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tress Construction Technology for Jujang Seong and Namhan Sanseong
주장성은 5세기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하는 신라 석축산성의 가장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문무왕12년(672) 신라는 해발 500m가 넘는 남한산에 대규모 산성을 쌓고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당시 신라는 이미 둘레 8km가 넘는산성을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쌓을 수 있는 조직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성돌도 주변에 있는 편마암 석재가 아니라 최소한 11km 이상 떨어진 원거리에서 운반해온 화강암 성돌을 하나 하나 옥수수알 모양으로 치밀하게 가공하여 쌓았다. 보축(保築)으로 성벽을 보강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懸門式) 성문을 만들었으며, 성벽 위에는 돌로 쌓은 평여장(平女墻)을 쌓았다. 당나라와의 장기전에 대비하여 성 내에는 대형 창고를 지어 많은 군량미와 병장기를 비축하였다. 길이 53m가 넘는 대형 건물에는 기와 한장의 무게가 20kg에 달하는 특대형 기와를 사용하였다. 기와 무게로 인한 엄청난 지붕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돌과 흙을 교대로 판축하여 견고하게 대지를 조성하고 벽체는 두께 2m가 넘도록 하여 기둥이 받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등 이 대형건물은 당대 최고 수준의 건축기술로 구축되었음이 밝혀졌다. 인조2년(1624) 조선은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남한산성을 수축하였다. 주장성의 옛터를 따라서 성을 쌓고, 주장성 성돌을 재활용하기도 하였지만 현문식 성문을 평문식(平文式)으로 바꾸고, 12개의 암문(暗門)을 새로 만드는 등 남한산성에는 조선중기의 새로운 축성기술이 반영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화포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옹성과 포루가 새롭게 구축되었으며 한봉성과 봉암성, 신남성 등의 외성(外城)이 보강되었다. 성돌의 크기도 커지고 돌로 쌓았던 여장도 벽돌과 석회(石灰)로 다시 쌓아 포탄을 맞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여장을 만들었다. 이처럼 남한산성은 고대의 축성기술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각 시기 축성기술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축성기술사의 교과서와 같은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Jujang Seong is the most advanced stone fortress of Silla Kingdom. Since the late 5th century, Silla constructed stone fortresses in earnest. In the 12th year of King Munmu (672 A.D.,) Silla erected a huge fortress on Mt. Namhan with an elevation of 500 meters above sea level to prepare for the expected Tang invasion. Silla was already capable of mobilizing technology and manpower to build a mountain fortress with a circumference of 8 kilometers in less than a year. When it comes to stones used for its construction, granite instead of gneiss available in the vicinity was transported from a stone pit as near as 11 kilometers away and processed into maize kernel shape. The rampart was fortified with additions. The gate was Hyeonmun (凹- shaped suspended gate) and stone battlements were built on the wall. Preparing for a prolonged war with Tang, Silla built a huge warehouse to store up food supplies and weapons. For this more than 53-meter-lengthtall structure, large roof tiles weighing up to 20 kilograms per piece were used. Also, stones and earth were piled up as its foundation to cope with the weight of the roof and the wall was more than 2-meter-thick to disperse its weight. It turned out that Jujang Seong was built using state-of-the-art construction technology in that period. In the 2nd year of King Injo of Joseon Dynasty, the fortress was reborn as Namhan Sanseong to prepare for a war against Qing China. Apart from constructing a fortress on the site of the defunct Jujang Seong and reusing the fortress stones at the site, Joseon built Pyeongmun (a gate passable by foot) and added 12 secret passages, reflecting the construction technology developed in the mid-Joseon period. After the Second Manchu Invasion of Joseon, the outer wall and crenelated wall of the fortress were additionally built to defend from shelling and the outer fortifications, such as Hanbong Seong, Bongam Seong and Sinnam Seong, were reinforced. At the same time, Joseon used bigger stones for its repair and reinforced the battlements with bricks and lime to better put up with artillery attacks. In this regard, Namhan Sanseong holds a special significance to understand the technological developments in ancient times as well as the period of Joseo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