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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比較尊攘思想研究 KCI 등재

A comparative study of Korean and Japanese Zong‐yong(尊攘) thought

일한비교존양사상연구

  • 언어JPN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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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19세기 중엽, 특히 아편전쟁 이후 排外主義運動이 아시아를 석권했다. 한국 과 일본의 배외주의자는 종종 비슷한 구호를 외쳤는데 ‘尊華攘夷’와 ‘尊王攘夷’ 가 그것이다. 이들은 그러한 슬로건을 ‘尊攘’이라고 약칭했다. ‘존양’사상은 배 외주의뿐만 아니라 전근대적이기는 하지만 민족주의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의 后山 許愈(1833-1904)와 일본의 吉田松陰 (1830-1859)에 있어서의 尊攘 사상에 대한 비교연구이다. 허유는 그의 스승인 寒洲 李震相에 의해 수립된 寒洲學派의 구한말의 저명한 학자이다. 당시 한국은 서양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직면해 있던 때였으 므로 그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많은 유학자가 義兵 을 일으켰지만 그는 그와는 다른 한편에서 제자 양성, 󰡔南冥集󰡕․󰡔理學綜要󰡕의 校正, 그리고 스승 이진상의 選集인 󰡔寒洲集󰡕 출간에 자신의 모든 정력을 바쳤 다. 이것은 그가 ‘隱者의 나라’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모 든 학술활동은 이러한 전면적 위기에 대항하는 ‘鬪爭’이었던 것이다. 그는 主理 說을 주장하였지만, 그것은 그가 社稷과 人倫을 회복하는 수단으로는 오직 朱․ 李(朱子와 李退溪)의 학통을 밝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尊王家인 吉田松陰은 形而上學的인 ‘理’를 결코 주장하 지 않았다. 차라리 그는 강경한 主氣派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의 이 론과 실천은 現象世界 - 곧 일본이 ‘국제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 한다 - 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는 현실 세계에 있어서 일본의 고유성을 모색해 나아갔던 것이다. 허유와 吉田松陰은 동시에 尊攘을 주장하였지만 그들이 근거하는 바는 곧 主 理와 主氣로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과 일본의 유학에 있어서 차이점을 반영하고 있다.

19世紀中葉、とりわけアヘン戦争以降、排外主義運動がアジアを席巻した。 韓国と日本の排外主義者はしばしば似たようなスローガンを叫んだ。すなわ ち、「尊華攘夷」と「尊王攘夷」である。この活動家たちはこれらのスローガ ンを「尊攘」と略称した。「尊攘」思想は、排外主義のみならずナショナリズ ムでもあった(むろん、それは前近代的形態であるが)。本稿の目的は、韓国 (后山 許愈 : 1833‐1904)と日本(吉田松陰) : 1830‐1859)における尊攘思想 の比較研究である。 許愈は、彼の師である李寒洲によって樹立された寒洲学派の著名な韓末の学 者である。当時韓国は、西洋や日本からの帝国主義的侵略に直面していた。ま さに彼は激動の時代に生きてい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時代に、多くの儒学者 が義兵を挙げていた一方で、彼はみずからの全精力を弟子の教戒と、『南冥 集』や『理学綜要』の校正、そして師の選集である『寒洲集』の出版に捧げて いたのである。このことは彼が「隠者の国」に生きていたことを意味するもの ではない。彼のすべての学術活動は、この全面的な危機に抗する「戦い」で あった。彼は主理説を主張したが、それは彼が社稷と人倫を回復する手段に は、ただ朱李(朱子と李退渓)の学統を明らかにすることだけであると考えた からである。 これに反して、日本の尊王家である松陰は形而上的な理を決して主張しな かった。むしろ彼は強硬な主気派と言っても良い。彼の理論と実践は現象世界 ―すなわち日本が「国際社会」の内に存しているという事実―に根拠してい た。彼は、この世界における日本の固有性を模索し続けていたのである。 許愈と松陰とはともに尊攘を説いていたが、それらの根拠するところは相違 していた。すなわち、主理と主気である。この事実は、韓国と日本の儒学にお ける相違を映し出している。

In the middle of the nineteenth century (especially after the Opium War), there was a surging chauvinism movements in East Asia. Korean and Japanese chauvinists often shouted similar slogans; Zongfa‐yangi (尊華攘夷; Revere the China and expel the foreigners) and Zongwang‐yangi (尊王攘夷; Revere the Emperor and expel the foreigners). The activists called these slogans Zong‐yang (尊攘; Revere and Expel) for short. Zong‐yang thought was not only chauvinism but also nationalism (of course, It was a pre‐modern form).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make a comparative study of Zongyang thought in Korea (Confucian Husan, Heo‐Yu (后山 許愈) : 1833‐ 1904) and Japan (Loyalist YOSHIDA Shōin (吉田松陰) : 1830‐1859). Heo‐Yu was a famous the scholar of Hanju school (寒洲学派) established by his Master Li Hanju (李寒洲) in the end of the Chosun dynasty. At that time Korea faced imperialist invasions from the West and Japan. It was in a very turbulent age that he lived. In such an age, many Confucians raised the loyal armies, while he devoted all his energy to educating disciples, to proofreading “the Nammyong‐zip”(󰡔南 冥集󰡕) and “the Lihaku‐zongyo” (󰡔理学綜要󰡕), and to publishing the selected works of his Master (“the Hanju‐zip”; 『寒洲集󰡕). This is not to say that he lived in the Hermit Nation. All his academic activities were battles against the overall crisis. He insisted on chu‐li theory (主 理説), because he thought that in order to revive State (社稷) and Moralities (人倫) the tradition of the learning of Chu‐Li (朱李; Chuhsi朱 子and Li Toege李退渓) had to be only clarified. On the other hand, the Japanese Loyalist Shōin never insisted on metaphysical Li (理). If anything, it is better to say that he strongly adhered to the school of chu‐ki (主気派). His theory and practice were based on the phenomenal world; the fact that Japan exists in international society. He sought after the characteristic property of Japan in this world. Although both Heo‐Yu and Shōin argued for Zong‐yong, their bases were different each other; chu‐li and chu‐ki. This fact mirrors the difference between Korean and Japanese Confucianism.

목차
はじめに
Ⅰ. 儒林の人としての許愈
Ⅱ. 尊華攘夷と許愈
Ⅲ. 尊王攘夷と吉田松陰
おわりに
저자
  • 桐原健真(日本 東北大學) | KIRIHARA Ken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