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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元의 習行哲學을 통해 본 明末淸初의 思想特徵 -근본으로 돌아가 새로운 것을 개척한다 - KCI 등재

An Observation of the ldeological Features through Ahn, Won’s Practice,Philosophy in the Period from Late Myoung to Early Choung - Fronteering through Return to the Root -

안원의 습행철학을 통해 본 명말청초의 사상특징 -근본으로 돌아가 새로운 것을 개척한다 -

  • 언어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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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顔元元은 중국 명말청초의 걸출한 사상가이자 교육가였다. 그는 야심찬 기백으로 2천여 년 동안의 학술 권위에 도전하고, 2천 년 동안 열지 못한 입을 열였고, 2천 년 동안 대지 못한 붓을 대였다. 그는 漢學과 宋明理學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周 公• 孔子의 正學으로 되돌아갈 것을 강렬히 요구하였다. 그는 ‘復古’의 깃발을 내세워 유학의 새로운 형태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그의 사상은 한 마디로 退本開 新으로 특정지을 수 었다. 이런 사상을 근본으로 한 그의 사상척 특정을 좀더 구 체적으로 상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명말청초의 사상적 특징은 천하의 일을 자신의 임무로 하는 유학자들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강하게 전개한 점인데, 안원에게서 그런 의식이 뚜렷이 나타난다. 안원은 “성인의 책을 읽으면 세상을 바꾸는 사람야 되어야지, 세상에 따라 바뀌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여, 적극적인 사회 개혁을 주창하였다. 이처럼 그의 사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세상을 바꾸자는 사회개혁사 상이다. 둘째, 그의 사상에는 깊은 반성과 주체적 자각이 자리하고 있다. 안원은 이론을 내세울 때는 옳고 그른 점만 따져보고 같고 다른 점은 따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그의 학술적 자각이다. 또 안원은 옳은 것이라면 비록 한두 사람의 견해일지라 도 바꿀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높은 학문척 주체의식이다. 이런 반성과 주체척 자각을 통해 안원은 송명이학은 물론 한학까지도 철저히 버판하였다. 셋째, 안원은 배워서 실제에 응용하는 것을 중시하여, 用을 본체로 삼고 用을 학문으로 삼았다. 그는 兵• 農• 錢· 穀 · 水· 火• 工· 盧를 體이면서 用으로 보아, 體와 用응 하나로 보았다. 그의 習行哲學은 이런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척 특징으로부터 명말청초 중국철학의 새로운 동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숭상하고 실행한 習行哲學은 外在的인 사회에서는 그 결과를 볼 수 없였고, 학문 안에서만 탐구할 수밖에 없었다.

Ahn, Won(題元) who lived in the period from late Myoung to early Choung dynasty(明末淸初) was not only an outstanding scholar but also an educator. He challenged the academic authority, and opened the closed mouth, and held the not to be raised pen for two millenium, with his ambitious spirit. He claimed the returning to the study of Jeong-hak(正學) while criticizing anger the Han-hak(漢學) and the Song-myoung-ri-hak( 宋明理學). His ideology characterized to ’Returning to the Root & Renewing(反本開新)’ in a word. The concrete features of this ideology of him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academic features of from late Myoung to early Choung dynasty represented that the scholars who regarded the matter of grave concem to the state as their duty developed thε social duty consciousness, Ahn-won shows the same tendency. He initiated the theory of active social revolution, with saying " A person who read the book of saint must be a revolutionist not to be a traitor." Like this way, the most important feature of his ideology is the social revolution. Second, it t따ce root a deep reflection and active self-awareness in his ideology. People say that he inquired into ri화lt or wrong not into same or differ when suggesting a theory. This is the very ideological self-awareness. And he shows outstan야ng academic self-confidence while saying, "It can not be modified the truth although it derived from minority." Ahn, Won criticized thoroughly Han-hak(漢學-) and Song-myoung-ri-hak(宋明理學,) with these selt-reflection and self-awareness. Third, he paid attention to the practice which of the application of leaming, and he made the Funtion(用) to his study way. Moreover, he regarded that the Funtion and the Thing(體) as same thing such as military(兵), agriculture(農), finance(錢), grain(觀), irrigation(水), fire (火), mechanics(I), nature(盧). His practical philosophy is based on this ideology. We can observe a new tendency of China in the period from late Myoung to early Choung dynasty from these ideological features. However, the practìcal philosophy which respected and practiced by him, it could not produced its result in real society and just be researched in the area of academy.

목차
1.
2.
3.
저자
  • 顔炳罡(中國 山東大學) | Yan, Bing-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