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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후반 불교계의 동향과 한용운의 불교사상 KCI 등재

Trend of Buddhist circle in the late Japanese ruling period and Buddhist thoughts of Yongun Han

  • 언어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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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예연구 (Studies on Buddhist art and culture)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연구소 (Studies on Buddhist art and culture)
초록

일제강점기 후반 불교계의 당면한 과제는‘자주권 확립’과‘민족해 방운동’이었다. 주류적 흐름이었던‘불교계의 자주권 확립’은 전통 불교 생존의 측면은 물론이거니와, 왜색불교에 맞선 우리불교 정체 성의 수호와 함께 불교의 대중화 및 활성화라는 측면, 더 나아가 사 찰령 등에 맞서서 우리나라의 전통 불지(佛旨)를 잇고자 하는 노력이 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불교계 인물과는 달리 만해는‘민족해방운동’ 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만해는 꺼져가는 불법을 되살리고 그 대중화 및 활성화에 천착했지만, 보다 큰 안목으로 일제로부터의 조선 독립 에 더 큰 의미부여를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자주권 확립’ 의 차원에서 한국불교의 주체적 발전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하였다. 초기의 저작인『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해는 불교적 계몽주의자로 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만해는 이 글에서 불교사상에 기반을 두 지만 서구의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여 봉건적인 불교의 개혁을 주장한 다. 하지만 사상의 원숙기에 이르면서『십현담주해』를 완성하고『유 마경』을 번역한다. 요컨대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만해 사상의 요체는 실천불교인‘대중불교’이다. 만해는 한편으로는 불교를 통해서 세상을 구하겠다는 강렬한 구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불교계의 출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 강렬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구 세의식은 깨달은 자의 우월의식이 아니라 저자거리에서의 동참의식 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해의 선은 대중들이 행할 수 있는 선이며, 그 가 표방하는 바의 보살행은 구원(救援)이나 시혜(施惠)이 아니라‘더 불어 삶’이다. 만해는 이러한 입장에 대한 구체적 실천을 위한 안을 제시하는데, 그것이「조선불교의 개혁안」이다. 그는 이 개혁론에서 초기의『조선불교유신론』을 계승하면서도 당시 변화된 불교계의 동 향에 유의하여 개혁의 당위성, 그리고 대상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만해를 근·현대 한국불교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선지식 중의 한 분이라고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 오히 려 그는 한국근대사의 중심에서 민족이 가야할 길을 묵묵히 걸어간 지사였다. 만해가 민족운동가, 독립운동가, 선사, 선생 등의 여러 가 지 명칭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항일민족운동에 매진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의 명사로는 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문학, 사상, 불교, 지성 등 각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행적을 우리에게 남겼 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만해의 개혁은 불교 개혁을 포함하여 철저하게 대중보 다 한 발 앞서 갔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저작과 실천을 통하여 봉건불교의 개혁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투쟁의 행적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 다는 점에서도 만해는 우리에게 아주 의미심장하다.

Urgent task of Buddhist circle in the late Japanese ruling period was ‘establishment of autonomy’and ‘national liberalization movement’. ‘Establishment of autonomy in Buddhist circle’which was a mainstream not only intended survival of traditional Buddhism but also keeping identity of Korean Buddhism against Japanese Buddhism. This also aimed at popularization and activation of Buddhism. Furthermore, this was an effort to transmit traditional Korean Buddhist spirit. But differently from most of figures in Buddhist circle, Manhae put focus on ‘national liberalization movement’. Manhae strived to recover dying Buddhism and concentrated on popularization and activation of Buddhism. Rather, he gave larger meaning on Joseo’s independence from Japan from long view. But even for this, he explored direction of independent development of Korean Buddhism from dimension of‘ establishment of autonomy.’ In this early writing,『 Joseon Buddhism Yooshinron 朝鮮佛敎 維新論』, Manhae shows himself as Buddhist illuminati. The writing of Manhae is based on Buddhist thoughts but insists reform of feudal Buddhism by accepting social evolution theory of the West. In his mature period in thoughts, he completed 『Siphyundamjuhae 十玄談註解』and translated 『The Vimalakirtinirdesha Sutra 維摩經』. In conclusion, main point of Manhae thoughts seen here is‘ popular Buddhism’. On the other hand, Manhae had strong consciousness to save the world through Buddhism while he had much critical consciousness about aspects of the supra-mundane world or realm in Joseon Buddhist circle. Rather, his consciousness to save the world is not consciousness of superiority of enlightened one but is consciousness of participation in the midst of this world. In this sense, Seon of Manhae is one which the public can do and Bodhisattva conduct that he emphasizes is‘ life together with the others’not salvation or dispensation. Manhae suggested concrete solutions to implement such position. This is the very 「proposal for reform of Joseon Buddhism」. He succeeded his early 『Joseon Buddhism Yooshinron 朝鮮佛敎維新論』in the reform theory. Furthermore, he gave attention on trend of changed Buddhism circle then and suggested appropriateness, object, and method of reform It is not proper expression that Manhae is one of most outstanding Seonjisik(善知識) who can represents Korean Buddhist circle in recent and present era. Rather, he was a patriot who walked on path, on which Korean people should go in the center of Korean recent history. Manhae is named National movement activist, activist for independence, Seon master, teacher etc. This is because he not only strived to do national movement against Japan, but also had outstanding performances in several fields such as literature, thoughts, Buddhism, intellect etc. In addition, reform of Manhae including Buddhism is very special because he went ahead of the public. He also tried to reform feudal Buddhism through many writings and implementation, and struggled to overcome colonial condition by Japan in various ways. Thus, Manhae is very meaningful to us.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일제강점기 후반 불교계의 동향
Ⅲ. 한용운의 불교사상
Ⅳ. 나가는 말
저자
  • 이덕진(창원 문성대학교 교수) | Lee, Duck–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