, 창작과 비평상의 고려점 등 한시 일반의 주요 문제를 두루 포괄하고 있다. 양적인 면에서 宋代자료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창작과 비평상 송시를 典範이나 기준점으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다. 한편 明末王世貞의 『藝苑卮言』에 수록된 내용을 인용하여 宋代의 詩史를 설명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재영이 明末復古派의 저작을 독서 범위 안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허균과 문학 교유를 나누었던 권필이 復古派관련 내용을 남기지 않은 사실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복고파와 관련한 방 대한 작업이 개인적인 애호와 정리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 할 때, 이에 수반되는 의견 교환이나 토론 등에 있어서의 누군가의 역할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 하자면 허균이 명말 문단에 대한 관심이나 수용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 권필과 공유할 수 없었던 부분을, 이재영과 함께 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6,900원
        106.
        2010.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process to manufacture costume design of main female characters of TV historical drama〈Lee San〉and suggest the costume, which is developed with contemporary taste. As study methods, the literature study using books and theses concerning costume, fine art, culture and history were used for theoretical background and the empirical study method manufacturing actual costume on the basis of literature and relic were used for dress manufacture. The study results were as follows. The costume was decided by researching historical investigation material on the basis of synopsis, grasping director's basic intention, setting design direction, preparing design map of each character, selecting style, detail, fabric and color, manufacturing sample and performing camera test. The design concept of〈Lee San〉was Modern & Chic & Clean, short & fitted chogori, chima with wide & abundant cocoon silhouette, clean & bright colors and 100% silk fabric. For the design discrimination of royal semi-formal costume, color was used to symbolize character and pattern was used to symbolize social status. In addition, detail change was adopted depending on the body shape of actor and there was almost no design discrimination in silhouette and fabric. Petticoat of the west, modernization of transitional pattern and change of detail were adopted as design elements to add contemporary taste.
        5,500원
        107.
        200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evelop royal costume design with contemporary taste depending on the character of hero, Lee San, and time flow of TV historical drama〈Lee San〉and research design discrimination and creative expression. As study methods, the literature study using books and theses concerning costume, fine art, culture and history were used for theoretical background and the empirical study method manufacturing actual costume on the basis of literature and relic were used for dress manufacture. The design concept of costume was modern & chic & clean. The costume was designed through straight silhouette, clean & bright colors excluding prime colors, style transformed to permanent straight pleats on the basis of chulik, 100% silk material focusing on high quality and pattern & decoration of the age of Three Kingdoms. As results, the designs of princess' official rob, day dress and chulik, and emperor's official robe, chulik, military dress and chun-dam-bok were developed. The design discrimination depending on social status change. In the period of princess, black, white, silver and blue were used but in the period of emperor, red, gold and black were used. It was expressed through dragon pattern and extended length used in cloth. The design discrimination depending on character change was visualized through color. Although it is not consistent with historical investigation, contemporary fashion design elements were added to royal costume through color contrast of black & white, permanent straight pleats, velcore, wristlet, extended length and layered-look.
        5,100원
        109.
        2009.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상에서 이광수의《閨恨》과 胡適의《終身大事》의 비교를 통해 그들의 초기 사상과 작품의 의미 분석을 병행하여 점검해보았다. 이들 작품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전문적 희곡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연구가 미비하지만 이들에 작품에 대한 평가 또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이 특수한 환경 속에 위치한 관계로 이들의 작품에 대한 제 평가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어 감을 알 수 있다. 특히 근래에 양국의 희곡사적 연구가 축척되고 희곡연구의 범주가 공연사로 확장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갖는 사상적 의미와 선구적 업적은 분명 제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 희곡이 지닌 가치를 단편적 시각에서 조망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남긴 문학적 자산을 홀시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들 작품들이 발표된 연대가 비슷한 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유학시대를 통해 희곡의 내용과 주제를 체득하고 창작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 작품은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문학사적 측면에서와 근대사상의 수용과정에서 주요한 핵심적 주제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들은 그들의 초창기 사상을 밝히는데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된다. 또한 희곡이 발표된 두 잡지의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 잡지가 양국의 근대문화와 근대문학을 끼친 영향은 지대한다. 이 잡지들은 두 작가가 초창기 자신들의 사고를 적극적으로 개진한 장이었으며 그리고 주요한 멤버로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곡이 단순한 문학적 성과물을 넘어 이들의 사상적 준거된다는 점에 입각하여 의미를 제고해 보았다. 특히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희곡 속에 나타나는 여성형상과 그들의 현실적 실천에 대입해 봄으로써 그들이 지닌 생각과 사상적 편린들을 재구성해 볼 수 있었다. 이는 작가와 작품을 만나게 하는 교통이자 교직이며 인간적 휴머니티를 발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치열하게 근대사상을 수용하고 계몽적 삶을 실천하려는 자세로 일관하지만 이들은 인간적 한계와 고뇌는 현실을 결코 비켜나갈 수 없었다. 이 점은 오늘날 동아시아 담론의 지속선상에서 탈리될 수 없는 엄연한 진행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점에 입각하여 우리는 이들 희곡을 재평가해보려는 시도에 기본적인 의미를 두었으며, 그리고 이들의 살아있는 문학적 생명력과 엄연한 자유정신을 탐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는 이 두 작품의 대비분석을 통해 상관성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이들 작품은 당시의 현실에서 문명과 문화의 굴절이 반복하는 사회적 소산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희곡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나름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선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시 한국과 중국이 처해 있는 상황적 논리에 결부되어 각각의 작품 특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특색은 고스란히 각 국가의 드라마투르기의 한 양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과제로는 좀 더 심화된 희곡자체의 분석을 통해 위의 결론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이들 희곡에 대한 본격적인 극적 방법론에 의한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이 두 희곡이 매우 짧고 완전한 근대극의 꼴을 갖추고 있지 않을뿐더러 이들 작가들이 남겨 놓은 거룩한 유산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사실이다. 비록 이러한 한계가 명백하게 존재하지만 적합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원만한 결과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7,000원
        110.
        2009.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노신과 이광수의 1910년대 유학 시절의 체험과 이후 그러한 체험이 소설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는지를 몇 가지 공통되는 큰 주제 아래 그 차이와 동질성을 살펴보았다. 이번 발표문을 일단 마무리하면서 차후 보완해야 하고 또한 이번 논문과 연결하여 새로운 논문의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필자 스스로 생각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번 발표문을 보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실증적인 자료(지금 현 상황에서 사실 유학 시절의 새로운 자료를 찾는 것이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를 찾고 분석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자료를 찾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들의 유학 시절의 독서 체험(그에 대한 목록이나 그 영향 관계에 관한 논문은 적지 않지만)과 문화 체험(이에 대해선 좀 더 현지답사라든가 실증적인 자료 발굴과 분석이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보며 그러한 작업을 차후 해나갈 계획으로 있다)에 대한 분석도 보충이 되어, 그들의 유학 체험에 대한 단순 비교가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 지식인의 근대 문명에 대한 인식을 통한 동아시아 근대 담론의 형성이라는 큰 주제에 보다 적절한 소논문을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노신과 이광수 두 작가 모두 유학 시절 문학에 뜻을 두었고, 그 문학을 통해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문인이 되고자 하였다. 그 유명한 환등 사건, 노신을 의학에서 문학으로 결정적으로 옮겨가게 만든 그 사건이나 이광수가 메이지 학원 시절, 러일 전쟁의 경험과 톨스토이주의에 경도하면서 민족 계몽으로서의 문학에 눈을 뜨고 1차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기차칸에서 겪었던 사건으로 더욱 민족 계몽을 자신의 책임으로 느끼는 사건 등에서 근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문인이었던 두 사람의 공통적 운명과 시대 상황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새삼 떠오른다. 중국문학 내에서의 노신의 초기 사상에 관한 연구나 한국문학에서의 이광수의 초기 사상 연구는 상당히 진척이 되어 있으나 두 작가의 사상에 관한 비교 및 그를 통한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의 근대 인식에 관한 총체적 연구는 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차후 연속 연구 과제로 두 작가의 유학 시절 체험과 초기 논설을 중심으로 한 비교 분석을 하고자 한다.
        6,400원
        111.
        2009.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근대 한국 문학에서 구여성은 무식하고 관습을 좇으며 간혹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만 대체로 선량한 하층민으로 표상되었다. 현진건, 이기영, 강경애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거니와 이로써 이들은 '불행한 조국'을 상징하는 알기 쉬운 환유가 되었다. 그들의 고난과 희생은 수난당하는 조국의 운명과 동일하게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여기에는 분명 의아한 구석이 있다. 구여성은 대관절 언제부터 문학사에 등장했을까. 한국문학에서 이들 구여성이 계급성을 획득하는 시기는 카프(KAPF)의 등장과 맞물려 있지만 사실 이들은 어느날 혜성처럼 문학사에 신여성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하면서 저절로 특정한 의미로 자연화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예컨대 근대일본문학의 기원을 논하며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 문학에서 근대 문학이 자연화되어가는 과정을 '풍경의 발견'이라는 발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고진의 설명처럼 기원이 사후적으로 구축된다면 구여성이라는 '슬픈' 기원 역시 신여성이 등장한 후 이와는 대조적으로 구축된 근대적 관념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신의 소설을 보면 노신이 바라본 하층민, 특히 구여성의 모습에서는 이제 막 재현되기 시작하는 '중국적인 것'의 기원으로 그 의미가 안착되고 있는 구여성의 존재가 감지된다. 서술자의 시선은 이들을 집요하게, 그리고 꾸준히 따라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종종 익숙하기보다 기묘하게 낯선 존재로 다가오는 점이다. 병든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내일》)는 한국 소설의 어머니보다 더 늙고 체념적이며 비합리적이다. 근대 한국 문학에 비해 어딘가 지나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 지나침의 배후로 의학도의 시선을 되받아치는 응시를 지목했지만 여기에는 또한 노신의 개인사도 개입하고 있다. 노신이 《광인일기》에서 의학도의 감각으로 이 슬픈 기원을 해부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성숙한 장년이었던 것이다. 떠나온 자였으되 한편으로 여전히 고향의 이런저런 풍속을 기억하고 그곳에 아내를 둔 내부인이기도 했던 그의 처지는 노신의 문학에서 의학이 가치중립적 지위를 넘어서 그 시선의 권위를 감지하는 자기반성적인 기제로 전환되는 것을 설명해준다. 주체의 시선과 응시가 뒤엉키는 곳에서 의학은 문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축원례》에서 이 슬픈 기원이 가르쳐 준 것은, 뒤늦었지만 주체이기 전에 이미 대상이었던 의학자 자신이다. 반면 이광수는 이 점에서 훨씬 자유로웠다. 동일한 이유를 붙이면, 십대에 유학을 떠나 문명을 날리면서 춘원에게는 이 슬픈 기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을 추동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의 이상이었고 그것은 귀국한 춘원이 창조해야 할 근대문학 자체이기도 했다.《개척자》에서 춘원은 희귀한 주체, 화학도를 내세워 그 가능성을 열렬하게 타진했지만 정작 춘원이 만들어낸 창조의 꽃은 그의 모순적인 근대성을 모조리 흡수해 용해시키는 '새로운 기원'-신여성이었다. 이로써 춘원이 창조한 한국 근대문학의 주체들은 과학(자)의 젠더지향성에 쉽사리 포섭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구여성이 등장하는 춘원의 다른 작품을 보아야 하므로 여기서 다룰 바는 아니다. 이 논문은 근대 초기 한국과 중국에서 과학과 문학이 만나는 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론일 따름이다.
        6,100원
        112.
        200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우원 이호빈목사의 전기적 바탕에서 그가 한 평생 추구한 예수 살기 공동체운동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오늘 위기 상황에 있는 한국교회에 어떠한 개혁적 대안을 제시하는가 하는 점을 논구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원 이호빈목사의 한 생애는 그의 가족 경험과 신학의 시절 공동체생활(communal life)을 기초한 예수 공동체영성에 있다. 그의 영성은 교회 개혁을 위한 예수 교회운동으로, 그리고 교회와 사회 개혁을 위한 중안 신학교 설립 운동으로, 마지막에 교회와 사회, 세계의 개혁을 위한 흘리에 자연 공동체운동으로 확대되고 발전하였다. 우원의 삶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예수와 함께 혈연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서 예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다. 운동은 일회적일 수 없다. 우원은 부단히 예수 공동체형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에 대해 후학들이 무엇이라 평가하든지 그는 예수 공동체운동을 한국 교회 역사 속에서 일관되게 꾸준히 추진한 실천가요, 영성가이다.
        4,600원
        113.
        200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우원 이호빈 목사(友園李浩彬, 1898-1998)의 독립운동과 토착적 신앙운동으로서 예수교회운동을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인류보편사적이고 민족사적이고 한국교회사적인 맥락과 의미를 밝히려는 작업을 시도했다. 우원의 기독교 복음에 바탕을 둔 새로운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은 근대 제국주의와 서구적인 근대 기독교 패러다임을 넘어선 지평에서 주체적인 한국기독교인의 삶의 세계를 열어냈다. 이것을 선교사들의 ‘서도서기 패러다임’과 초기 한국기독교의 주체적인 입장인 ‘대도대기 패러다임’을 넘어선 ‘한도한기 패러다임’으로 파악했다.
        9,000원
        114.
        200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reflect on the affects and implications of Lee Sang Beck's life amateurism and national consciousness through sports on Korean citizens in the era of confusion after Korea's independence. This paper scrutinizes into his
        5,100원
        115.
        2008.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 the 1930s, new theologians who studied abroad, due to Japan’s cultural policy of the 1920s, wanted to recognize the Bible and theology of their own subjective opinion, and get out of the fundamental conversation of theology of the early Western missionaries. It caused a debate between Conservative and Progressive theology in the early churches in Korea. Through the “Hypothesis of Moses Copyright negation” and “Problem of the Interpretation of Women’s Rights”, which were condemned issues by Presbyterians in 1934, and also the “Abingdon Bible Commentary Incident in 1935”; early Korean church leaders, pastors, and even missionaries, who were educated by Conservative western missionaries, judged the change of the new theologians’ view. Pastor Sun Joo Kil, a leader of the “Pyong Yang Revival Movement” which was initiated by Missionary Hady in 1907, held his Bible crusades, and his successful spiritual revival movement kept until 1910. After him, Pastor Ik Doo Kim started the Healing Crusade, as a new step of the spiritual revival movement in 1920. There was also another man who wanted to revive the Korean church, based on the contemporary churches. He tried to reform the churches, not to be conservative but to be focused on spiritual approaches. His name was pastor Yong Do Lee. Unfortunately, Pastor Yong Do Lee’s Shimuyan, works were only recorded for five years from 1928 to 1933. He died when he was only 33. In spite of his short life, the Korean Churches were influenced greatly and changed by him. He was also thought as an enthusiastic and mystic theologian, and also even a preacher who had the element of heresy. The main theme of this thesis focuses on the renewal missions of today's Korean Churches based on Pastor Yong Do Lee’s works for renovating them. This research guides and provides the material to find out a certain way to build up the revival of the Korean Churches’ growth and advance.
        6,300원
        117.
        2007.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유가의 입장에서 사상을 달리하는 불가의 스님을 대하는 양상이 어떠하였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두 작품을 서로 비교한 것이다.두 작품은 中唐의 문인인 韓愈의 「送浮屠文暢師序」와 조선전기의 문인인 李陸의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다.700여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유가로서 불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우선 한유의 작품을 전범으로 설정하여 분석한 후,이륙이 그 전범을 모의하였는지의 여부를 작품의 내용을 대비하는 방법으로 밝히고자 하였다.분석한 결과,한유는 유가로서 불가를 대하는 데에 ‘이름이 유가면서 불가의 행동을 하는 자’와 ‘이름이 불가면서 유가의 행동을 하는 자’의 두 유형으로 나누고는 전자를 배격하고 후자를 승인하는 태도를 보였고,더 나아가 후자마저도 ‘이름이 유가면서 유가의 행동을 하는 자’가 되도록 요구하였다.그것은 불가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대인 불가의 스님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 극단적인 입장이었다.이러한 한유의 견해는 유가의 도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 「原道」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한유는 聖人의 道에 대비되는 불가의 교리가 인간을 夷狄이나 禽獸로 만드는 야만적인 것이라고 여겼기에 비판한 것이다.이러한 한유의 불가에 대한 인식은 왜구의 노략질로 골치를 썩어온 조선전기의 문인인 이륙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그 결과 이륙은 한유가 「送浮屠文暢師序」에서 유가의 聖人之道를 언급할 때 사용한 주요 용어들을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에 그대로 차용하였고 왜구의 노략질이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불가의 교리에 연원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해 내었다.내용도 서로 닮아 있지만 몇 군데의 형식도 한유의 작품에서 익히 본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이것을 통해 이륙의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가 한유의 「送浮屠文暢師序」를 모의하였다고 확언할 수 있다.다만 글을 시작하거나 맺는 방식에 있어서는 한유가 논쟁적인 글쓰기를 한 데 비하여 이륙은 설명하고 진술하는 글쓰기를 하는 차이를 보였다.이것은 두 사람의 개성이나 문세의 상이함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이륙이 유가로서 불가의 스님을 응대하는 양상의 전범을,시공을 초월해 중당의 한유의 글에서 찾아내어 모의하였음을 확인하였다는 데에 본고의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8,300원
        118.
        200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本稿는 白沙李恒福이 ‘丁應泰의 誣告事件’을 해결하기 위해서 陳奏使로 明에 다녀오면서 見聞과 所懷를 기록한 「朝天錄」을 연구함으로써 文學世界와 함께 使行文學으로써의 의의를 찾고자 하였다. 使行文學은 使命의 완수를 위한 公的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 紀行文學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지만, 使臣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文士중에서 선발되었기 때문에 창작된 작품의 수준이 높았으며, 특히 白沙의 「朝天錄」은 對明關 係使行文學硏究에 중요한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갖고 있다. 「朝天錄」의 문학세계는 크게 ‘異國景物에 대한 稱歎’, ‘使行旅程의 哀歡’, ‘憂國愛民의 衷情’, ‘歷史의 鑑戒’로 나누어 분석해 볼 수 있다. 「朝天錄」의 문학적 의의는 기존의 使行錄에 비하여 한층 발전적인 모습의 내용과 형식을 제시함으로써, 후대 使行錄과 使行文學이 내용과 형식면에서 다양하고 우수한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남은 과제는 아직까지 연구가 미진한 使行文學에 대한 특징을 고찰함으로써 使行文學고유의 문학적 의의를 도출해 내고, 또한 古文家로서 인정을 받았던 白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7,700원
        119.
        200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first significant modern theatre movement in Korea arose in the early 1920s. Modern Irish drama and its theatre movement has always been a major field of interest for the Korean intellectuals and dramatists who believed that it provided a model for the modern Korean theatre. The importation of Irish drama was systematically conducted by different groups from the Korean intellectuals in the 1920s and 1930s, during which period many of them published articles concerning Irish drama and the Irish theatre movement. A famous Korean writer Hyo-Seok Lee(1907-1942) published an article titled 'A Research about John Millington Synge's Drama' in 1930, a compressed version of his BA degree essay in Monthly Dae-joong-gong-ron(Public Opinion). However, despite of his fame and popularity as a writer and material for academic research, this article has been forgotten and has remained unknown. Majority of Korean scholars concentrate on Lee's novel and essays while comparatively neglecting Lee's interest towards Irish drama. The main areas of discussions are the followings. First, socio-cultural significance of Irish impact on Korean theatre will be discussed. Second, in the context of Irish influence on Korean drama, the main feature of Lee's viewpoint towards Synge will be examined in comparison with other politically oriented Korean essays.
        5,500원
        120.
        200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이규보의 불교관련시를 통하여 유자로서의 입지에 충실했던 이규보가 무신집권의 시대와 불교문화의 시대에 관료지식인으로서 정치 사회적 현실과 갈등하고 적응하면서 형성된 불교인식은 무엇이며, 그것이 그의 시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이규보의 불교관련시는 불교적 서정의 형상화에 있어서나 공사상으로 대표되는 불교적 사유를 시화하는 데 있어 상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의 詠物詩에 보이는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의 경향이 볼교관련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불교인식은 주로 젊어서의 법화경과 노년의 능염경을 비롯한 경전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규보는 空恩想을 비롯한 불교적 사유를 시화하는 데 있어서도 탁윌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파악 된다. 山夕詠井中月에서 보이는 것처럼 달[月]과 달빛이라는 평범한 불교적 소재를 시화하는데 있어 그 상투성을 벗어나 작품 안에 불교적 사유를 시로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 주었다.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실상과 허상과의 관계에 주목하여 불교의 기본 교리인 空思想을 생경하지 않게 문학적으로 시화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단순한 이해의 정도를 넘어서 있음을 시사하는 예라 할 것이다. 본고는 이규보의 불교관련시가 그의 불교 교리 이해에 상응할만한 불교 인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佛敎詩로서 요구되는 종교성이 결여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가 노년에 보여 준 불교에 대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불교라는 주제는 그의 시에 있어 주된 흐름이라 할 수 없고, 그것은 儒者로서의 입장이 불교에 대한 종교적 신앙으로 대체될 수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고를 통하여 기대되는 것은 이규보의 불교 인식과 불교시에 보이는 국면들이 이규보의 개인적인 성향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불교에 대한 일반적 정서 또는 불교 문학적 성취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이 점이 밝혀진다면 본고의 논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 이규보의 佛敎關聯詩를 통한 불교시 일반의 특질을 구명한다고 하는 문제에 한 결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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