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9

        1.
        2021.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후지이 겐지의 평화선과 어업문제에 대한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평화선이 독도 어장 보호, 영유권 강화를 위한 제도가 아니고 이것이 독도해역에서의 어업분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시마네현의 기선저예망어업이 효율이 좋기 때문에 연안어업 분쟁을 일으켜서 어업 규제를 강화하고 어장을 동중국해, 황해 해역으로 유도해서 더이상 시마네현 기선저예 망어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일본 어업 정책에 의해 시마네현 어민의 피해가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마네현에서도 동중국해, 황해 어업 지역에 이주하여 어업을 했지만 이 지역에서의 나포 어선 피해가 커지면서 평화선에 의한 피해 의식이 계승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960년대 말부터 독도주변해역은 일본의 오징어잡이 어선의 어장이 되고 1970년대가 되 면 한국도 동해 해역 어업을 본격적으로 참가하면서 독도문제를 둘러싼 한일 대립은 독도문제와 어업문제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도 주변해역은 일본과 한국양국에서 나라 전체 어획량으로 따져보자면 양국이 함께 논의해야할 정도로 중요한 어장은 아니라고 보고 있으며 1978년 5월 이후 한국이 독도 12해리 이내의 일본 어선의 조업을 단속하고 일본 어선이 자체 철수하고, 중유의 급등과 어업 자원 상황의 악화, 출어해도 채산이 맞지 않는 경우 등의 이유로 독도 주변 해역으로 출어하는 사람들이 대폭으로 줄어 전무한 실정이라 분석하고 있다. 또한 후지이 논문에서 동해지역 오징어잡이어업어획량에서의 독도 주변 비율을 보면 1970년대 일본의 어획량 수치는 한국의 어획량보다 2배 많았기 때문에 시마네현과 일본 어민의 피해보다 한국 어민의 피해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독도는 1946년 SCAPIN 677호에 의해 일본 영토에서 제외되었고 강화조약이 발효된 1952년에는 한국정부가 이미 독도를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 통치권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며 강화조약에는 독도에 대한 아무런 규정도 없고 한국은 강화조약에서의 비조인국이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평화선은 트루먼선언(1945), 중남미국가들(칠레와 페루(1947), 산티아고 선언(1952.8))을 바탕으로 200해리 영해 또는 어업수역을 한국해역에 도입하였고 이런 배타적 어업수역은 1970년대 이후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일반화되었고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에도 수용되었다. 평화선은 맥아더라인을 승계하면서 국제적 선례들을 참고하여 한국 주권수역을 대외적으 로 선포한 것으로 국제법상 법적 타당성 및 실효성을 갖는 국제법 규범으로 보야 한다.
        2.
        2021.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의 과제는 일본 시마네현 ‘죽도문제연구회’의 『제4기 최종보고서』에서 제시된 「죽도 문제에 관한 학습」 추진 검토부회의 활동을 개관하고 각급학교의 ‘학습지도안’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죽도문제연구회’에서는 이미 2005년 「죽도(독도)학습」 부회의 활동이 2009년부터 「죽도에 관한 학습」으로 이어졌으며, ‘제4기 죽도문제연구회’에서는 「죽도문제 에 관한 학습」으로 확장되어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의 동향을 반영하여 체계화하고 있다. 본고에서 검토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죽도문제연구회’의 활동에서 역사적 연구가 차츰 근현대 이후의 연구로 변화되고 있으며, 독도교육=「죽도문제에 관한 학습」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점차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제2기 최종보고서』의 독도교육=「죽도에 관한 학습」은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됨에 따라 「죽도문제에 관한 학습」으로 확장하였고, 검토부회가 조직되어 각급 학교급별 ‘학습지도안’을 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죽도문제에 관한 학습」 추진 검토부회의 ‘학습지도안’은 문부성의 개정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를 토대로 ①‘기능·지식’, ②‘사고 력·판단력·표현력’, ③‘주체적으로 학습에 임하는 태도’의 3가지 단계별 지도를 염두에 두고 그 내용에 체계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죽도문제에 관한 학습」 추진 검토부회 의 ‘학습지도안’은 교육부의 독도교육 방향 설정은 물론 관련지자체인 경상북도교육청, 대구 광역시교육청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할 독도교육에 대해 많은 시사점과 방향성을 던져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독도교육 내용의 학교급별 체계적 구성뿐만 아니라 주입식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교과내용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3.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의 독도정책은 정치 행위로서 항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제도화 된 법규 혹은 규범보다 정치적 가치에 따라 단순한 반대를 표하는 것으로 권리보전을 위한 소극적인 행위 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이다. 일본 정부는 시마네현의 독도 관련 정책 시책들을 ‘고유영토 주장’과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시마네현의 독도 관련 시책들은 사료와 자료를 찾아내는 것을 넘어서 영유권 주장을 위한 공세적 논리로 ‘다케시마의 날’ 행사의 정치화,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관제화, 독도 영토교육의 확산화 등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이러한 특징들은 정부 주도의 해양정책에 예속된 독도정책, 우경화된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구성원, 노골적으로 편향된 독도교육의 강화 등과 같은 딜레마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시마네현의 독도 관련 시책들은 일방적 선언에 적용되는 지도원칙으로 항의한 영토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현존하는 상황이 고착화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항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4.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해결하자고 과거 3번에 걸쳐 공동제소를 제의한 바 있었는데, 한국이 모두 거절했다. 본 연구는 공동제소를 제의한 일본의 의도를 분석하게 위해 2005부터 2018년까지 일본국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시기별 나누어 조사하여 검토하였다. 2005년 2월 시마네현(島根県)이 ‘죽도(竹島)의 날’을 제정하였고, 한국정부가 이에 항의를 하였을 때, 야당위원이 일본정부에 대해 죽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과거 2,3차례 공동제소를 한국에 제안하였으나 거부했다. 그래서 가장 적절한 방법이 어떠한 것이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처럼 일본정부는 형식적 답변만을 반복하여 현실적으로 제3자의 조정에 의한 해결이 불가능함을 표명했다. 2011년 한국정부가 헬기장 개수공사와 해양과학기지 건설을 계획했다. 일본국회에서 야당위원이 다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독도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정부의 입장은 이전과 동일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야당위원은 공동제소가 불가능하면 단독제소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일본정부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고 있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일본정부가 야당위원의 주장에 대해 이 같은 동일한 답변을 계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전 정권들이 한일협정 등에서 외교적으로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묵인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정부주도의 ‘죽도의 날’을 제정한다든가,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제소’를 할 만큼 일본에 영토적 권원이 존재하는 분쟁지역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5.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한일관계에서 영토교육이 어떠한 현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논쟁의 초점은 한국과 일본의 영토교육 현황을 검토하고, 특히 경상북도와 시마네 현의 독도교육 사례를 비교 분석하여 그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경상북도의 독도교육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이며, 의식고취에 중점을 두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진행되고 있는 반면, 시네마현의 독도교육은 공격적이고 치밀하며,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중-장기 적인 영토 반환전략 등을 통해 자국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영유권 문제와 연관된 독도교육을 자국 중심의 관점에서 실시하다 보면, 양국 국민의 인식 차이는 더욱 벌어져 그 격차를 좁혀 나가기 매우 힘들 것이다. 이는 동북아시아 국가 간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주권을 강조하는 현재의 국가 체제가 수평적이고 다층적인 지역공동체 교육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자국 중심의 독도교육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에 빠지게 한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올바른 역사적 인식과 지역공동체적 시민의식이 갖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한 영토교육의 이론화 작업을 통해 독도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독도문제에서 배타적 민족주의 접근 방식을 채택했던 기존의 영토교육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동북아지역 차원의 지역공동체적 시민주의 관점에서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독도교육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6.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 외무성과 시마네현 다케시마 문제연구회는 1905년 각의결정과 이에 따른 후속 하위행정법령으로서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등은 일본이 근대법제의 방식으로 다케시마 영토획득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1905년 각의결정 등은 국제법을 위반한 조치였다. 우선 1904년 량코섬 영토편입 및 대하원은 명확하게 독도가 일본보다는 대한제국으로부터 가깝다는 서술을 하고 있고, 1905년 각의결정 또한 독도를 타국이 점령했다고 할 만한 형적이 없다고 하여 일본정부는 타국으로서 대한제국이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대한제국에 확인하지 않은 것은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의적으로 무주지로 판단한 것이며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둘째,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공포되어 관보에 게재된 이후 일본이 1905년 각의결정을 하기까지 기간은 대한제국이 행정편제를 통해 명확화한 영토에 대해 실효적인 지배를 확립하기 위한 ‘합리적으로 충분한 기간’이 경과했다고 볼 수 없다. 결국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를 통해 타국이 독도를 선점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충분한 기간 동안 잠정적으로 금지하는 불완전 권원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일본은 이를 침해한 것이다. 셋째, 1904년 량코 섬 영토편입 및 대하원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 오키 열도에서 대한제국의 본토인 강원도와 함경도로 왕복하기 위한 항로에서 대한제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독도가 일본이 아닌 대한제국의 판도에 속해 있으며 울릉도와 독도가 하나의 영향권 내에 있다는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넷째, 1905년 각의결정은 1904년 량코섬 영토편입 및 대하원의 독도가 대한제국의 울릉도에서 더 가깝다는 서술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이는 독도가 일본의 오키 섬으로부터의 거리보다 대한제국의 영토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이는 근대 이전 영토획득의 근거로 인정되었던 지리적 근접성의 원칙을 의식하여 이 원칙이 독도에 적용되지 않도록 의도한 것이다. 다섯째, 1905년 각의결정과 1904년 량코 섬 영토편입 및 대하원은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려는 것이 대한제국에 공식적으로 알려지는 경우 대한제국의 이의제기로 인해 실패할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정부는 대한제국에 알려질 가능성이 있는 일본의 근대법제로서 황제의 칙령이 아닌 하위의 각의결정의 형식으로 독도를 편입하여 관보게재 부담을 회피한 것이다. 그리고 시마네 현의 고시를 통해 독도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조치를 할 수 있는 국내법적 근거만을 마련한 것이다.
        7.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島根縣統計書》는 일본 내무성의 주관 아래 시마네현이 현의 전반적인 실태를 조사·작성한 통계서이다. 《島根縣統計書》는 《島根縣一覽槪表》·《島根縣統計表》를 거쳐 1884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해마다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島根縣이 현의 관할지를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밝힌 ‘지세’·‘관할지’·‘지리’ 혹은 ‘토지’ 등의 항목과 〈島根縣全圖〉가 들어 있다. 따라서 본고는 1905년 2월 이전까지 《島根縣統計書》에 독도가 현의 관할지에서 제외된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현재 일본 정부의 독도 고유영토론에 대한 허구성을 밝혀보았다. 《島根縣統計書》의 관할지 연혁에서 일본의 독도 편입 사실은 《島根縣統計書(1919)》에서 처음으로 1905년 2월 22일 竹島를 추가한다고 적혀 있다. 지세에서는 《島根縣統計書(1920)》에 竹島의 지세와 강치의 번식 상황이 처음 등장하였다. 도서에서는 《島根縣統計書(1907)》에 독도가 처음 기재되었다. 《島根縣統計書》에서 시마네현의 관할 지역이 확실하게 명기된 부분은 바로 지리 혹은 토지 항목의 본현의 위치이다. 시마네현의 극남북 위도는 《島根縣一覧概表(1877)》에서 34도 30분~36도 35분으로 적혀 있으며, 《島根縣統計書(1905)》에서는 34도 20분~36도 21분에 극북의 지명이 ‘周吉郡 中村 白島前 沖ノ島’로 명기되었다. 島根縣의 극북이 ‘隱岐國 竹島 북위 37도 10분’으로 비로소 기록된 것은 《島根縣統計書(1906)》이다. 《島根縣統計書》에는 관할지와 경계가 표시된 〈島根縣管內略圖〉와 〈島根縣全圖〉가 실려 있다. 오키국이 처음 기재된 《島根縣一覽槪表(1877)》의 〈島根縣管內略圖〉에 독도는 포함되지 않았다. 〈竹島〉는 《島根縣統計書(1904)》의 〈島根縣全圖〉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이는 ‘범례’가 쓰인 1906년 9월이나 통계서가 발행된 그해 12월 전후의 상황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竹島〉는 〈島根縣全圖〉보다 10배나 크게 그려졌는데, 1905년 2월의 편입 상황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려 했던 듯하다. 이 통계서의 극북에 독도가 기재되지 않았음에도 〈島根縣全圖〉에 〈竹島〉가 추가된 것은 ‘竹島’ 편입 사실과도 맞지 않은 명백한 오류이자 왜곡이다. 이처럼 《島根縣統計書》는 시마네현이 태정관지령에 입각해 독도를 현의 관할지에서 제외했음을 입증해주는 자료이다. 더욱이 시마네현은 《島根縣統計書》를 태정관·내각을 비롯해 내무성·육군성·해군성 등 중앙관청에 진달했으며, 내무성은 이를 각 관련기관에 교부하였다. 이들 중앙관청은 《島根縣統計書》 등의 부현통계서를 근거로 《內務省統計書》와 전국총괄통계서인 《日本帝國統計年鑑》 등을 발행하였다. 그 결과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널리 인지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8.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2014년 1월 28일 일본 중·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가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을 기술하도록 개정된 이후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모든 초·중·고 사회과 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내용이 기술되었다. 교과서보다 앞서 독도교육을 주도한 것은 시마네 현이다. 시마네현 竹島문제연구회 제3기 최종보고서에는 고등학교 일본사A/B 학습지도안 (이하, 학습지도안)이 제시되어 있다. 제2기 竹島문제연구회 활동 기간에는 지리A/B, 공민 (정치경제, 현대사회), 세계사A/B 학습지도안이 작성되었는데, 이번 학습지도안은 竹島문 제연구회 차원에서의 고등학교 독도교육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본고의 목적은 첫째, 시마네현 竹島문제연구회 제3기 최종보고서를 소재로 일본 초·중· 고 교과서의 독도기술과 시마네현 독도교육 자료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 시마네현이 실시하고 있는 독도교육 실태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향후 일본 학교현장에서의 독도교육 방향을 전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시마네현에서 작성한 일본사 학습지도안과 교과서 기술의 공통점은 첫째, 일본이 국제법에 근거하여 독도를 편입한 사실을 가르친다는 학습 목표와 논리, 근거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둘째, 독도 편입 경위를 러일전쟁과의 관련성이 아니라 강치 잡이와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고, 편입 후 시마네현이 독도에 대해 행정력을 행사하고 어업활동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마네현에서는 ‘독도는 일본 침략에 의해 최초로 희생된 땅’이라는 한국 주장에 대한 반론을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시마네현에서는 교원연수, 고등학교 입학 선발 시험 문제 출제, ‘竹島의 날 주간’ 계기수업, 교과 시간 등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竹島학습 이 추진되고 있다. 시마네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독도학습과 교육 자료는 다른 지역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 행사는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와 법령에 근거를 둔 것으로 일본 교과서 기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교과서 기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청소년들의 국제이해에 교과서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일본 교과서 독도기술과 시마네현 독도학 습은 한일 간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는 현실과 역행하는 것으로 한일관계는 물론 동아시아 공생과 번영의 걸림돌이 된다. 따라서 대응방안도 이러한 차원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의 청소년들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독도 영유권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해소하도록 해야 한다.
        9.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에서는 메이지시기 울릉도·독도에 대한 일본 측의 인식 변화를 고려하면서 1905 년 초에 일본 정부가 시행한 독도 편입 조치의 의미를 검토했다. 각의 결정 당시 일본 중앙정부는 독도를 더 이상 ‘마츠시마’나 ‘다케시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나카이 요자부로가 제출한 ‘량코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에서 사용했던 ‘량코도’나 전통적 명칭인 ‘마츠시마’ 또는 새로 취득한 무주지에 적당한 제3의 명칭이 아니 라, 굳이 역사적으로 많은 혼동을 불러일으켰던 ‘다케시마’라는 명칭을 붙였다. 독도에 대해 ‘다케시마(竹島)’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일본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를 연결시켜 인식해온 역사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시기에 감행한 도서(島嶼) 편입의 절차를 독도에 그대로 적용했다. 새로 섬을 편입한 후 소관 지방관청이 고시를 하는 것도 그 절차의 일부였다. 지방관청의 고시는 중앙정부(각의결정)→지방관청(고시)→민간(대여)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흐름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 즉 고시는 대외적인 조치가 아니라 전적으로 국내용 조치였던 것이며, ‘시마 네 현 고시 제40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싸고 2백년 이상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에 대해 아무런 통고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편입 조치의 일방성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