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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4.4만세 운동의 특징과 선교적 의미 KCI 등재

Characters and Missional Meanings of Iksan Independence Movement on April 4, 1919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28981
  • DOIhttps://doi.org/10.14493/ksoms.2017.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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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신학 (Theology of Mission)
한국선교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Mission Studies)
초록

1919년 4월 4일 익산군 솜리(이리) 장터에서 있었던 ‘대한독립만 세’ 운동은 3.1운동의 하나로서 전국적으로도 매우 격렬했던 만세운동 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운동의 특징은 첫째, 오랫동안 준비되어 온 필연적 운동으로써 이 운동의 중심에는 남전교회의 설립정신이 반영되 었다. 둘째, 평신도 중심의 운동으로써 다른 지역 만세운동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셋째,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민족저항운동으로써 기독 교 저항운동이자 농민 저항운동이었다. 익산 4.4 만세운동의 선교적 의미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열매로써 익산지역의 교회설립과정과 선교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당시 5일마다 서는 ‘장터’가 복음이 선포되고 실천되는 ‘토착화’(Indigenization)선교의 현장이었다. ‘장 터’는 선교사들이 서민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리스도인들은 쪽 복음을 전하던 곳이었으며, 독립 만세운동이 가장 많이 일어났던 장소였다. 마지막으로 독특한 지리적 특징을 가진 전북은 한국 토속종교의 본산으 로써 종교간 대화의 선교와 만세운동의 사회적 책임의 선교가 이루어진 곳이다.

This paper aims at studying the characters and missional meaning of Iksan independence movement on April 4, 1919. There was an independence movement in Somri market in Iksan on April 4, 1919. It was one of the fiercest independence movements in colonial Korea against Japan’s invasion. This movement has three characters. First, it was a movement which is very meaningful to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its mission. It did not happen spontaneously, but it was inevitably designed by NamJeon Church. Second, it was a layman movement, for those who were killed, injured, arrested and judged were lay Christians. Third, it was a national resistance movement which fought against the political oppression, economical exploitation and social discrimination. Also it was a farmers’ and Christians’ resistance movement.

저자
  • 김은수(전주대학교, 선교학) | EunS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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