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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冥集󰡕 諸板本의 刊行年代 KCI 등재

The Published Years of Nammyong-jip Editions

󰡔남명집󰡕 제판본의 간행연대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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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본고는 이상필 교수가 200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명집󰡕의 초기 간본들과 관련하여 김윤수 씨의 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필자를 비판한 데 대 한 응답이다. 이 교수는 문경호의 기유본 발문 중에서 “순찰사 유영순 또한 공 역을 도왔다.”는 한 구절을 鐵案으로 삼아, 이 구절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필자 를 비난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논거인 까닭에 필자는 남명학파의 초 기 역사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에서도 경상감사가 서원의 일에 관여했다는 기록 은 모두 󰡔道先生案󰡕과 어긋남을 증거로서 제시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지적 이 이 교수의 주장에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가 「덕천서원중건기」의 기록 을 왜곡하고 「신산서원기」 중 해당 부분의 贗作說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무리 를 범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남명집󰡕의 초간본이 임인년에 간행되었음은 기유본 발문에 명기되어져 있 으며, 󰡔고대일록󰡕 속에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 임인 전해인 신축년 (1601) 조에 ‘留寺看役’ 등 해인사에서의 간행 작업에 관한 기록들이 보이는 점 이 그것이다. ‘看役’ 또는 이와 유사한 표현은 이후의 󰡔고대일록󰡕에도 많이 보이 고 있는데, 그것들에서도 이 용어는 타인이 하는 작업을 감독한다는 의미로 쓰이 고 있으며, 정경운은 벗들이 모두 귀가한 후에 혼자 해인사에 남아 이러한 일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판각이 아닌 편집 작업의 의미로는 해석될 수 없다. 필자의 󰡔남명집󰡕 판본 연구도 이제 완결 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차제에 전체 판본 계통과 판본명에 대한 그 동안의 성과를 정리해 두었다.

This is a reply to Prof. Sang Pil Lee who criticized me in his essay published in 2008 standing by Mr. Yoon Soo Kim concerning the early editions of Nammyong-jip. Prof. Lee takes it as an unrefutable sentence that "Governor Young Soon Yoo also helped the works for publication" in the postscript of the Giyoo edition and denounces me, who doubt it's fidelity. As it is the only ground for their argument, I have shown proofs that, in every material related to the early history of the Nammyong school, the records that governors had taken part in the seowon affairs conflicted with Doseonseng-an which they rely upon. If it were not fatal to Prof. Lee's argument, there should have been no need for him to distort the account of "Dukchonseowon Joonggeon-gi" and to assert the forgery of the related parts of "Shinsanseowon-gi". The fact that the first edition of Nammyong-jip was published in 1602 is spelled out in the postscript of the Giyoo edition and there are also undeniable proofs in Godae-ilrok. There are some records regarding the publication work at Haein-sa temple in 1601, including the phrase "I stayed in the temple and looked after the work." 'Looked after the work' or the similar expressions frequently appear in Godae-ilrok and they are used as meaning that he supervised the works of other people. Gyeong Oon Jeong, the author of the diary, stayed alone in the temple to do this work after his friends returned to their home, so it cannot be interpreted as meaning that he was not working for woodcutting but for editing Nammyong-jip. As my study on Nammyong-jip editions is almost completed, I have also taken this opportunity to summarize the result on the total system and names of the editions.

목차
Ⅰ. 머리말
Ⅱ. 초간본과 재간본
Ⅲ. 󰡔孤臺日錄󰡕의 증거
Ⅳ. 판본의 계통과 板本名
1. 판본 계통
2. 판본명
Ⅴ. 맺음말
저자
  • 吳二煥(경상대 철학과 교수, 남명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오이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