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선교적 교회론 태동에 있어서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 선교신학 안에 나타난 교회와 선교에 대한 선교신학 논쟁에 관한 연구이다. 두 진영이 갖고 있는 신학적인 입장과 차이들은 교회와 선교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들을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선교에서의 교회 위치와 삶의 자리를 각각 달리 해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교에 대한 교회 역할에 있어 에큐메니칼 입장은 사회 참여와 변혁적 삶에 보다 치중하는 신학을 강조했다면, 복음주의 입장은 복음 전도와 영혼구원, 교회 개척에 보다 치중하는 신학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진영의 인식론적 변화들은 화해를 모색하는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삶의 자리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롭게 인식했다. 무엇보다 두 진영의 지속적인 협력 모색은 통전적 선교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한 상호간의 선교신학 보완을 위해 화해를 모색하게 되었다.
개인주의화와 자율성 고조의 삶에서 통일성과 조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오늘의 사회 현상과 조우하듯 현재 교회도 자기의 벽을 허물어 가고 있다. 이 같은 변천과 함께 교회의 본질은 하나(Una)이며 동시에 보편적(Catholica)이라는 주장 하에 오늘의 시대사조에 교회가 창의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에서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공시적, 통시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은 시의에 적절한 연구이자 교회 통합의 본질적 의미를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단초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에큐메니컬 운동 측면에서 교회사를 일별하고 있다. 1910년에 시작되어 196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근·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을 살펴보고, 그 시작을 선교 단계에서의 교회 다양성 문제로 규정, 다양성 극복을 위한 교회의 노력을 살펴보았다. 본론의 후반에서는 총 7차에 걸쳐 일어난 에큐메니컬 공의회 개최를 최초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그 내용을 고찰해 보았다. 근·현대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선교에 있어서 다양성 문제점 극복에 천착하였다면, 초기 교회에서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삼위일체론, 신성과 인성의 규정문제, 이콘의 사용 문제 등 교회의 기본이 되는 교리 확립과 전파에 중심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휘튼대회는 1958년까지 함께한 IMC가 1961년 3차 WCC에 귀속 됨으로써 설자리를 잃어버린 선교단체와 선교회, 개 교회와 교단선교부 들이 1966년 휘튼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에 도전하고, 복음주의 선교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복음주의 일치를 꾀하고자 개최되었다.
1. 휘튼대회는 반에큐메니컬 운동과 선교를 선포하였다. 복음주의 진영은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 “이단, 적, 죄악, 교회가 아니다”라는 강경한 어투를 사용하면서 반대하였으며, “WCC와의 만남과 대화도 포기”한다고까지 하였다. 또한 에큐메니컬 진영으로부터 받은 압력과 고난, 고통을 제시하면서 복음주의의 통합과 일치를 강조하였다. 특히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입한 사건을 개신교 정체 성의 혼란과 혼동을 야기한 주된 요인으로 보고, 심지어 로마가톨릭도 선교의 대상으로 보았다. 복음주의 선교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운동이 복음을 혼란, 변경, 대체 혹은 가감함으로써 복음의 정체성을 흔드는 혼합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1917년 IFMA를 구성할 때 허드슨 테일러의 공식적인 선언에서 발견된 내용과 일치한다.
2. 휘튼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의 성경적 입장을 근거로 에큐메니컬 선교와 통합이 불가능하고,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컬 선교가 근원적 으로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복음주의는 선교를 성서의 권위를 근거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함을 믿고, 말씀의 삶을 결단하는 제자화를 강조한다. 이때 제자화란 복음주 의 선교의 사회적 삶의 실천을 말한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이것을 두 영역으로 나누어 하나는 개인구원, 다른 하나는 사회구원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정의하였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여러 과제 중 상황적으로 긴급한 사역에 집중하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선교 현장을 영적 황무지를 만들고 영혼구원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에 복음주의는 오직 복음으로 회개한 영혼을 구원 하는 활동에 집중하며, 영적 사역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사회봉사 사역이 성취된다고 보았다.
휘튼대회는 양 진영이 더 이상 연합할 필요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속적인 압력과, 선교지에서의 회유와 압박을 고통스럽게 호소하며, 오직 복음전도로 주님의 대위임령 을 수행하려고 한다. 복음의 열정이 있으면 사회참여와 봉사가 이어질 것이지만, 설령 사회봉사를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도 복음제시가 이루어 졌다면 그것은 선교를 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에큐메니컬 선교 와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1)
3.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노력보다 서로의 특징을 살려 독립적 선교운동이 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서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선교의 핵심적 동심원이다. 따라서 가운데 영역에 복음주의 선교를 놓고 그 주변 원으로 에큐메니컬 선교를 배치해 야 한다.
정리하자면,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시도보다 성경의 권위와 복음 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사역의 다양성 을 전제로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독립적으로 할 것은 독립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 선교의 개종 문제나,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문제는 에큐메니컬 선교에서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큐메니 컬 선교의 개종 문제나 복음주의 선교의 복음 제시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 양 진영이 서로 논쟁하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다. 오히려 복음주 의 선교는 근본적으로 복음의 정체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를 떠받치는 토대로 보는 것이 좋다. 반면에 에큐메니컬 선교는 다양한 선교 영역을 접할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지원하며, 연합과 통합된 사역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양 진영의 사역들은 복음증거 사역을 전제로 한 영역으로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컬 선교는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개신교의 교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 해야 한다.
레슬리 뉴비긴은 20세기 후반 복음의 진정성을 위협하는 모더니즘 과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끊임없는 도전 가운데 선교 의 성서적, 신학적 근거를 구축한 위대한 선교사이고 학자였으며 교회 연합 운동가였다. 그는 자신의 생애 동안 서구교회와 문화를 휩쓴 후기 계몽주의 문화 가운데 교회의 본질과 과제에 대한 상호 비판적인 분석을 끊임없이 찾으려고 노력했던 학자이다. 필자는 이런 정신에 입각하여 그의 에큐메니칼 교회론을 탐구했다. 그의 에큐메니칼 교회론 은 인도의 칸치푸람(Kanchipuram)에서 선교사로 일하면서 신학적인 문제에 봉착한 인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도전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그리고 IMC 총무와 WCC 서기로 6년에 걸쳐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로 섬기는 동안 보다 발전되었다. 그러나 그의 에큐메니 칼 교회론은 두 가지 교회론적 배경 하에서 형성되었는데, 1940년대 초반 교회는 단지 성경이 증명하고 있는 진리에 대해 응답하는 개인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라는 그의 생각이 1950년대 서구 기독교 전통의 몰락과 함께 찾아 온 교회의 위기를 직시하고 교회회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에큐메니칼 대화들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바뀌게 된다. 그의 이런 변화들은 마침내 다양한 에큐메니칼 모임들을 참석하 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에큐메니칼 학자로 거듭나는 중요한 초석이 된다. 그의 에큐메니칼 교회론의 방향은 교회의 선교적 소명으 로서 교회일치와 연합에 있었는데, 에큐메니칼 교회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뉴비긴은 교회일치와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0세기 현대선교운동의 주요 주제가 되어왔던 세계선교와 교회일치 분야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면서 세계선교는 교회일치로부터 시작됨을 직시하고 교회는 일치와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게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고, 복음을 말과 행위로 증거하기 위해 교회의 에큐메니칼 연합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시사한다. 둘째, 교회가 세계선교에 헌신하며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교회 간의 교파주의를 지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주 의로 나아가야 함을 뉴비긴은 주장한다. 교회는 다양한 교파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배척이나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편적 입장에서 다양한 은사를 인정하고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교적 소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제시한다. 셋째, 뉴비긴은 세계선교와 교회일치의 구심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제시한다. 그는 세계역사에 연합된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치와 선교에 대한 교회의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에 있다고 보았다. 뉴비긴은 인간의 죄는 이웃을 기만하는 자기사랑, 시기, 미움에 의해 야기된 불일치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모든 불일치를 해소하고 하나 될 수 있는 중심은 예수의 십자가에 있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뉴비긴은 세계 일치를 강조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교회일치의 차원을 넘어 세계역사 가운데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한다. 교회는 지엽적인 태도를 버리고 일치와 연합을 모색해 야 하고 가시적 공동체 간의 일치를 통해 복음증거의 참된 증인으로 살아야 함을 제시한다. 나아가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세계역사 가운데 계시는 분으로 이 세계역사 속에서 구속의 역사를 펼치시는 분임을 깨닫고 교회는 선교적 소명으로서 일치와 연합을 위한 에큐메니칼 교회로 나아가야함을 강조한다.
에큐메니칼 역사에서 선교적 교회를 위한 토론은 계속되어 왔다. 국제선교협의회가 1921년 창립된 이래 교회의 선교적 의무가 주요 토론의제였고,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설되면서 이 두 기구의 통합을 위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따라서 이 논문은 1961년 뉴델리에서 IMC로 대변되는 ‘선교’와 WCC로 대표되는 ‘교회’가 기구적 일치를 이루는 역사를 먼저 다루고, 선교적 구조를 위한 토론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근거와 그 핵심 내용을 밝혀서 오늘날 선교적 교회 논의에 기여하고자 한다.WCC 중앙위원회는 두 기구의 일치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하여 ‘선교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소명’이라는 ‘롤(Rolle)선언문’을 채택하고, 일치를 위한 초안을 1957년에 제안하였다. 이를 WCC 중앙위원회는 1957년, IMC는 1958년 가나 총회에서 각각 수용함으로써 두 기구의 일치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교회의 선교적 구조’에 대한 에큐메니칼 토론은 각 대륙별로 진행되었다. 먼저 ‘서유럽연구그룹’은 1965년 1차 연구를 마무리하여『구조원리로서의 선교』라는 보고서를 내었고, 이를 바탕으로『선교적 교회구조를 위한 투쟁 안에 있는 타자를 위한 교회』(Die Kirche für andere im Ringen um Strukturen missionarischer Gemeinden)를, 북미에서는『세계를 위한 교회』(Die Kirche für die Welt)를 출간하였다. 아시아 교회는 플레밍과 라이트가 각 지역에서 보내온 일부자료를 토대로 『선교적 교회를 위한 구조』를 1964년 공동집필하였다.선교적 교회를 위한 에큐메니칼 토론의 신학적 기여는『구조원리로서의 선교』이며, 교회론의 핵심인 ‘타자를 위한’ 명제는 본회퍼(D. Bonhoeffer)에서 비롯되었다.『타자를 위한 교회』는 샬롬(Schalom)이라는 성서적 개념으로 집약되며 이것은 후켄다이크(J. C. Hoekendijk)에 의해 발전되어 전통적인 ‘하나님-교회-세계’의 구조가 ‘하나님-세계-교회’로 바뀌게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the understanding on the workers of mission in ecumenical theology. Since mission is an action for the Kingdom of God,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who is in charge of this work for an effective ministry. In the past, the church thought that the major agents of mission are ‘the church’ or ‘the chosen people.’ However, after the second world war, the ecumenical theology started to see the worker of mission more in a wider view including various organizations in the world. In this paper, first I tried to find out from what motivation the new view came out. They were the following perceptions: 1) the church realized that the church, the major agent of mission, committed serious sins especially during the two world wars, 2) due to the impact of Missio Dei, the church came to see that the workers of mission are not just the church but also many other institutions in the world, 3) the church came to change its view on the world from a target of mission to a coworker of mission. With this kind of background, the ecumenical theology tends to see the workers of mission as the triune God himself, the various institutions in the world used by God, lay people, and the poors. This kind of understanding contains various strengths and weaknesses. It might be helpful for the church to break its arrogance and self-centered attitude. Also it can help the church to cooperate with the world in carrying out the mission, and to keep going forward toward the ideal direction of mission. However, this view contains some weaknesses as well. As it emphasizes God as the major worker of mission too much, it can reduce the church's responsibility and enthusiasm for mission. As it pursues cooperation with the world, it can bring a result of weakening the identity of the church also. As it includes the world, which is not concerned and interested about God, as a major worker of mission, the church can fall into a trap of idealism and as a result of this it can cause enfeeblement of mission. If these kinds of weaknesses are compensated properly, the ecumenical view on the workers of mission would be helpful for building up the church for world mission.
The existing perspectives claims that there is a static relations between Gospel and Culture. That is, biblical text is constant and is the subject of hermeneutics. Besides, context acts passively as the object of hermeneutics. However, context is the totality of human life's creative selfunderstanding. It means Sitz im Leben which is developed in political,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phere. Therefore, it also provides a dynamic hermeneutics of the text. Finally, on the one hand the text illuminates the context, on the other hand the context illuminates the text. The fact that both Text and Context have hermeneutical functions on illuminating each other makes us face both the problems of Truth and humanics. Every one can hear the Good News only in his/her own culturally conditioned context. Therefore, any intercultural understanding prerequisites common hearing. Only when we are together, we can understand the biblical truth in impartial and more complete manner. There must neither be superiority nor inferiority over others where the biblical text is being heard and understood together crossculturally, instead there must be reciprocal dependence with one another. The postmodern intercultural ecumenical missiological hermeneutics aims at realization of the koinonia in diversity, pursuing reciprocal complement and learning through the newly understanding of the Gospel being interpreted in each culture. Thus, the worldwide churches becomes not only a hermeneutical community, but also it becomes a learning, supporting, and celebrating community. The church is the participatory subject and agent of mission of God, but not the sole recipient of Gospel. We need newly interpreted Gospel by crosscultural process. Actually, the authentic subject of the postmodern intercultural ecumenical missiological hermeneutics is the Holy Spirit. Under the free and sovereign work of the Holy Spirit, the church cannot absolutize its own truth claim. Rather, it has to be open to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s leading the church from partial understanding to a fuller understanding of the truth. In this regard, mission is not just something the church is doing alone, but it is primaril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which precedes the church's involvement in missio Dei. The church has to spread this Gospel with words and life. The proclamation and presence go together in mission. Only through the missionary renewal which unites the missionary proclamation and the missionary presence, the church can accomplish mission work more faithfully in the world. Therefore, both western and oriental churches, and all other churches of the world as well need each other.
When we carry out a work or project, setting a clear goal is crucial for a success of the vocation. A goal means a task, target, or place to go or to achieve, and in this sense, a project whose goal is not clear enough cannot be achieved successfully. Since mission is also a ministry of a religion, making a clear goal is important for its success. However, in Christian mission the goal of mission is understood in various ways. While in the traditional view the understanding of mission’s goal is rather simple and clear, recent view is rather inclusive and complicated. In particular, the ecumenical view of the goal i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the traditional view. So this article investigated the goal of mission in ecumenical view with a desire to provide a foundation for making a desirable purpose of mission today when the Christianity is in a deep crisis. For this purpose this article studied some major goals of ecumenical missiology such as humanization, JPIC, unity and reconciliation. As a result of this investigation this paper suggested some major characteristics of ecumenical goal of mission: broad inclusiveness, deep concern on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high possibility of change, and removing priority. These kinds of characteristics have various strengths and advantages in serving and transforming the world, and in making suitable goals which fit the felt needs of the changing world. In other words, the ecumenical goals are effective in serving the world. However, the ecumenical goals have some limitations as well. The goals of the ecumenical wing are so broad and inclusive that the energy would be divided into many directions. Some goals are agendas of the world which seek welfare of the world, so these goals are helpful for the development of the world but not much for growth of the church, a major goal of mission. If ecumenical goals are compensated in these areas, the goals would be much more effective for the Kingdom of God.
변혁기마다 여성들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가장 앞장서서 창조적인 사역의 길을 개척하고 여성공동체를 형성하여 교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성장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안정화되면, 여성들만의 특수성을 가졌던 여성공동체는 전체공동체에 흡수 혹은 통합됨으로써 여성들이 다시 소외되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본 글은 여성공동체가 ‘창의적 사역 개척 – 여성공동체 형성 – 통합위원회로 변화 – 여성의 특수성 약화’라는 역사의 순환을 반복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여성의 참여가 안정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 현상은 오늘날 교회에서 여성, 청년, 장애인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20세기 초 교회론의 변화에 따라 여성의 입지가 약화 되는 상황에서, 여성 에큐메니칼 선구자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의 성찰과 에큐메니칼 대화를 통해 여성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을 동시에 전개 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 결과, 교회에서 여성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평신도 신학을 정립하여 20세 교회론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지도자는 사라 차코, 캐슬린 블리스, 마들렌 바롯, 그리고 수잔 드 디트리히가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평가는 미미하다. 그 이유는 이들 역시 여성위원회를 평신도분과로 변경하여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통합공동체를 기대했으나, 다시 부서가 남성 위주의 조직으로 변경되어 오히려 여성의 입지가 축소되고, 여성 사역의 토대마저 다시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권위가 신장된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여성위원회의 존립은 매우 중요하다. 본 글은 세계교회협의회 임시위원회(1938)부터 에반스톤 중앙위원회 (1955)에 이르기까지 여성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에큐메니컬 운동을 연대순으로 분석하였다. 여기에는 세계교회협의회 집행위원회 또는 중앙위원회의 회의록, 세계교회협의회 문서보관소 및 세계 YWCA 문서보관소에 있는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 글의 결론으로 교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완전하고 동등한 참여를 위해서는, 여성공동체는 전체 공동체의 일치를 보호하고, 전체공동체는 여성 공동체의 특수성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숙한 관계 형성과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사역 참여는 진정한 교회 개혁의 가시적인 표현이며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13년 WCC 제10차 부산 총회를 계기로 복음주의 교회와 에큐메니칼 교회가 격렬한 신학 논쟁을 벌였다. 복음주의 교회는 특별히 WCC의 교회론에 대하여 의심이 많았다. 복음주의는 WCC 교회론이 교회의 정체성보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다가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WCC 교회론이 정말 그런가?
이 글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서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얻었다. 첫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20세기 전반부터 교회 일치를 추구하는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에큐메니칼 문서는 유기체적 연합에서 협의회적 교제와 코이노니아로 발전하는 교회 일치 개념을 발전시켰다. 둘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러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강조하는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에큐메니칼 문서는 하나님의 선교 신학에 근거하여 교회를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종으로 보았다. 셋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1990년대에 교회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교회의 본성과 사명을 통합하는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교회와 세상』과 『하나의 신앙고백』 문서에 의하면,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에 기원을 두고 있고, 교회의 본성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이고,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징표와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런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이, 복음주의의 비판과 달리, 1990년대에 이르러 교회의 본성과 사명을 균형있게 강조한 교회론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앞으로 복음주의 교회와 에큐메니칼 교회 사이에 깊은 신학적 대화가 이루어지를 기대해 보았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John Wesley’s and early Methodist’s ecumenical spirit and practice at the time when we need more unity and cooperation of the Korean Protestant Churches hosting the 10th Assembl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2013. The writer examines his ecumenical spirit and practice in his Journal and Diaries, Letters, and Sermons etc.
John Wesley, the founder of Methodism, was a man of ecumenical spirit and endeavored to take it into practice. In principle, he was a son of Church of England. However, he accepted other christian traditions, unless they didn’t hurt the essentials of christianity. His ultimate goal is to be sanctified and become a perfect Christian, not to be a member of a particular church or denomination. His ecumenical spirit drew on his characteristic stress on the true Christian’s interior life of holiness. His ecumenical central message is summed up as follows in the sermon, “Catholic Spirit”: “So far as in conscience you can (retaining still your own opinions and your own manner of worshipping God), join with me in the work of God, and let us go on hand in hand.” He insisted that “orthodoxy, or right opinions, is, at best, but a very slender part of religion, if it can be allowed to be any part of it at all”, but he also wrote that “A catholic spirit is not a speculative latitudinarianism. It is not an indifference to all opinion: this is the spawn of hell, not the offspring of heaven.”
This study also demonstrates how difficult it was for John Wesley and early Methodist to realize their ecumenical spirit in the Methodist Movement which underwent the conflict and division between Wesleyan Methodist and Calvinistic Methodist espoused by George Whitefield. Despite their real differences, John Wesley emphasizes that Christians have a great deal in common and that they must stress and strengthen these existing bonds of unity. He preaches and practises in the 18th century what Christians in the twentieth have recently discovered and formulated. Taking it into consideration, he can be estimated as one of forerunners of modern ecumenical movement.
One of the ultimate purposes of ecumenical dialogue is to share, beyond mere understanding and reconciliation, special gifts of traditions and spiritual experiences. This paper aims to explore Luther’s doctrine of justification in the ecumenical dialogue, especially investigating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which is ecumenical document between Lutherans and Roman Catholics. This document says that Lutherans and Roman Catholics has reached a fundamental consensus on the gospel, though they still admitted that even after several years of dialogue they still had differences.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is twofold. First, it will advance Luther research by bringing to light an important ecumenical interpretation and emphasis of Luther’s theology of Justification. It will also contribute to contemporary ecumenical efforts by focusing attention on the dialectic methodology of faith and love in Luther’s theology. In regard to understanding of Luther’s doctrine of Justification in the ecumenical context, this paper suggests two points, which hopes to produce effective results. First, Luther’s teaching should be interpreted in spiritual dimension, that is to say, in terms of mystical union with Christ. Second, it should be understand essential basis of faith for social ethics of Christians. Ultimately, the paper asserts that Luther’s theology of Justification provides underlying principles for Christian ethics today, and that for Luther, faith and love are integrated in his theology.
The 10th Assembly of WCC will take place in Korea in 2013. Conservative Evangelical churches in Korea take the negative ideas against the WCC. What is the theology of Ecumenical Movement?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its theology. But it might be possible to catch the Ecumenical theological paradigm. Ecumenical movement produced the astonishing reports after a series of conferences or assemblies. Students who study the Ecumenical movement tend to be frustrated at its extraordinary documents. So I wonder whether any theological paradigm of the Ecumenical movement could be found. If so, we could grasp the total Ecumenical movement at a glace.
According to W. A. Visser ‘t Hooft and Konrad Raiser, the Ecumenical movement in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had a theological paradigm of ‘Christocentric universalism’, which had the four elements: Christocentrism, the concentration on the church, the universal perspective of world, and history-centered thought. As the head of church, Jesus Christ let the whole church participate in God’s salvation history to save the whole world.
However, the Ecumenical movement in the second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developed a new theological paradigm, which included the following four elements: Trinity and the kingdom of God, the deep study of the church, the radical study of the world (humanity) and the emphasis on the nature (creation). It could be said that God the Trinity as the Lord of the Kingdom of God let the whole church participate in the works of the Kingdom of God to save both the world (humanity) and the nature holistically. And the churches, as both sign and instrument of the kingdom of God, work to save the world (humanity) and the nature (creation) under the lordship of the Trinity. So we suggest its theological paradigm to be called as a ‘Trinity-centered universalism.’
As a conclusion, this study pointed up that the theological paradigm of the Ecumenical movement developed from Christocentric universalism to Trinity-centered one. Ecumenical movement took root in the ground in the Korean churches today. The Trinity-centered universalism as a Ecumenical theological paradigm could give the observers a coherent understanding and also provide every Ecumenical workers with a sense of solida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