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俛宇 郭鍾錫의 「入德門賦」에 대하여 KCI 등재

A Study on Ipdeokmunbu by Myeonwoo Gwak Jong-seok

면우 곽종석의 「입덕문부」에 대하여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11367
  • DOIhttps://doi.org/10.14381/NMH.2015.09.30.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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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이 논문은 俛宇 郭鍾錫의 「入德門賦」가 어떤 시대상황과 배경 속에 서 창작되었으며 글의 전개방식과 주제의식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 으로 접근한 글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우선 시대상황과 창작배경을 살피고, 이 글의 구성방식을 굴원의 「어부사」와 비교해 분석하였으며, 이 글의 내용전개에 나타난 작가의식을 몇 가지 특징으로 포착하여 드러내었다. 그리고 경상우도 지역에 면면이 전승된 남명의 도학자상 이 이 글을 지은 작가에게 어떻게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함께 살폈다. 이 글의 요지를 간추려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19세기 후반의 역사적 전환기에 경상우도의 대표적인 학자 면우는 21세 때 晦窩라 자호하고서 「晦窩三圖」를 그렸는데, 요지는 주자학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면우는 10여 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다가 28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이 구도적 의지를 다짐하여 「沙 上賦」를 지었고, 그 이듬해 정월 초 남명의 도학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에 있는 입덕문에 이르러 「입덕문부」를 지었다. 이 글은 면우가 구도적 의지를 새롭게 다짐하던 시기에 남명의 도학을 새롭게 인식하고 表章 하여 남명정신을 이어가고자 지은 것이다. 「입덕문부」의 구성방식은 외형적으로 屈原의 「漁父辭」와 닮아 있다. 그러나 내용전개의 측면에서 보면 문답의 주체가 바뀌고, 주제의식이 전혀 다르다. 「어부사」는 혼탁한 시속에 휩쓸려 사는 어부와 홀로 청렴 하고 홀로 깨어 있는 굴원의 가치관이 대립적 구조로 설정되어 있다. 반면 「입덕문부」는 어부가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남명의 도학, 남명학 의 전승, 구도의 방법 등을 상세하게 일러주는 전개방식으로 되어 있다. 즉 「입덕문부」는 序에 작가의 憂道意識을 말하고, 결어에 작가의 求道 意志를 드러내고, 본문에 어부가 남명학 및 구도방법에 대해 일러주는 삼단구조로 되어 있다. 어부는 남명의 도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은자의 모습, 난세에 학자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인물로 그려져 있 다. 이를 보면 「입덕문부」의 주제의식이 남명의 도학을 표장하고 그 도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짐한 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입덕문부」에 나타난 作家意識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序에서 憂道意識을 말하고 本文에서 남명의 도학을 말하고 結語에서 求道意志를 천명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도가 무너진 시대에 남명을 본받아 구도의지를 새롭게 다짐한 작가의식을 투영한 것이다. 둘째, 본문에 남명의 도학자상을 부각시켜 우리나라 도학을 연 인물로 본 점이다. 특히 퇴계와 나이도 같고 道도 같고 德도 같고 淵源도 같다고 한 점은 남명의 도학을 퇴계의 도학처럼 正脈으로 본 것이다. 셋째, 남명의 도학이 후세에 면면히 전승되어 내려온 점을 매우 구체적으로 부각시킨 점이다. 이는 남명의 도학이 남명학파가 와해된 뒤에도 경상 우도 지역에 그대로 전승되어 내려온 점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남명을 제향한 덕천서원을 도산서원·옥산서원과 함께 거론함으로써 영남 도학 이 晦齋·退溪·南冥 세 선생에게 발원한 점을 부각시킨 것, 남명의 도학 세계로 들어가는 입덕문 주변의 낙락장송을 남명정신을 상징하는 것으 로 핍진하게 그려낸 것 등이 돋보인다. 넷째,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 덕천서원이 훼철되어 남명의 도학이 의지할 데가 없게 된 시대 의 위기의식을 표출하고 있는 점이다. 이 「입덕문부」가 1874년 정월 초에 창작된 점으로 보면, 덕천서원이 훼철된 직후 참담한 정신적 공황 상태 속에 다시 구도의 의지를 곧추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작가의 절박 한 심경이 투영되어 있다. 이 「입덕문부」는 19세기 후반 경상우도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가 남명학에 대해 어떻게 재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며, 도가 무너지는 시대에 남명정신을 고취하여 새롭게 구도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지어진 글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남명학에 대한 인식이 이 지역에 면면히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조선 후기 경상우도 남인계 학자들은 남명과 퇴계의 도학을 동등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narrative structure and writer's consciousness of Ipdeokmunbu by Gwak Jong-seok through its analysis. The main findings were summarized as follows: One of the utmost scholars in Gyeongsangwoodo during a historical transition time in the latter half of the 19th century, Myeonwoo Gwak Jong-seok called himself Hoiwa at the age of 21 and painted Hoiwasamdo, which mainly depicted his determination to study the teachings of Zhu Xi. After ten years of living away from home, he returned home at the age of 28 and created Sasangbu out of his reinforced determination to seek morality. In early January of the next year, he visited Ipdeokmun, which was the gate to the morality seeking world of Nammyeong and created Ipdeokmunbu, which revealed his will to inherit and continue Nammyeong's spirit by perceiving his moral philosophy anew and promoting it widely at the time when he renewed his determination to seek morality. The narrative structure of Ipdeokmunbu resembles that of Eobusa by Gulwon externally, but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m in terms of content development since the former has a change in the subjects of questions and answers and totally different thematic consciousness. Eobusa presents a confrontational structure between the fisherman, who is swept by the turbid customs of the times, and Gulwon, who is upright and awakened by himself, in terms of values. In Ipdeokmunbu, on the other hand, the fisherman offers the writer detailed explanations about the moral philosophy of Nammyeong, transmission of Nammyeong studies, and methods to seek morality in a one-sided manner. That is, it is in a triple structure of mentioning the writer's Woodo consciousness in the introduction, revealing the writer's determination to seek morality in the conclusion, and the fisherman explaining the Nammyeong studies and method to see morality in the body. The writer's consciousness can be mainly summarized in four aspects in Ipdeokmunbu: first, the introduction presents the Woodo consciousness, the body talks about the moral philosophy of Nammyeong, and the conclusion proclaims the determination to seek morality. It projects the writer's consciousness to renew his determination to seek morality by modeling himself on Nammyeong at a time when morality collapsed. Second, it introduces Nammyeong as a figure to open the world of moral philosophy in the nation by highlighting his aspects as a moral philosopher. It states that Nammyeong was the same as Toigye in terms of age, morality, virtue, and origin, which particularly indicates that the moral philosophy of Nammyeong is considered to be in the right line like that of Toigye in the book. Third, it highlights very specifically the fact that the moral philosophy of Nammyeong was continuously transmitted to the later generations, which shows that the moral philosophy of Nammyeong continued to be transmitted in the Gyeongsangwoodo region even after the collapse of Nammyeong School. It particularly stands out that it highlights the fact that the moral philosophy of Yeongname originated in Hoijae, Toigye, and Nammyeong by mentioning Deokcheonseowon, where they held a sacrificial rite for Nammyeong along with Dosanseowon and Oksanseowon and that it realistically depicts the tall and exuberant pine tree near the Ipdeokmun open to the world of Nammyeong's world of moral philosophy as a symbol of his spirit. Finally, it expresses the consciousness of crisis those days when the Deokcheonseowon was demolished by Daewongun's order to abolish Seowons in 1870 and, accordingly, there was no place for the moral philosophy of Nammyeong to depend on. Ipdeokmunbu well shows how one of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scholars of Gyeongsangwoodo in the latter half of the 19th century re-perceived Nammyeong studies. It was written by the writer to renew his determination to seek morality by inspiring the spirit of Nammyeong at a time when morality was collapsing. It thus specifically shows the perceptions of Nammyseong studies continued to be transmitted in the region in the flow of thought history in the latter period of Joseon. It also shows that the scholars of Namin Line in Gyeongsangwoodo in the latter period of Joseon regarded the moral philosophy of Nammyeong equal to that of Toigye, thus claiming huge significance.

목차
Ⅰ. 문제의 소재
Ⅱ. 시대상황과 창작배경
1. 시대상황
2. 창작배경
Ⅲ. 「入德門賦」의 構成方式과 作家意識
1. 構成方式
2. 作家意識
1) 憂道意識과 求道意志
2) 南冥의 道學者像 浮刻
3) 南冥 道學의 傳承 懷古
4) 德川書院 毁撤로 인한 危機意識
Ⅳ. 맺음말
저자
  • 崔錫起(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겸 남명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최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