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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루터는 개혁의 인물, 저항의 인물, 시대의 인물 그리고 기도의 인물이다. 그는 교회의 본질을 되찾고자 신학적 저항을 했다. 교권에 맞서 신앙의 자 유를 천명했다. 구시대의 전통과 관습에 맞서 ‘오직’을 고수했다. 이 모든 것의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과도 싸웠다. 그 도구 는 기도였다. 기도의 경우, 루터에게 죄와 은총의 문제처럼 논쟁적 성격을 가진 주제는 아니다. 그에게 기도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있었다. 그의 저서에는 물론 ‘기도’라는 명확한 단어가 붙은 책도 있다. 『소 기도서』(1522) 와 『쉽게 기도하는 법』(1535)과 같은 저서이다. 『대교리문 답서』와 『소교리문답서』에서는 기도의 콘텐츠를 제시했다. 이 글은 루터의 기도 이해를 연대기적으로 다루면서 올바른 기도란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초기강의 중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강의에 당시의 기도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로마서 12장 12절 주해에서 두 종류의 기도를 설명했다. 음성기 도(oratio vocalis)와 정신기도(oratio mentalis)이다. 갈라디아서 4장 3절에서 는 ‘이해 없이 소리내는 기도’ 즉 “음성기도”(oratio vocalis)를 육적인 것이 라고 비판한다. 1519년에는 기도를 주제로 설교했다. 이 설교에서 모든 기도는 5가지 요소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약속, 간구. 믿음. 진심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다. 『간략한 주기도문 강해』(1520)에서는 “가난한 기도”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라고 평했다. 『소기도서』(1522)에서는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강조했다. 『쉽게 기도하는 법』(1535)에서는 루터 그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기도를 설명한다. 루터는 무엇보다 기도의 필요성을 하나님의 명령에서 찾았다. 하나님은 기도를 명했고, 기도의 응답도 약속 했다
        2.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웨슬리에게서 나타나는 루터 신학의 흔적을 원자료를 중심으로 추적한 연구이다. 그동안 루터와 웨슬리는 칭의와 성화에 상반된 강조를 했다고 서술해왔다. 그 결과 루터를 칭의의 신학자요, 웨슬리를 성화의 신학자라고 칭하고, 이 둘 사이에 커다란 신학적 괴리를 만들었다. 심지어 루터는 이신칭의를 발견한 공은 있으나, 성화에 대한 강조가 없다고 평가절 하하는 반면, 성화를 강조한 웨슬리를 종교개혁의 완성자로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루터와 웨슬리는 다름이 아니라 같음의 카테 고리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웨슬리가 말하는 사회적 성화에 대한 단초는 루터의 『선행에 관하여』(1520),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 등 여러 글에서 충분히 발견된다. 성화에 대한 루터의 언급도 『교리문답서』(1529)에 충분히 개진되어 있다. 웨슬리에게서 발견되는 칭의와 성화에 관한 신학적 출처는 그 단초가 종교개혁, 특히 마르틴 루터의 신학에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의 목적은 루터와 웨슬리 사이에 매개물을 찾고, 웨슬리 신학에 등장하는 루터신학적 접점을 찾는데 있다. 접점이란 만나면서 살짝 스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루터와 웨슬리의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고, 제한된 지면은 모든 것을 다루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칭의와 성화라는 주제로 제한했다. 사실 루터의 칭의론은, 웨슬리 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독립된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죄, 인간, 은총 등 기독교 신학의 핵심 영역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소논문에서는 또 다른 신학적 영역으로의 확장을 자제하고 칭의와 성화의 이해만을 다루었다. 루터와 웨슬리는 칭의와 성화에 대해 같은 틀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과에 이르렀다. 루터는 칭의와 성화를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반면 웨슬리에게는 순간적 요소와 과정적 요소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칭의와 성화를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둘 모두에게 공통된 사항이다. 논문의 의의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루터와 웨슬리 신학을 이해하는데 루터와 연관된 통전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점에 있다.
        3.
        2017.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독일의 루터10년 프로젝트처럼, 한국교회 역시 많은 학술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 내지는 루터 신학의 세계적인 의미를 찾을 것이다. 본 논문은 루터의 신학에서 “무엇이 종교개혁적인가?”를 다루었다. 관점에 따라서 루터 신학 의 핵심은 다르게 선택될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염 두에 두었고, 그 결과 루터 신학의 바른 이해와 적용을 위해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선택하여 논했다. 칭의의 조건은 그리스 도를 믿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칭의는 종결이 아닌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시작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이 칭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이 세상에서 생을 다하기까지 함께 간다. 그것이 무엇이건 인간이 할 일이 있다면, 칭의 이후의 일이며, 칭의 이후의 일이 역으로 칭의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즉 칭 의를 위해 인간이 할 일은 없지만, 거룩한 삶은 칭의와 더불어 가는 것이 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의 일하심의 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한다. 이것은 가시적인 것 혹은 외적인 권위와 규모 를 통해 신을 파악하려했던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 내지는 스콜라신학을 거부한다. 물질주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의존성, 기복 및 개교회 지상주의 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인제사장직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 평등의 선언이자, 직업 활동 을 통한 소명의 성취를 요구한다. 한국교회 역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 분법적 틀을 희석시켜야 하며, 동시에 교회 밖 직장과 사회에서 직업 소명, 즉 제사장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자랑스런 유산을 물려받은 프로테스탄트의 후예이다.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여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4.
        2016.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루터의 성령이해를 다루었다. 루터는 고대교회의 삼위일체 이 해를 계승하고 있고, 삼위의 관계나 본질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성령의 활동에 대한 이해는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 면 종교개혁 진영 내부에서 개혁의 정당성을 성령의 직접적인 지시나 내적 명령에 두는 사례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주된 논의의 유발자는 칼슈 타트와 토마스 뮌처 그리고 소위 츠비카우 예언자들이었다. 이들은 행동의 근거를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와 내적 지시에 두며, 개혁의 방향을 주관적 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평신도들에게 성령의 소유를 촉구하며, 성령의 지 시를 받는 자신들만이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고 주장했다. 이들로 인하여 루터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했으며, 성서를 토대로 상세히 반박했다. 루터에게는 내적인 깨달음보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 이 더 중요했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말씀보다 앞세우지 않았다. 성령의 역 사에 대한 루터의 사유는 대체로 1520년대 초기와 중반에 열광주의자들과 의 대립 속에서 계속 형성되며, 152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발간된 󰡔고백󰡕, 󰡔대교리문답서󰡕, 󰡔소교리문답서󰡕 그리고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 표명되어 있다.
        5.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루터10년 프로젝트가 2008년부터 독일에서 진행 중에 있다. ‘종교개혁과 관용’은 루터10년 프로젝트 중 2013년 연중 주제이다. 이 글은 루터10년 프로젝트 중 2013년의 연중테마인 ‘종교개혁과 관용’을 루터에게만 제한했다. 루터의 불관용적 태도는 교황, 이슬람, 농민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입장에서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농민, 이슬람 그리고 유대교에 대한 루터의 입장만을 다룰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관용이라는 현시대적 요청 앞에서 불관용적 태도를 지적한 루터비판에 무조건 동조 내지는 무조건적인 변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관용은 근대의 산물이며, 종교개혁 시대에는 아직 발아하지 못했다. 루터의 행동은 신학적 행동이었으며, 루터의 입장 역시 신학적 입장이었음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글에서는 루터의 입장을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고찰했다. 농민전쟁, 이슬람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상호 긴장을 이루지만, 믿음을 중시한 나머지 자신의 신학적 판단을 따라가는 확고부동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6.
        2013.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Article dealt with Luther's theological criticism as seen in his 95 Theses in opposition to the indulgences. The cause for the 95 theses was due to the sermon by Tetzel based on archbishop Albrecht's Instructio summaria, acknowledge the bishop's responsibility toward the saints, and demanded the cancelling of the indulgences. Luther received no answer concerning the 95 theses which he privately sent in a letter, consequently he advertised the 95 theses desiring a public debate. In its entirety, the 95 theses include four theological criticisms. First, what is true repentance. Second, to what extent is the authority of the Pope? Third, do the indulgences have the validity of salvation in them? Fourth, do the indulgences even have an influence over purgatory? In the 95 theses, Luther first dealt with the issue of true repentance. True evangelical repentance is not temporary nor expedient but must be emphasized as covering the entire lifetime of a believer. The Pope can only forgive the punishment imposed by the church, and cannot forgive the punishment related to purgatory. Indulgences cannot mediate salvation, nor have any influence on purgatory. Although the 95 theses in its opposition to the indulgences and its interpretation provide a starting point for the Protestant Reformation, Luther's Reformation theology has not been specified at this time, therefore the focus of the study has been on Luther's thoughts and church system through the 95 theses.