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그의 교회 칸타타 안에 흐르는 ‘당대’ 루터교의 신학 언어를 읽어내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역시 신학적인 언어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바흐 의 ≪칸타타 75번≫, ‘주린 자는 먹을지어다’(Die Elenden sollen essen)를 분석한다. 이 작품 안 에 담긴 루터교의 교리와 메시지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들은 어떤 신학적 언어로 기록되어 있 는지 파악해 나간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칸타타 75번≫에서 발견되는 두 개의 교리, 즉, ‘칭의’와 ‘십자가 신학’이고 이것의 신학적인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루터 교를 상징하는 두 교리가 ≪칸타타 75번≫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이러 한 주장이 내포하는 바에 대해 질문한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바흐의 ≪추모 송가≫에 관한 소고”에 뒤따르는 후속연구이다. 선행연 구에서 필자는 이 작품이 절절한 슬픔을 전달하는 것도, 이를 통해 위로를 건너는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 후속연구는 ≪추모 송가≫의 5악장과 6악장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 아 이 악장의 가사와 그것의 신학적인 의미를 살핀다. 나아가 이 신학적인 의미가 당대 루터교의 언어, 특별히 루터의 죽음관, 즉 루터의 아르스 모리엔디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술해 나간 다. 또한, 이 후속연구는 루터의 아르스 모리엔디가 어떤 음악으로 구현되는지도 설명한다. 최종 적으로 이 글은 루터교의 아르스 모리엔디에 흐르는 좋은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그리고 그것 을 구현하는 바흐의 음악을 통해 위로를 구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논문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오늘날 COVID-19의 팬데믹 (pandemic)으로 인하여 전 세계가 공황에 빠져있는 상황을 염두하고 쓴 글이다. 연구자는 이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을 사회 정치 경제적인 상황에서 살펴보았던 것을, 여기서는 종교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에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성공의 요인에 대한 답을 개혁의 중심인 루터에게서만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좀 더 발전적으로 그 개혁을 가능케 하였던 일반 백성들의 관점에서, 즉 그들은 왜 루터의 종교개혁 에 동의하고 함께 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COVID-19는 지금까지 어느 시대에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전염병으로 전 세계를 불안과 공황 속에서 사람들을 허우적거리게 하고 있고,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도 개신교회의 개혁을 위한 선한 영향력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연구자는 무엇보다도 한국 개신교회가 종교로서의 본질을 잃고, 또 잊은 채 다만 이 사회의 한 기관으로서 기능성을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며 왜곡되어가는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루터의 만인사제설은 일반 시민도 사제가 된다는 믿음을 성경을 통하여 확인 시켜 주었다. 김흥호는 목사들이 가졌던 세속적 권리를 포기했다. 김흥호는 다석을 만나 후에 35세에 시간 제단 즉 가온찍기라는 근본 체험을 한 후에 한 끼만을 먹는 약속을 하나님에게 했으며 이런 결심은 자아가 매 순간 죽는 고난이며 십자가의 길임을 보여주셨다. 루터는 교회의 권력을 시민에게 양도하는 혁명을 일으켰고 내면의 신앙을 국가가 침범하지 않으면 저항하지 않는다는 신앙을 보여주었다. 루터는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혁명을 이룬 존 칼뱅과는 다르게 내면의 신앙을 지키며 내면에 계신 천국을 보여 주었다. 루터와 김흥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공통된 신앙을 가졌으나 김흥호는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권력을 남용하거 나 부패한 국가에 김흥호가 저항하지 않은 것은 탐욕이 가장 큰 죄라고 그는 보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세상의 법으로 인간을 통제하도록 한 것이며 그것이 루터의 입장이다. 김흥호가 한 끼를 실천한 신앙은 말과 행위를 일치한 다석의 신앙을 실천한 제자라는 증거이다. 김흥호는 서양의 기독교를 한국의 문화와 역사 속에 내재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동서양의 고전에서 찾고 실천하여 동양화한 기독교를 실현했다. 그는 가톨릭의 부패에 저항한 루터의 개신교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사 랑과 평화를 실천하기 위하여 타종교를 수용하고 마음속에 있는 천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느끼면서 한국과 동양의 전통을 수용한 참 기독교인이다.
본 연구는 종교개혁의 신앙전통의 계승을 강조하고 있는 재림교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엘렌 화이트의 루터 이해를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화이트의 루터 이해는 그녀의 대표작인 『대쟁투』 시리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화이트의 루터에 대한 연구는 루터 탄생 400주년인 1883 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884년부터 1888년까지 이어진 『각 시대의 대쟁투』에서 루터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특별히 루터에 대한 그녀의 글들은 메를 도비녜와 같은 19세기 교회사가들의 글들을 인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루터를 선악의 대쟁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목적에 따라서 그녀는 루터를 위대한 개혁자로 소개하면서 루터의 전기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루터에 대한 역사적 오해들을 반복한다. 아울러 루터의 인간적인 면모들, 즉 결혼 이슈, 농민운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 반유대주의적 행동 등 역사학적 이슈들은 다루지 않았다. 이처럼 화이트의 루터 이해는 대쟁투적 관점에서 종교개혁을 완성시킨 인물됨을 부각시키려는 기록 의도와 더불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반유대주의와 《요한수난곡》의 관계를 이 음악작품에 등장하는 군중합창의 역할과 신학적, 음악적 의미를 통해 조망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이 작품의 가사가 되는 수난내러티브에 주목하여, 이 안에서 요한복음서의 기자는 ‘유대인들’이라는 용어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였는지 논의한다. 또한, 이 글은 이러한 논의를 확장시켜, 개혁가 루터는 ‘유대인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술하였는지, 또는 이해하였는지 살핀다. 요한과 루터의 독해를 통해 ‘유대인들’이라는 표현이 유동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그리고 이것의 신학적 해석이 모호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해 나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글은 바흐의 음악작품, 《요한수난곡》의 핵심구조를 살피고, 이 안에서 군중합창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함으로 이 작품과 반유대주의와의 관계를 조명해나간다.
The aim of this study is to elucidate the basic concept, content and thought of Martin Luther’s mission, which are contain edinhissermons. So this study triestocriticize Gustav Warneck’s improper view, that Luther neglected the mission for the Gospel or there was no missionary try for him. It also has the attempt, David Bosch’s view to highlight, that Luther was a creative and original thinker for the missio dei. Further it tries to expose a significant claim, that Luther had very positive influence on the Christian Mission. To understand the mission, which is presented in Luther’s sermon, one must first analyze it and elucidate the main characteristics of Luther’s context of his sermon. Luther gave over 3000 sermons, so it is not overstated to say that he truly was a man who preached every day. Thus he is said to be a man of sermon. Despite that fact Luther’s work has been neglected by further studies about his sermons. That is why it is difficult for scholars to further study Luther’s mission in the context of his sermon. However, Luther’s sermons were performed to spread Protestantism during the Reformation, thus one may regard it as “Mission’s sermon (Missionspredigt)”. This Study focuses mainly on Luther’s sermon patterns which are dogmatism, postillen, and educational sermon forms. We can ascertain that the basic characteristics of sermons are directly linked to missionary characteristics. To be specific, the place of pastoral duties becomes the place in which the mission takes place, the core of the sermon is the bible, and the audience is inhabitants that are in proclamation of the mission’s place. The functions of the mission which are the place of the mission, the natives which regard the mission, and the spread of the word are directly connected to Luther’s sermon approach toward the salvation of the souls and the goal of the mission which sees the salvation of the soul as the salvation of the life. Especially, Luther’s sermons for his Reformation are connected to the Missionary Movement. As state above there are two forms of Luther’s sermons. (1) The subject of the sermon tells about the and “Easter” service. The mission sermon à going to the end of the world and telling about the god’s word. Thus this is the proclamation to spread god’s words to the end of the world and save men’s soul. This is called Keryigmatic Sermon. (2) In the sermon the delegated order for the mission is embedded in the four gospel this is “Spread the word”. In the context of his sermons he embedded the mission orders of the four Gospels and also the proclamation of Jesus Christ during important worships. This he applied also identically to the Jews and Turks. Luther thought that if he showed them Jesus love that this would be mission. Today, spreading the word takes forms such as showing Jesus’ love, practice it, this is the most essential and basic ways of the mission. Understanding mission in Luther’s sermon is the root of every Protestant Mission. It is dangerous to estimate the understanding of the mission in Luther’s sermon according to the present concept of mission as it had been stated 500 years ago. We have to stop being surprised, as we look at the interpretation the Understanding of mission in Luther’s sermon as it is the basic, starting point, process, and context of the present understanding of the mission.
루터는 개혁의 인물, 저항의 인물, 시대의 인물 그리고 기도의 인물이다. 그는 교회의 본질을 되찾고자 신학적 저항을 했다. 교권에 맞서 신앙의 자 유를 천명했다. 구시대의 전통과 관습에 맞서 ‘오직’을 고수했다. 이 모든 것의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과도 싸웠다. 그 도구 는 기도였다. 기도의 경우, 루터에게 죄와 은총의 문제처럼 논쟁적 성격을 가진 주제는 아니다. 그에게 기도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있었다. 그의 저서에는 물론 ‘기도’라는 명확한 단어가 붙은 책도 있다. 『소 기도서』(1522) 와 『쉽게 기도하는 법』(1535)과 같은 저서이다. 『대교리문 답서』와 『소교리문답서』에서는 기도의 콘텐츠를 제시했다. 이 글은 루터의 기도 이해를 연대기적으로 다루면서 올바른 기도란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초기강의 중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강의에 당시의 기도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로마서 12장 12절 주해에서 두 종류의 기도를 설명했다. 음성기 도(oratio vocalis)와 정신기도(oratio mentalis)이다. 갈라디아서 4장 3절에서 는 ‘이해 없이 소리내는 기도’ 즉 “음성기도”(oratio vocalis)를 육적인 것이 라고 비판한다. 1519년에는 기도를 주제로 설교했다. 이 설교에서 모든 기도는 5가지 요소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약속, 간구. 믿음. 진심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다. 『간략한 주기도문 강해』(1520)에서는 “가난한 기도”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라고 평했다. 『소기도서』(1522)에서는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강조했다. 『쉽게 기도하는 법』(1535)에서는 루터 그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기도를 설명한다. 루터는 무엇보다 기도의 필요성을 하나님의 명령에서 찾았다. 하나님은 기도를 명했고, 기도의 응답도 약속 했다
본 논문은 『창세기 강해』에 초점을 맞춰 루터의 기도 개혁과 기도 신학을 살펴보았다. 개인적 및 대중적 경건 형성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인식한 루터는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기도 신학과 관행을 비판했고, 대안적인 기도 신학과 관행을 제시하면서 기도 개혁을 주도 했다. 루터의 기도 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도에는 명령과 약속이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 있고, 이것이 기도의 출발점이요 근간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으로 순종해야 한다. 셋째, 참된 기도에는 인간의 절박한 필요가 있어야 한다. 특히 가슴속에서 솟아 나오는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울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부르짖음을 완벽한 기도로 만든다. 넷째, 진실한 기도의 중요한 요소인 절박한 필요성은 소명에 충실할 때 나온다. 다섯째, 기도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강조한다. 『창세기 강해』에서 루터가 제시하는 기도 신학은 다른 글들에 나타나는 기도 신학과 맥을 같이 한다.
필자는 이 연구에서 루더로 태어난 루터는 개명을 통하여 신학적으로 자기이해를 표현하였다고 주장한다. 루터의 자기이해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은 1517년 10월 31일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보낸 편지와 관련된다. “거룩한 신학박사로 부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회 마틴 루터”라는 서명에는 루터의 신학박사로서의 자유의식과 교직전권 및 그리스도로부터 특별하게 임무가 주어졌다는 자의식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루터는 1517년 11월 11일 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eleutherius’라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스콜라 신학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음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적인 자유사상을 통해 다른 사람을 자유케 하거나 적어도 그들이 자유케 되는 것을 돕는 자라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루터의 이름이 표현하는 사실은, 랑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루터 자신이 스콜라 신학의 굴레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에 의해 선사된 자유에 대한 의식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스콜라 신학과 면죄부 제도에 나타난 인간의 지혜에 대항하여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가운데 자신의 임무를 행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루터의 개명은 신학적으로 철저히 의도된 것으로 자유한 자, 그리고 동시에 자유케 하는 자의 사명을 표현하는 자기이해인 것이다.
본 연구는 1521-22년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난 칼슈타트와 루터의 논쟁을 분석하고, 이러한 갈등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논쟁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먼저 1521-22년 비텐베르크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한 후, 칼슈타트의 「성상의 제거에 관하여」(1522년 1월)와 루터의 「사순절 설교」(1522년 3월)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논쟁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시 이어진 칼슈타트의「개혁을 천천히 진행해야 하는가?」(1524년 11월)에 나타난 루터에 대한 비판과 루터의 「천상의 예언자들 에 반대하여」(1525년)에 드러난 칼슈타트에 대한 논박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루터가 이 논쟁에서 보수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개연성 있는 대답들을 제안하였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갈등의 핵심적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개혁의 속도와 방법을 둘러싼 전략적 차이였다는 주장, 칭의를 강조하는 루터와 중생을 강조하는 칼슈타트의 신학적 차이였다는 주장, 그리스도인의 영성형성의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등이 두 사람의 불일치의 원인으로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런 여러 가지 차이점도 중요하지만 더 기본적으로는 종교개혁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작센 선제후의 입장에 맞추려는 루터의 보수적 입장으로의 변화가 두 사람의 논쟁의 밑바닥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칼슈타트가 이상주의자였다면, 루터는 현실주의자였다. 칼슈타트가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면, 루터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자 하였다. 종교개혁 초기 루터와 칼슈타트의 논쟁은 오늘의 교회개혁을 위한 통찰력을 제시해 줄뿐만 아니라 개혁을 위한 논리의 근거와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해 줄 것이다.
“구원 받은 신자는 창조세계를 선물로 받는다”라는 말은, 루터 학자 게르하르트 포드(Gerhard Forde)가 루터가 종교개혁적 혁파에서 얻은 새로운 신학적, 윤리적 인식을 훌륭하게 응축한 것이다. 하나님 은혜에 의한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는 긍정적 관점을 제공하고, 그 속에서의 삶을 은총의 선물이자 책임적 소명으로 환원시킬 동기와 동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에서 신자의 삶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피조물로서의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창조세계 자체와 그 속에서의 신자의 일상생활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중세 가톨릭 교회가 창조세계 속 일상적 삶을 경시한 데 비해, 루터는 이 땅에서 신앙으로 하는 모든 일을 영적인 일로 여겼다. 창조세계 속에서의 세 가지 삶의 형태인 교회, 가정, 국가에서의 직분을 신앙으로 감당하는 것을 하나님께 대한 예배이자 신자의 소명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두 왕국에서 개인 윤리와 공적 윤리를 바르게 구분하고 적절히 적용하면서, 자신의 직분을 통해 소명을 다할 때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음을 가르쳤다.
마르틴 루터는 성직만이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유래한 세상의 모든 직업 이 하나님의 소명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고, 이신득의에 근거해서 신앙으로 부터 유래한 모든 일이 선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상업에 대해 공정한 거래와 경제적 형평성을 주장했고, 그 당시 사치와 쾌락을 위한 해외 무역과 독점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루터는 산상설교에 따라 이자를 받는 것을 금했지만, 세상 왕국에서는 5%정도의 이자 받는 것을 인정했다.
루터는 고리대금과 함께 토지를 통한 지대수익을 금지했고, 지대(zinss) 와 지대수익(zinsskauf)을 통해 누리는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다른 세금을 대신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급진주의자들이 주장하던 재산의 공유화를 비판하고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했다. 그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발적인 사랑과 봉사를 강조했으며, 정부가 가난한 자들을 보살펴 주고 가난한 아동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했다.
결국, 루터의 경제사상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사회약자를 보호하는 희년사상을 계승했다. 경제사상에 있어서 루터의 가장 큰 관심은 공평과 정의였기 때문이다. 그의 경제사상은 그 당시 교회 안에 국한된 교훈적 가르침만이 아닌, 교회와 사회, 도시와 제국 전체를 향한 제도적이며 구조적 차원의 변화와 실천적 가르침이었다.
이 글은 웨슬리에게서 나타나는 루터 신학의 흔적을 원자료를 중심으로 추적한 연구이다. 그동안 루터와 웨슬리는 칭의와 성화에 상반된 강조를 했다고 서술해왔다. 그 결과 루터를 칭의의 신학자요, 웨슬리를 성화의 신학자라고 칭하고, 이 둘 사이에 커다란 신학적 괴리를 만들었다. 심지어 루터는 이신칭의를 발견한 공은 있으나, 성화에 대한 강조가 없다고 평가절 하하는 반면, 성화를 강조한 웨슬리를 종교개혁의 완성자로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루터와 웨슬리는 다름이 아니라 같음의 카테 고리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웨슬리가 말하는 사회적 성화에 대한 단초는 루터의 『선행에 관하여』(1520),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 등 여러 글에서 충분히 발견된다. 성화에 대한 루터의 언급도 『교리문답서』(1529)에 충분히 개진되어 있다. 웨슬리에게서 발견되는 칭의와 성화에 관한 신학적 출처는 그 단초가 종교개혁, 특히 마르틴 루터의 신학에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의 목적은 루터와 웨슬리 사이에 매개물을 찾고, 웨슬리 신학에 등장하는 루터신학적 접점을 찾는데 있다. 접점이란 만나면서 살짝 스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루터와 웨슬리의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고, 제한된 지면은 모든 것을 다루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칭의와 성화라는 주제로 제한했다. 사실 루터의 칭의론은, 웨슬리 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독립된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죄, 인간, 은총 등 기독교 신학의 핵심 영역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소논문에서는 또 다른 신학적 영역으로의 확장을 자제하고 칭의와 성화의 이해만을 다루었다. 루터와 웨슬리는 칭의와 성화에 대해 같은 틀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과에 이르렀다. 루터는 칭의와 성화를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반면 웨슬리에게는 순간적 요소와 과정적 요소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칭의와 성화를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둘 모두에게 공통된 사항이다. 논문의 의의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루터와 웨슬리 신학을 이해하는데 루터와 연관된 통전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점에 있다.
이 글은 루터가 종교개혁 시기에 이미지에 관한 어떤 신학과 입장을 갖 고 있었는지를 그가 했던 설교와 강연 그리고 이를 시각화한 예술작품의 분석을 통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2장에서는 중세말의 이미지와 연 관된 여러 폐단 속에서 루터의 이미지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나타나기 시 작했는지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급진적 우상파괴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 해 루터가 그의 이미지에 대한 신학을 어떻게 더욱 진전시켰는지 고찰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루터가 루카스 크라나흐라는 화가의 도움으로 어떻게 예술을 통해 자신의 종교개혁의 중심적인 신학과 교리를 신도들에게 알리 고 교육하였는지 고찰하였다. 루터는 중세말의 전례와 미사 혹은 면벌부 등과 관련된 이미지의 폐단 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중세의 이미지에 대한 내재적 신 학에 동의하였다. 또한 중세의 이미지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 중 하나였던 신앙고양과 종교 교육적 측면을 수용하였다. 또한 급진적인 종교개혁자들 의 우상파괴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미지의 중립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물질 안에는 영적인 것이 깃들일 수 없다는 급진적 우상파괴주의자들의 초월주의적 관점에 반대하고 내재적인 이미지관을 고수하였다. 또한 이미지 자체는 중립적이나 이미지가 만일 우상이 되었을 경우는 파괴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때에도 신도들이 우상파괴를 직접 행해서는 안 되고 행 정당국이 우상을 제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종교개혁과 관련된 이미지에 관한 당대의 논쟁들에 직면하여 종교개혁의 리더로서 그의 중심적인 신학과 성경의 해석을 중심 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즉 칭의론을 주장하면서 그는 이미지 에 경배하고 이미지를 그리고 만들도록 후원하고 경배하는 것은 구원을 위 한 사역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보았다. 다만 내재적인 관점에서 물질의 하 나로서의 이미지가 신성이 깃들어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가 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러한 그의 이미지에 대한 신학과 태도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대다수 의 종교개혁가들이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미 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줌으로써 오늘날 개신교의 이미 지에 대한 신학적인 관점을 확립하고 현대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현상에 대해 유연한 태도로 소통하고 적용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 연구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중국 지 식계층에 의해 처음 소개된 내용부터 그 이후의 변화된 루터의 이해를 고 찰하는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에 의해 소개된 루터는 중국의 사회적, 정치 적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극단을 오고 가는 다양한 형상으로 부각되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 처음 소개되는 루터의 형상은 천주교에서 개신교를 분립시킨 종교적 “창시자”이었다. 이 시기는 중국 개명 지식인들 이 나라의 부패와 무능에 대해 통한하던 시기였다. “중화”라는 폐쇄적인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세계무대에서 강력한 대국을 꿈꾸는 청나라 지식인 들에게는 루터는 단지 천주교라는 독제적인 종교 구도에서 개신교를 분립 해낸 “종교적 창시가”일 뿐이었다. 그러나 중국 근대 계몽운동 및 정치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19시기 말 유 신운동과 20세기 초 신문화운동의 과정에서는 중국 지식인들에 의해서는 “혁명적 개혁자”로 칭송받았다. 유신운동가들은 중국의 부패와 무능을 해 결하기 위해서는 서방의 우수한 체계를 유입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구체적인 개혁의 일환으로 개신교를 모방한 공교를 회복하고 부흥시키 는 것으로 보았다. 때문에 유신 지식인들은 유신운동이 실패한 이후 자신들이 이룩하지 못한 개혁의 욕망, 실패에 따른 심리적 방어로 루터를 “혁 명적 개혁가”로 이해하였다. 신문화운동 거장들은 공교를 미신하는 유신운동가들과 정반대로 종교를 국민을 세뇌시키는 아편과 같은 존재로 혐오하였기에 천주교 교황의 전횡 에 대항한 루터를 혁명가로 높게 평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루터의 종교개 혁가의 색채는 제쳐놓고 오로지 혁명가의 측면만 강조한 것 역시 신문화운 동자들의 주관적이고 편집 취사적인 이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20세기 초부터 60년대까지 실질적으로 무력으로 혁명을 강행하 는 신해혁명 및 공산주의 혁명에서는 오히려 혁명가들에 의해 혁명을 반대 하는 “반혁명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고 강렬한 성토를 받게 되었다. 특히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끊임없는 정치 이데올로기운동 속에서 루터는 꾸준히 혹평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계급 분석 방법”이라는 틀 속에서 엥겔스의 루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작용을 한 것이다. 종교개혁을 계급투쟁의 차원에서 자리배김하고 독일 농 민전쟁을 계급혁명의 차원에서 평가할 때 루터의 사상과 행적은 “반혁명 배신자”로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0세기말 개혁개방을 맞이한 새로운 역사적 상황부터는 “인문적 사상 가”로 루터의 형상이 새롭게 수립되고 있다. “계급”과 “혁명”이라는 주제 가 사라지고, 더불어 아직도 공산주의사상이 지도사상인 중국 공산당 집권 속에서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지속되는 중국 당대의 시대 환경에 서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루터에게서 “혁명”과 “종 교”라는 주제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오로지 “인문”이 아닐까? 개혁개방 이 후 현재까지 “인문적 사상가”로 새롭게 수립되는 루터의 형상은 현재진행 형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양심에 대한 루터의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로서 루 터의 양심 개념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 째, 루터는 양심의 문제를 단순히 도덕·윤리적 차원이 아닌, 근본적으로 인 간과 하나님의 관계, 특히 구원론의 틀 안에서 다룬다. 둘째, 양심의 판단 대상이 되는 것은 개별적 행위이기 전에 한 인간 전체다. 셋째, 양심은 하 나님의 판단을 따를 때 제대로 기능한다. 넷째, 양심에 대한 루터의 가르침 은 법과 복음, 믿음과 사랑, 그리고 ‘~으로부터의 자유’와 ‘~을 향한 자유’ 라는 신학적 주제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여섯째, 루터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양심의 문제를 정립하고 나서, 이 토대 위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양심 문제를 다룬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인간중심적 구원론에 반 대해 신중심적 구원론을 제시했다. 그 결과 루터 신학은 인간의 전적타락 과 노예의지(인간론), 하나님의 자기 충족성과 예정(신론), 그리스도의 의 의 전가를 통한 칭의와 성화(기독론), 성령의 계시에 의한 영적 시련과 위 로(성령론), 행함 없이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구원론), 구원에 토대를 둔 소 명의 삶(기독교 윤리) 등 신학의 제반 주제에서 구원의 원인과 공로를 오 직 하나님께 돌리는 일관성을 나타냈다. 동시에 루터는 신중심적 신학이 인간의 책임성 약화를 초래하는 것을 방 지하고자 신자의 거룩한 삶을 위한 자극과 동력이 되는 성화의 장치를 종 교개혁 신학 체계 안에 마련했다. 즉,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사랑, 순종을 일으키며,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 한 구원은 그리스도의 법에 대한 자발적 성취로, 성령의 은혜는 칭의에 대 한 깨달음 뿐만 아니라 실제적 변화로서 성화로, 또 구원의 믿음은 행함의 열매로, 영적 구원은 세상에서 소명을 다하는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많은 한국 개신교인이 믿음과 행위 사이, 피안적 천국과 이 땅 사이의 이원론에 빠지게 된 것은, 그들이 루터의 신중심적 신학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가 강조한 성화의 장치는 소홀히 다루었기 때문으로 분석한 다. 이 점에서 루터의 성화의 장치에 대한 주의깊은 이해와 수용은 한국 개신교의 도덕성과 영성, 사회적 책임성 제고의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