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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22년 비텐베르크의 소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칼슈타트와 루터의 논쟁을 중심으로 KCI 등재

How do we interpret Wittenberg Disturbance in 1521-22?: A Focused Study on the Controversy between Karlstadt and Luther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55042
  • DOIhttps://doi.org/10.22254/kchs.2018.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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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敎會史學會誌 (한국교회사학회지)
한국교회사학회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초록

본 연구는 1521-22년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난 칼슈타트와 루터의 논쟁을 분석하고, 이러한 갈등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논쟁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먼저 1521-22년 비텐베르크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한 후, 칼슈타트의 「성상의 제거에 관하여」(1522년 1월)와 루터의 「사순절 설교」(1522년 3월)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논쟁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시 이어진 칼슈타트의「개혁을 천천히 진행해야 하는가?」(1524년 11월)에 나타난 루터에 대한 비판과 루터의 「천상의 예언자들 에 반대하여」(1525년)에 드러난 칼슈타트에 대한 논박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루터가 이 논쟁에서 보수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개연성 있는 대답들을 제안하였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갈등의 핵심적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개혁의 속도와 방법을 둘러싼 전략적 차이였다는 주장, 칭의를 강조하는 루터와 중생을 강조하는 칼슈타트의 신학적 차이였다는 주장, 그리스도인의 영성형성의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등이 두 사람의 불일치의 원인으로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런 여러 가지 차이점도 중요하지만 더 기본적으로는 종교개혁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작센 선제후의 입장에 맞추려는 루터의 보수적 입장으로의 변화가 두 사람의 논쟁의 밑바닥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칼슈타트가 이상주의자였다면, 루터는 현실주의자였다. 칼슈타트가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면, 루터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자 하였다. 종교개혁 초기 루터와 칼슈타트의 논쟁은 오늘의 교회개혁을 위한 통찰력을 제시해 줄뿐만 아니라 개혁을 위한 논리의 근거와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해 줄 것이다.

This study is an attempt to analyze the disputation between Karlstadt and Luther in Wittenberg in 1521-22, to look at the conflict from what point of view, and to examine the fundamental cause of the conflict. I first briefly introduced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Wittenberg in 1521-22, and then, looked at Karlstadt’s On the Removal of Images (January 1522) and Luther’s Eight Sermons at Wittenberg (March 1522) to identify key points of the debate. And I also reviewed the criticism on Luther appeared in Karlstadt’s Whether We Should Go Slowly (November 1524), and the criticism on Karlstadt revealed in Luther’s Against the Heavenly Prophets (1525). I finally asked why Luther turned to the conservative position in this debate, and suggested plausible answers.
There have been various interpretations of what was the key cause of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Several arguments have been made about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two: the claim that it was a strategic difference over the pace and method of reform, the claim that Luther emphasized justification but Karlstadt stressed regeneration, the claim that it came from the difference in the way of Christian spiritual formation. However, I have argued that Luther’s shift to a conservative stance to conform to the position of the Saxony Elector in order to defend the cause of the Reformation was at the bottom of the debate. If Karlstadt was an idealist, Luther was a realist. If Karlstadt wanted to keep the principle, Luther tried to make political judgments. The debates between Luther and Karlstadt at the beginning of the Reformation will not only provide insight for Church reform today, but will also provide rich contents and evidences for reform.

목차
Ⅰ. 서 론
 II. 역사적 배경
 Ⅲ. 칼슈타트와 루터의 논쟁
  1. 칼슈타트의 성상의 제거에 관하여(1522년 1월)
  2. 루터의 󰡔사순절 설교(1522년 3월)
  3. 계속되는 두 사람의 논쟁
 IV. 칼슈타트와 루터의 논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V. 결 론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저자
  • 박경수(장로회신학대학교) | Park Gyeung Su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