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漂海錄과 乘槎錄에 나타난 山東 인식의 비교 KCI 등재

A Comparison of the perception of 山東 as represented in 漂海錄and 乘槎錄

표해록과 승사록에 나타난 산동 인식의 비교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286975
  • DOIhttps://doi.org/10.14381/NMH.2014.12.30.4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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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본고에서는 崔溥의 .漂海錄.과 崔斗燦의 .乘.錄.에 나타나는 두 저자의 산동 인식을 각각의 시대 별로 살펴보았다. 중국 당나라와 원나라는 국제화 정책을 시행하여 많은 유학생을 수 용했다, 그러나 명나라 건국 이후에는 쇄국정책을 실시하여 유학생 수 용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중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가 줄었고, 대체로 책을 통해서 중국을 체험하게 되었다. 명.청 시기,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파견한 사신들은 중국에 관한 기록을 남겼으나, 사신의 신분으로는 북경 이남 지역의 경험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북경 이외의 지역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비공식적인 漂流人 의 경우 북경 이남 지역을 경험하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崔溥와 崔斗燦의 저작이 가장 대표적이다. 崔溥와 崔斗燦은 표류인의 자격으로 북경 이외의 지역을 경험했으며 이러한 경험이 담겨 있는 .漂海錄.과 .乘.錄.은 연구 자료로서 중요성을 띤다. 성종 연간에 관인 崔溥 일행은 제주도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표류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순조 연간, 장인인 제주 대정현감 金仁澤의 요청으로 제주도로 떠난 崔斗燦은 1년 후 귀향길에서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 게 되었다. 성종 17년(1486) 중국에 표류한 崔溥를 이어, 崔斗燦은 300여년 후인 순조 18년(1818) 중국에 표류했다. 두 시기 모두 조선 왕조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중국은 왕조가 바뀐 완전히 다른 시대였다.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다른 시대 배경 아래서 겪는 체험과 감상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두 시대의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의 차이 등 다양 한 면에서 동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으로 崔溥는 조선 시대의 관인 으로서 어명을 받아 .漂海錄.을 작성한 것에 반해, 崔斗燦은 자신의 취미대로 .乘.錄.을 기록했다. 이러한 점 역시 두 텍스트의 차이를 야기했다. 崔溥는 매우 상세하고도 다양한 범위의 내용을 기록했으나, 집필의 의무가 없었던 崔斗燦의 텍스트에는 감정의 표출의 기록과 詩歌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This study analyzed two authors’ experience in Shandong, represented by their works漂海錄 by 崔溥 and乘槎錄by 崔斗燦, according to the era they lived in. The Tang and Yuan dynasties of China had open international policies and accepted many students studying abroad from foreign regions. The establishment of Ming dynasty and adoption of isolationist policy, however, led to abolishment of foreign students. Thus, scholars of Chosun had few opportunities to have experience in China, and resorted to learning about the country through books. In Ming/Qin dynasties, official ambassadors sent from Chosun left records of China, but their access as ambassadors prohibited travel south of Beijing. Therefore, records describing regions outside Beijing are sparse. Yet, unofficial 漂流人 were able to access regions south of Beijing and make records, the most representative of which are works by 崔溥 and 崔斗燦. These authors were able to experience regions outside Beijing as drifters, and 漂海錄and 乘槎錄, which depict their experiences, have significance as important primary sources for research. 崔溥, an official from Seong-Jong’s rule, encountered a typhoon in the seas near Jeju and became a drifter. 崔斗燦, who left for Jeju by the request of his father in law 金仁澤 –a governor of DaeJung in Jeju, also encountered a big typhoon on his return journey and became a drifter. 崔溥 grounded on Chinese shore in 1486, 17th yearofSeong-Jong’srule,and崔斗燦 grounded 300 years later on 1818, 18th year of Sun-Jo’s rule. While Chosun dynasty had endured through both periods, China had experienced a transition into a completely different dynasty. Thus the experience of living in a different era and rule, even though the physical geography remained the same, had to be changed significantly. With the works, many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can be found between the two eras in a range of topics such as national economy and civilian living standards. While崔溥, as an official from Chosun, received royal command to record his experience in 漂海錄, 崔斗燦 recorded 乘槎錄 at his own leisure. This contextual difference of the two records contributed to differences in their content: 漂海錄covers a wide range of topics in meticulous detail, but 乘槎錄, in which the author had no obligations, often contains records of emotional expressions and 詩歌.

저자
  • 손지수(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 | Sun Ji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