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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江藤樹와 ‘朱子學’ 試論 - 明末淸初의 사상과 日本儒學에 대하여 - KCI 등재

Social Thought during the late Ming and the Early Ching Danasties and Japanese confucianism : An Essay on the first explorations of Toju Nakae and Chu Hsi

중강등수와 ‘주자학’ 시론 - 명말청초의 사상과 일본유학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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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明末淸初의 사상과 日本儒學에 대하여’라는 문제 설정은 江戶사상사 연구의 문맥 안에서 11세기 이전 일본 사회의 ‘주자학적 사유의 존재’라는 丸山眞男의 주장에 대한 비판 · 수정의 흐름 속에 자리 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17세가 일본에서 수용된 명말청초의 사상을 무익하게 주자학과 떨어진 곳에서 파악하려는 것도 橋狂過正의 폐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근년 중국 근세 사상 연구에서는 양명학은 주자학적 문제의식을 계승 · 발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는 주장이 점차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러한 연구 동향으로부터 이 논문에서는 中江藤樹의 사상을 ‘주자학’적 전개의 가능성 안에서 재구성해 보려 하였다. 그려고 이에 있어 藤樹의 사상에 대해 종래처럼 일부러 세세하게 시가를 구분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한 시가 구분은 藤樹사상의 ‘ 日新’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진 『藤樹先生年諸』의 기술에 의해 도출된 것으로, 오히려 이 논문에서는 초기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藤樹學특질의 추출을 기도하 였다. 그 특질은 藤樹의 사상에 합리성 • 질서성에 대한 합리적 신비 事象에 대한 신념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래에 이 문제는 藤樹가 주자 학에서처럼 ‘理’의 자기관철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이해되어왔지만, 이 에서는 오히려 藤樹가 ‘理’블 인간의 可知• 不可知에 미치는 모든 영역에 있어서 관철시켜왔기 때문에 표면상에서 그와 같은 모순이 나타남을 논하였다. 이와 같이 불가지의 영역을 신비적 인것으로 보류하지 않은 태도는 주자의 ‘象 數易’에 대한 태도와 공통된다. 또한 이것은 서구 17세기의 과학자들과도 유사한 점이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藤樹의 사상을 ‘주자학’ 안에서 이해하려는 것은, 藤樹사상의 해명에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사 전개의 재조명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This essay examines social thought in the Late Ming and the Early Ching dynasties as wel1 as Japanese Confucianism. In particular, it looks at Masao Maruyama’s criticism, in the context of the study the Confucianism in Tokugawa Japan, of the idea that Chu Hsi’s Thought took root in Japanese society before the 17th century. However, it is hard to comprehend how social thought in the late Ming and the carly Ching dynasties was brought to Japanese society in the 17th century, at distant places from Chu Hsi’s Thought. Recently, in the study on the thoughts in Early Modem China, the point of view that Wang Yang-ming’s ideas should be deemed the succession and the progress of the critical mind in Chu Hsi’s Thought seems to have been dominant. In this context, 1 tried to redefine Toju Nakae’s ideas within the range of the expansion of Chu Hsi’s Thought. In this regard, unlike previous researchers, 1 chose not to adopt the method of dividing Toju Nakae’s thought into several periods. It is controlled subconsciously by the articles of the Chronological Biography of Master Toju, which has the aim to emphasize the daily renovation of Toju Nakae’s thought. Therefore, this paper aimed to extract the essential qualities of Toju’s thought which are consistent from the early period to the late period. The essential qualíty of Toju’s thought is one of duality. First, there is his orientation to that which is rational and orderly then, there is his piety and marked interest in irrational or mystic events. In light of this duality, up to now, scholars have stated that Toju must not believe unconditionaIly in the self-penetration of Principle, as is maintained in Chu Hsi’s Thought. However, this paper attributes such apparent contradiction to Toju’s intention to make principle penetrate through every stitch that man could know in addition to those he could not Toju doesn’ t label as a mysterìous presence the territory man does not know. Thìs attìtude is similar to that of Chu Hi toward Numerology I. Moreover, the two authors' attitudes bear some resemblance to those of Western Europeanscientists in 17th century. In this regard, 1 believe that to redefine Nakae Toju’s thought within the range of the expansion of Chu Hsi’s Thoμght will allow us not only to further investigate Nakae Toju’s thought, but also to review the expansion of the history of thought in East Asia.

목차
I. 明末淸初의 思想과 江戶儒學
ll. 藤樹와 南冥, ‘太乙神’
IlI. 藤樹先生年譜
lV. ‘聖’과 ‘俗’
V. 神理의 피라미드
VI. 福善禍淫
VII. 맺음말
저자
  • 片岡龍(日本 東北大) | Kataoka R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