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필자는 一齋 李恒(1499~1576)과 思庵 朴淳(1523∼1589)의 理氣論 내용 및 특징을 비교론적으로 고찰하고, 이들의 철학이 호남학파로서의 성립 가능성이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이를 위하여 먼저 조선전기의 리기론의 전개와 그 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 전기의 리기론은 주로 太極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에서 이견이 생겼고, 이를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었다. 다음으로 一齋의 태극론과 리기론을 연구하였다. 일재의 리기론 또한 그의 태극론에 기초하며, 周濂溪의 「태극도설」의 요지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특히 일재가 주장한 리기의 不離不雜과 ‘一而二, 二而一’은 栗谷 李珥(1536~1584)의 리기론과 같은 맥락임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思菴의 태극론과 리기론을 검토하였다. 사암은 기본적으로 화담의 기철학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암은 율곡과의 논변에서 태극 이전에 太虛라는 원초적 기가 있다고 보았다. 사암과 율곡의 논쟁의 핵심은 ‘太極生兩儀’의 해석에 있음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사암은 태극으로부터 음과 양이 생겨난다고 해석하였고, 율곡은 음과 양이 태극 속에 내재해 있으면서 태극의 작용에 따라서 그것이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상의 과정에서 일재와 사암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학파의 성립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율곡의 성리학과 호남학파는 상호 연관성과 함께 차별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조선성리학의 깊이와 외연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논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학문에 대한 새로운 연구관 점의 필요성, 그의 처사적 삶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경의(敬義)정신과 사회적 실천방법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명의 학문은 이황(李滉. 1501~1570)과 이이(李珥. 1536~1584)를 중심으로 하는 주리(主理)와 주기(主氣), 기호학파(畿湖學派)와 영남학파(嶺南 學派)와 같은 이분법적 연구를 지양해야 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연구는 일제의 어용학자인 Takahashi Toru(高橋亨.1878~1967)가 남긴 일제(日帝)의 잔재 (殘滓)이기 때문이다. 둘째, 처사(處士)로서 남명은 학문적으로 이단(異端)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 는 늘 불의에 항거하고, 무능한 왕과 그의 어머니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고, 척신(戚臣)들이 권력을 농단하는 조정에는 출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늘 국정 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무책을 제시하였고, 다양한 문인을 교육하고 교유 하면서 장차 다가올 국난을 대비하였다. 셋째, 그는 국가의 안위와 민생을 위해 늘 국정의 혁신을 주창하였다. 특히 남 명은 최고통치자인 왕의 진정한 희생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그가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에 잘 나타난다. 종합하면, 남명의 사상에는 근대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무실(務實)을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당리당략이나 특정 학문을 고집하지 않 았고, 연구와 실천에서 항상 객관적·합리적 태도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남명의 학문과 사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남명의 학문과 삶에서 현대의 한국병을 고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봉집(龜峯集)』 권3의 「태극문(太極問)」은 원작자가 누군가에 대 한 진위 문제는 있지만, 그 내용 자체로 조선중기 율곡학파의 태극관 (太極觀)과 리기관(理氣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 다. 이 글에서는 「태극문」의 저자를 구봉(龜峯)으로 보고, 그 속에 담긴 철학사상을 객관적으로 알아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개념과의 상호관계를 알아보았다. 구봉은 무극과 태극이 차제(次第)없는 하나의 실체이며, 무극지진(無極之眞)이 곧 태극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는 태극과 리기 (理氣)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구봉은 태극이 곧 리(理)며, 리(理)와 기(氣)는 ‘하나면서 둘이며, 둘이면서 하나’라는 ‘불상리 불상잡(不相 離 不相雜)의 관계이며, 리(理)는 소통성을 가지고 기(氣)는 국한(局 限)성을 가져 다양성과 통일성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기 인 음양(陰陽)의 ‘움직임과 정지(靜止)함’, 즉 동정(動靜)에 대한 구봉 의 이해를 살펴보았다. 구봉은 음양이 움직이고 정지하는 원리를 태극 으로 설명하고, 이러한 동정의 원리가 천명(天命)이라고 하였다. 이러 한 연구를 통하여 구봉의 태극관(太極觀)은 주희(朱熹)나 이이(李珥) 와 다른 독창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태극을 현대적 의미로 활용 가능한지 그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세계화시대의 국제경쟁에서는 국가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브랜드의 상품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국가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면 이 태극(太極)이 가장 의미 있는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이 글은 조선 중기 德溪 吳健(1521-1574)의 학문에서 그의 성리학적 경세론을 알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덕계의 학문적 배경과 그가 활동하던 조선시대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덕계가 강조한 국가의 비전과 대책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연구결과 덕계의 經世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덕계의 경세관은 정통 성리학의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정치현장에서 정통유학의 의리를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는 유학의 정치 이념을 충실하게 실천한 實踐儒學者였다.
둘째, 言論은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言論은 正義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언론은 역사의 기록이자 志操 곧 正義의 기록이다. 덕계는 정치에 있어서의 疏通은 바로 이 正義를 중심으로 한 자유로운 言路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덕계의 君主論은 聖人君主의 실현이 목표였다. 덕계는 군주의 덕목으로 謙遜・慕善・樂善・敬・誠 등을 강조하였다. 재능 보다는 德을, 威嚴보다는 겸손함을, 말 보다는 실천을 중시하였다. 왜냐하면 誠實하지 않은 지도자는 자신의 말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덕계는 성리학의 理想을 실현하기 위하여 꿋꿋하게 노력한 선각자였다.
이 글의 주제는 “南冥 曺植(1501–1572)의 학문에 대한 연구저술의 성과에 관한 분석”이다. 이를 위하여 이 논문에서는 다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첫째, 『남명집』과 譯註本의 종류와 그 특징. 둘째, 초기 남명학연구의 문제형성과 관련된 저술. 셋째, 남명학연구의 다양화와 심화정도. 넷째, 퇴계학과의 비교연구의 내용과 의미. 다섯째, 南冥學의 傳承에 관한 두 유형에 관한 분석이다.
이상의 문제에 대한 연구결과 첫째, 『남명집』에 대한 판본정리와 定本化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남명학의 학문적 사상적 특성을 정리할 때 틀에 박힌 類型化를 지양해야 한다. 셋째, 단순한 비교보다는 남명학의 독창적 성격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한다. 넷째, 南冥評傳의 저술이 꼭 필요하다. 다섯째, 남명학파와 門 人등 남명학 전반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남명학 연구저술은 대부분 개인이 이미 발표하였던 연구논문을 주제별로 엮어서 출판하였거나, 기획된 목적에 따라 전문연구자들의 개별적 연구논문을 모아서 편집한 책들이다. 이러한 상황은 남명학의 정확한 정체성을 밝히거나, 남명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함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