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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로서 南冥의 삶과 敬義思想 KCI 등재

As the recluse Nammyong’s life and the thought of respect and righteousness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32360
  • DOIhttps://doi.org/10.14381/NMH.2017.53.03.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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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이 논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학문에 대한 새로운 연구관 점의 필요성, 그의 처사적 삶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경의(敬義)정신과 사회적 실천방법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명의 학문은 이황(李滉. 1501~1570)과 이이(李珥. 1536~1584)를 중심으로 하는 주리(主理)와 주기(主氣), 기호학파(畿湖學派)와 영남학파(嶺南 學派)와 같은 이분법적 연구를 지양해야 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연구는 일제의 어용학자인 Takahashi Toru(高橋亨.1878~1967)가 남긴 일제(日帝)의 잔재 (殘滓)이기 때문이다. 둘째, 처사(處士)로서 남명은 학문적으로 이단(異端)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 는 늘 불의에 항거하고, 무능한 왕과 그의 어머니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고, 척신(戚臣)들이 권력을 농단하는 조정에는 출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늘 국정 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무책을 제시하였고, 다양한 문인을 교육하고 교유 하면서 장차 다가올 국난을 대비하였다. 셋째, 그는 국가의 안위와 민생을 위해 늘 국정의 혁신을 주창하였다. 특히 남 명은 최고통치자인 왕의 진정한 희생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그가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에 잘 나타난다. 종합하면, 남명의 사상에는 근대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무실(務實)을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당리당략이나 특정 학문을 고집하지 않 았고, 연구와 실천에서 항상 객관적·합리적 태도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남명의 학문과 사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남명의 학문과 삶에서 현대의 한국병을 고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In this article, I studied about Nammyong(南冥) Cho Shik(曺植. 1501~1572)’s learning in three view point. In the first, I studied the necessity of new perspective for studying Nammyong’s learning. Second, I studied the true meaning of Nammyong’s life of the recluse (處士). Thirdly, I searched Nammyong’s the thought spirit of respect and righteousness(敬義思想), and the method of practise.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dichotomous thinking should be avoided in studying Nammyong’s learning. The dichotomous thinking is the ‘vital force(Qi) centered theory(主氣論)’ and ‘principle(Li) centered theory(主理論)’ or the Giho school and Yeongnam school in the wake of Yi hwang(李滉. 1501~1570) and Yi I(李珥. 1536~1584). Because this method is the specter of Japanese imperialism and colonialism planted by Takahashi Toru(高橋亨.1878~1967). He was a representative governmentpatronized scholar. Second, Nammyong as the recluse, did not separate heresy. He always fight against injustice, did not go into government service. Because, at that time the king was stupid, the king mother acting as In this article, I studied about Nammyong(南冥) Cho Shik(曺植. 1501~1572)’s learning in three view point. In the first, I studied the necessity of new perspective for studying Nammyong’s learning. Second, I studied the true meaning of Nammyong’s life of the recluse (處士). Thirdly, I searched Nammyong’s the thought spirit of respect and righteousness(敬義思想), and the method of practise.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dichotomous thinking should be avoided in studying Nammyong’s learning. The dichotomous thinking is the ‘vital force(Qi) centered theory(主氣論)’ and ‘principle(Li) centered theory(主理論)’ or the Giho school and Yeongnam school in the wake of Yi hwang(李滉. 1501~1570) and Yi I(李珥. 1536~1584). Because this method is the specter of Japanese imperialism and colonialism planted by Takahashi Toru(高橋亨.1878~1967). He was a representative governmentpatronized scholar. Second, Nammyong as the recluse, did not separate heresy. He always fight against injustice, did not go into government service. Because, at that time the king was stupid, the king mother acting as

저자
  • 손흥철(안양대학교 교수) | Son, Heung Ch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