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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changes in Pyongyang-bu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and Pyeong-an Gamyeong through gazetteer, pictiroal maps and various literature. The results are as follows. To begin with, unlike other gamyeong, Pyongyang-bu had an exclusive government office facility from the beginning and had a different status because of the route for envoys from Ming. Therefore historical sites related to Gija were important. Second, the importance of Pyongyang city-wall increased even more through the Japanese Hideyoshi invasions in 1592 and the Manchu Invasion in 1636. However, since the post-war restoration was insufficient they focused on defense reducing the size of Pyongyang city wall. Third, as society stabilized, Pyongyangbu's finances were greatly secured. King Sukjong systematically reorganized Pyongyang city wall and facility of Pyongy-an gamyeong. The nothern wall in located high place, Gamyeong and storage in middle height and military force and guesthouse in the center of Pyongyang-bu. I-a and warehouse facilities in the far south were placed around the Daedonggwan. The urban structure that runs from Daedonggwan to Daedongmun was the same as other city. Another pertinent point is Pyeong-an gamyeong had more military facilities and rear garden and pavilion than before. In clunclusion, Pyeong-an gamyeong did not pass through three gates, but only through two gates. And it was characterized by more various space and having more pavilions than other gam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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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8.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During the 1950s, the North Koreans rebuilt their capital—Pyongyang—as a modern city under the principle of Soviet urban design. One North Korean architect, Kim Jung-hee, has been widely credited since the late 1980s as the master architect of the General Plan of the city’s reconstruction. While Kim Jung-hee played a crucial role in its reconstruction, his heroic image as the founding architect of Pyongyang is considerably attributed to North Korea’s mythical narratives rather than his historical activities. This paper argues that Pyongyang’s postwar urban design was not a work made by a single actor, Kim Jung-hee; rather, it was a long-term collaborative project in which a team of North Korean architects and Soviet technical advisors took their respective roles. Beginning in the late 1980s, North Korea, which had been struggling with economic decline and an increasing sense of lagging behind in its rivalry with its Southern counterpart, used heroic narratives during the 1950s’ postwar reconstruction period as an important propaganda tool for their regime. In this mythical narrative of Pyongyang’s reconstruction, massive economic and technical aid from other communist countries has often disappeared, and the memory of the architects who contributed greatly to the reconstruction but later purged in North Korea have also completely vanished. Kim Jung-hee, meanwhile, remained in this epic as the founding architect who rebuilt the city in faithful accordance with the leadership of Kim Il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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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7.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생활상과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료이다. 특히 5세기 평양지역 고분벽화는 4세기 이래로 지속된 漢系와 낙랑 고분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평양천도 이후에는 고구려 고유의 문화가 반영된 벽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본 논문에서 옥도리 벽화고분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5세기 전 반~중반 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진 집안지역 문화의 수용과 융합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옥도리 벽화고분이 조성된 5세기 고구려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427년에 단행된 평양천도에 주목하였다. 수도 천도로 인해 평양은 이제 고구려의 새로운 정치적․문화 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기존 국내성의 집안 문화가 새로운 수도 평양으로 유입되며 평양에서 汎고구려적인 새로운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5세기의 고분 문화에서도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교류․융합되는 과정을 거쳐 汎고구려의 문화가 성립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구조상 감실이 달린 二室墓의 구조로 평양지역 벽화고분 고유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분의 구조나 생활풍속·사신의 벽화 주제와 구성은 평양과 집안 지역의 고분들과 친연성을 보여 그 제작시기를 5세기 전반∼중반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감이 달린 이실묘의 독특한 구조와 생활풍속·사신·장식문 등 다채로운 벽화 내용과 구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또한 옥도리 벽화고분에 나타나는 집안과 평양지역 고분문화의 특징들은 고구려의 평양지역 지배 및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에서 이루어졌을 문화적 교류를 보여준다. 그러나 옥도리 벽화고분은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공존할 뿐 아직 서로 융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양상으로 두 지역 의 문화교류 초기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옥도리 벽화고분을 통해 5세기 전반~중 반에 이루어졌을 두 지역 간의 교류를 통한 고분문화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옥도리 벽화고분은 5세기 후반 고구려 고분벽화와 汎고구려 문화의 탄생을 이해하는데 중요 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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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5.0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논어』는 유가 경전 문헌 중 하나이며, 현재의 『논어』는 전래되어 온 것과 출토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문은 평양 정백동 364호 고분에서 출토된 거의 완전한 형태인 39조각의 『논어』를 연구 범위로 하여, 출토된 『논어』와 전래된 『논어』의 경문 상의 차이 현상을 비교하였다. 서로 다른 글자가 쓰여진 현상은 동원통용자나 동음차용자, 쓰기 중에 일어난 와자(訛字), 이체자,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동의사와 자구의 증감 등 여러 현상을 포함하고 있다. 『정주한묘죽간(定州漢墓竹簡) 논어』와 서로 다른 글자를 비교 한 이후에 이 두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논어』의 수록 자형 상의 차이에 대해 논의하였다. 평양 정백동에서 출토된 죽간 『논어』와 정주 한묘 출토 죽간 『논어』는 시대적으로 비교적 가까우나, 그 글자 상에 있어 완전히 일치하지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아마도 서로 다른 경로로 전래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본문은 출토와 전래된 『논어』에서 서로 다른 글자가 발생하게 되는 여러 원인을 분석하였다. 현재, 동아시아 고등교육 교재 중, 예를 들어 한국의 한문교과서서에서도 『논어』는 중요한 교육 내용이기에 『논어』에 대한 언어문자적 연구는 세계 한자한문교육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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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1.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에서는 중국 북경 옌칭(延慶)으로부터 북한 상원지역에 도입한 1년생 묘목 4배체 아까시나무를 대상으로 식재 입지별로 1년생 묘목의 생장특성을 분석하고, 엽내 3가지 성분의 함량 측정을 통해 향후 식재 후 수확한 엽의 사료첨가제로 이용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1) 상원지역에서 평지에 식재한 4배체 아까시나무는 중국의 옌칭지역 내 4배체 아까시나무에 비해 당년생 맹아지의 길이와 근원경이 50%정도 작게 나타났다. (2) 상원지역의 4개 사면입지에서 4배체 아까시나무의 당년생 맹아지의 길이 생장은 동, 서, 남사면에서 북사면에 비해 23~30% 크게 나타났고, 근원경은 동, 남사면의 4배 아까시나무가 북, 서사면에 비해 14~23% 크게 나타났다. (3) 상원지역에서 4배체 아까시나무의 엽내 조단백질과 조회분 함량은 중국 옌칭지역 내 4배체 아까시나무와 마찬가지로 일반 아까시나무 잎에 비해 40% 이상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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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20.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1980년대부터 전개되었던 미국 제1차 대각성 운동에 대한 수정주의 논쟁을 간단히 정리하고, 특히 김상근, 류대영, 그리고 이만형의 수정주의 입장에 대한 종합적 이해, 그들의 연구의 문제점, 그리고 본 논문의 결과들이 주는 시사점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의 2장은 선택된 학자들을 중심으로 미국 1차 대각성 운동에 대한 수정주의 입장과 그에 대한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정리하고자 한다. 3장에서는 김상 근, 류대영, 그리고 이만형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미국 제1차 대 각성 수정주의 입장이 그들의 연구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러한 연구를 시도하였는지 연구한다. 나아가 그들의 연구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4장에서는 2장과 3장에서 도출된 결과들을 중심으 로 본 논문이 평양대부흥 연구에 주는 시사점을 논하고자 한다. 끝으로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12.
        2019.0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목적: 본 연구는 단회기멘탈코칭 프로그램을 구성해 평양원정경기에 출전하는 여자축구대표팀을 대상으로 적용한 후 단회기멘탈코칭의 도입 가능성을 검토할 목적으로 진행하였다. 방법: 본 연구에는 평양에서 개최된 2017아시 안컵 2차 예선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 코칭스텝, 지원스텝 등 총 34명이 참여하였다. 개방형설 문과 모바일메신저를 활용하여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수집한 자료는 귀납적범주화, 감독과 연구자가 참여한 전문 가회의를 통해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프로그램 개발 배경 탐색, 단회기멘탈코칭 프로그램 구성과 실행, 단회기멘 탈코칭 프로그램 평가 순으로 진행하였다. 결과: 평양원정 준비 단회기멘탈코칭 프로그램은 공유 가치 도출을 위한 강의와 심리적균형유지 활동으로 구성하였다. 공유 가치 도출을 위한 강의에서는 대표팀 운영 흐름, 평양원정 의 맥락, 감독의 요구 등을 반영해 “이제 때가 왔어”를 팀의 가치로 도출하였다. 이어 균형유지 활동에서는 평양 원정을 준비하는 선수 생각의 적정성을 경기력 도움 여부와 통제 가능성에 따라 판단하였다. 평양원정을 준비하 는 선수의 생각은 정세, 경기장 환경, 궁금증, 대회준비, 여자축구 미래로 범주화하였다. 선수들은 범주화 결과에 경기력 도움과 통제 가능성을 기준으로 정세, 경기장 환경, 궁금증은 불필요한 관심으로 버리고, 대회준비와 여자 축구 발전 영역은 필요한 관심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단회기멘탈코칭은 선수와 코칭스텝의 평 양원정은 물론 1년 후 아시안컵 본선까지 중기적으로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결론: 단회기멘탈코칭의 영향을 감안하면 12주로 수렴되는 심리지원 기간을 목표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가 심리지원 기간의 다양성에 대한 관심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13.
        2005.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조선시대의 기생의 기원과 제도, 기생의 역할, 평양기생학교를 통한 기생의 원래의 의미인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아티스트(Artist)임을 재조명하고, 기생학교의 제도와 규칙, 교육과정, 수업시간표, 졸업 앨범, 각종 사진첩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기생의 역할과 평양기생학교 등의 재조명 및 분석을 통하여 전통적인 문화를 디지털콘텐츠의 창작소재로 발굴하므로 이를 디지털콘텐츠인 게임콘텐츠, 디지털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화 할 수 있도록 소재화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특히, 조선의 기생의 아름다움과 아트적인 재능, 사회제도 및 기생학교 등을 발굴하여 원화기획(컨셉 디자인) 및 디지털시나리오 화하므로 경제성이 강한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며, 평양기생학교의 교육시스템, 교육내용, 학생 현황 등을 발굴하여 육성 및 경영시뮬레이션 게임의 제작 컨셉 도출 및 게임제작, 애니메이션 및 TV드라마, 디지털 애니메이션 및 영화 제작의 문화콘텐츠의 창작소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